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놀이터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다섯살 된 아들 녀석의 입에서 '학교, 공부하는 데... 가기 싫어.'란 말이 불쑥 튀어나와 남편과 내가 무척이나 당황했습니다. 이제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아버지의 아, 어머니의 어'를 배우는 녀석 입에서 나온 말이 충격이었답니다.

남편과 나는 그렇습니다. 아이 때는 많이 놀아야 한다는 합의하여 결코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는 아닙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닌 것도 이사를 온지 얼마 안되어 아파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낮에 놀이터에 아이 그림자 하나도 없어, 친구랑 같이 놀라고 보내었기에 그 황당함은 더했습니다.

이유를 살펴보니, 같이 소꿉놀이 하는 조카가 '학교 놀이하자, 그것도 몰라, 너 맞아야 되겠네...'하니 '학교는 공부하고 모르면 매 맞는 곳'이란 생각이 저절로 심어졌을 거라고, 추측을 할 뿐이랍니다. 또 친구랑 많이 놀라고 보낸 어린이집도 '한글','영어','한자','숫자'까지 가르치니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늘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낱말 맞추면 숫자 카드도 주고 사탕, 과자도 주는데, 늘 받지 못해서 우리 아이는 저녁에 오면 내내 그 이야기입니다.

내년 여섯살 때에는 어린이집을 쉴까 합니다. 이제 아파트에 같이 놀 친구가 생겼고, 동생이랑 장난도 많이 치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를 아는 분과 했더니, '그래 가지고 글자를 언제 배우고, 학교가면 뒤쳐질 턴데...'하며 걱정합니다. 제가 '우리 때는 국민학교 2학년에 한글 알았고, 유치원 간 아이가 얼마 없었쟎아요.'라고 하니 '그 때와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데.'하면서 간 큰 엄마라 합니다.

요즘 애들은 5살, 6살 때 한글을 깨치고 책을 읽습니다. 어떤 애는 4살 때 글을 읽기도 합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국민학교때 글을 깨치는 우리 세대보다 그만큼 더 못 놀고 있답니다. '놀이 공부'니 뭐니 해도 그 근본은 '공부'이니까요. 느끼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알고 배우는 것이니까요.

<창가의 토토>를 읽었습니다. 단아한 문체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만족한 듯 웃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조금 행복해졌습니다. 흙 장난을 하고, 나무를 올라타고, 몸이 아픈 아이들과 놀며 토토는 쑥쑥 잘 자랍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지요. 저 역시 우리 아이가 흙장난을 하고 손톱밑이 새까매지고 벌레를 보면서 컸으면 합니다. 흙과 나무와 바다와 함께 그냥 행복하게 컸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많이 좋아했으면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다만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토토의 엄마처럼 아이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법과 인내하며 기다리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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