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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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무작정 아무 데나 잘 간다. 어느 날은 책을 소재로 한 멋진 그림책이 있다기에, 그냥 그 책을 끌어안고 싶어졌다. 마음이 속삭였다. 이거 멋진 걸, 이렇게 책을 이불처럼 덮고 자는 사람이 있다니. 추운 밤에는 두꺼운 솜이불의 무게에 눌려 자고 싶은 때가 있다. 저렇게 무거운 책을 덮고 저렇게 편안한 얼굴로 자다니, 놀라운 사람이군. 마음은 그림과 그림 사이를 뛰어다니며 본다. 안테나에 찔리거나 가위에 찔려 피를 흥건히 흘리는 책을 보고 몸서리를 친다. 검은 혀를 쑥 내밀어 메롱, 하는 책을 보며 응대하듯 마음은 혀를 내민다.

어떤 남자는 홀린 듯 책을 끌어안고 있다. 별도 없이 캄캄한 밤, 해부실에서 급히 빼내어온 연인의 시체라고 한다. 애인의 아름다운 육신이 칼로 찢겨지는 것은 차마 못보겠다고 한다. 그들은 오늘밤 강을 통해서 탈출할 거다. 피곤하지만 뭔가에 홀린 남자의 얼굴. 또 마음은 켭켭이 쌓인 책을 밟고 먼 바다를 보기도 하고 눈오는 날 날랜 표범이 되어 책을 물고 뛰어가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비를 피해 책 속에 숨기도 한다. 마음은 바람이 되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어느 연인의 침실에 책장을 후루룩 넘기며 지나기도 한다. 타자기, 까마귀, 카드, 펜, 등불, 자전거 등이 간간히 등장하지만 늘 주인공은 책이다.

마치 오래된 재생종이처럼 꺼칠꺼칠한, 아니 오래된 흑백영화필름에 엷은 색채를 입힌 듯한 점묘법의 책그림책. 마음은 이런 모험을 좋아한다. 현실에선 절대일어날 수 없는.

*참고: 어떤 이의 글은 매력적이지만 어떤 글은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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