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을유사상고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가 없으면 표상도 세계도 없다"

 

을유문화사의 "을유사상고전 한 달 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도서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입니다.

6월 첫 주 책을 받았을 때 두께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괜히 도전했나' 후회되기도 했죠.

총 741쪽 6월 한 달 꼬박 30일이니까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13쪽만 읽으면 완독하게 됩니다. 하루 2시간씩 읽는다고 했을 때 두 번이나 반복할 수 있는 양이죠.

첫날 쇼펜하우어의 서문을 읽고서는 단 순 계산대로 이 책을 완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읽기에 전제 조건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구 사항이죠.

 

첫 번째 이 책을 읽기 전에 서론을 읽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서론은 "충분근거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하나의 철학 논문"이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두 번째 칸트의 주저를 먼저 읽고 칸트 철학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책의 부록인 "칸트철학비판"을 먼저 읽으라는 것이죠.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생긴 것이죠.

또한 이 책을 두 번 읽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서로 보완되어 앞의 내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해요. 저는 우선 쇼펜하우어의 전제조건을 채워야 했습니다. 교양으로서의 칸트철학은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그의 주저를 읽고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칸트의 대표 저서 "순수이성 비판"과 '선험적 경험' 이란 것을 먼저 알아야 했습니다. 칸트의 주요 저서라고 검색하면 여러 권이 등장해서 모든 것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죠.

 

 

첫 번째 주

백종현 교수님의 역으로 순수이성 비판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은 1주일 하루 읽기로 정해둔 2시간 외에도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읽었지만, 결국 완독하지 못했어요.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칸트철학을 배웠어요.

 

 

 

 

 

 

 

 

두 번째 주

부록으로 실어둔 칸트철학 비판을 읽는 것입니다.

다행히 책의 뒷부분에 실려 있어 읽기 시작했죠. 칸트철학을 겨우 아주 조금 알아들을 만했는데 칸트철학 비판을 읽다 보니 또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지? 뭔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게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책을 읽어가는 내내 멈추지 못한 의문입니다.

 

칸트철학비판은 개정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어요. 연결어가 중복되어 있거나 번역어가 어색한 부분이 너무 많았죠. 매끄럽게 읽어가도 겨우 이해할까 싶은 내용인데 번역의 문제로 읽는 것조차 불편하니 겨우 1주 딱 맞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었는데 읽은 것 같지 못한 느낌. 결국 인터넷의 힘을 빌렸습니다.

 

세 번째 주

'충분근거율'을 읽는 것입니다.

다행히 나남 출판사에서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논문을 번역한 책이 있었습니다. 2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엄청난 두께의 책을 봤기에 쉽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가 칸트 철학에 대해서 무엇을 꼬집어 하고 싶었는지 겨우 알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주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기 위한 전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3주의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남은 시간은 겨우 1주일 하루에 1권씩 읽어가면 4권으로 나눠진 부분을 읽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만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일주 겨우 2권까지 읽었습니다.

 

1권을 읽어가면서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느꼈습니다.

제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고찰

근거율에 종속된 표상, 경험과 학문의 대상

 

'근거율'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처음부터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근거율과 표상,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걸까요. 그 인식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또 사람과 다른 동물, 식물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쇼펜하우어 특유의 자신감 가득한 문장으로 하나씩 따라가 봅니다.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로봇입니다. 지능은 무엇일까. 인공적으로 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인공지능로봇은 자신을 인식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 지능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단순히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면 우리는 왜 아직도 인공지능로봇을 만들지 못했을까요. 쇼펜하우어가 지금 시대의 인공지능연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즐거운 상상도 했습니다.

 

제2권 의지로서의 세계, 제1고찰

의지의 객관화

 

2권에서는 신체와 의지에 대해 고찰합니다.

의지와 신체, 그리고 객체.

 

 

 

 

 

 

뭔가 무척 혼란스럽고 의아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식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의지를 따로 떨어뜨려 놓는 것 그 자체가 무척 낯설어요. 자연스럽게 신체는 내 세계의 시작이고, 신체로부터 세상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죠. 뭔가 조금 다를 것 같지만 로봇 청소기가 센서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스스로 청소하는 구역을 찾아 청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신체적인 것에 대해 고찰하고, 그로부터 인식하는 세상에 대해 고찰합니다.

그러고 나서 두 가지를 통합해서 하나의 세상을 구성하게 됩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과정의 힘이라고 할까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많은 내용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통합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쇼펜하우어 이후 니체와 프로이트가 등장했어요. 초인, 무의식과 초자아. 한 번쯤 들어봤고 어쩌면 시험을 위해 열심히 암기했던 내용이기도 해요. 그 깊이를 충분하게 느끼지는 못했어도 대강 알고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쳤기에 어려운 전제 조건이 있지만 불과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을유문화사의 고전 한 달 읽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났지만

저는 7월 한 달 동안 이 책을 계속 읽겠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당부처럼 최소 2독은 해야 나중에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지와표상으로서의세계 #을유문화사 #쇼펜하우어 #아르투어쇼펜하우어 #고전한달읽기 #을유사상고전 #한달읽기 #독서 #글 #리뷰 #도전 #의지 #표상 #세계 #생각 #고찰 #칸트철학비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