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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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번역된 아타루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공저`는 간주곡이나 마찬가지! ˝잘라라...˝의 덕을 톡톡히 본 듯한 출판사가 처방해 주는 진통제 같은 책이다. 효력이 그렇게 강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난 차라리 <사상으로서의 3.11>(그린비)에 수록된 사사키 아타루의 강연문을 재독할 것을 추천한다.


 비평가/철학자의 아타루의 색을 빼고 소설가이기도 한 사사키 아타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비평가/철학자 아타루의 글을 읽는 것이 그래도 괜찮은 것은, 들뢰즈, 니체, 푸코, 라캉 등 그래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지점들이 산재했있다면, 소설가 아타루의 내용이 어려운 건 우리에게 아직 그의 소설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뢰즈를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철학의 어려움을 옹호하고, 난해함의 쾌락을 찬양하는 데서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지만 군데 군데 막히는 것은 전작을 읽을 때와의 확연한 괴리감이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후루이 요시키치의 작품을 논하는 2012년 파트 앞에 놓인 한 편의 글과 한 편의 인터뷰. 


 이 책은 사사키 아타루의 개인의 이름만을 겉에 깔고 나오기엔 무리가 있다. 대부분이 대담이나 인터뷰이며 근대 이후의 발명이라 할 1인 창작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참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 책에는 부제로써 아니면 '이 치열한 무력을'을 부제로 돌린 뒤 '아날렉타 제 4권'이라는 본령을 좀 더 부각했어야 한다. 힙합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마지막에 실린 'Back2Back'에서의 설명에도 나오듯이 협업이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 창작행위에 대해 어떤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는데 그것이 책의 표면에선 가려진 것이 아쉽다. '아날렉타' 시리즈의 취지에 부합하고 그 맛을 살리려 했다면 가격이나 판형 등이 저렴해질 수 있었을텐데. 


 끝으로 나에게, 이 책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하나 꼽는다. 편 수로는 8할 정도 분량으로는 9할 이상이 대담인 이 책에서 유일한 장문의 글('후루이 요시키치, 재난 이후의 영원')의 주석 152번이다.


"물론 후루이 문학의 팔루스phallus 혹은 여성 문제를 정면에서 다룰 필요가 있겠으나 이는 다른 기회로 넘긴다. 또한 지금까지 논해온 내용에 덧붙여 '영토성', '후렴'을, 혹은 '여성이 됨'(경탄을 자아내는 걸작 <밤은 지금>이 바로 이를 그린 소설이다.), 혹은 '동물이 됨'(<남동생>이라는, 동물로의 생성 변화를 그린 소설이 있음을 지적해둔다)을 논한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를 끌고 와 후루이를 논하는 것도 가능했으며, 그렇게 논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 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오히려 그게 더 타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스러운 들뢰즈=가타리는 일본어를 못 읽기 때문에 후루이 요시키치를 모른다. 불쌍한 들뢰즈. 불쌍한 가타리."(273면,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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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 - 그 기원과 매혹
김용언 지음 / 강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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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인간의 중세 신학적 세계 통치에서 막다른 실존의 벽에 내몰린 안티 히어로의 근심과 세계 구원의 서사로 이행하다. 그리고 장르적 쾌감의 폭은 부단히 넓어지며 사유의 깊이까지 얻어가다. 대중의 장르, 시대의 문패를 얻다. 



홈즈에게 그 자신의 개성에 필적할 만한 모든 수수께끼는 제거되고 해결되어야만 한다. 개성이란 교육받고 교양 있는, 한 사회의 안녕을 책임질 수 있는 그 자신 같은 존재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다. 그 외의 타인들은 사회가 부가한 ‘정체성’으로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한다. 개성으로서의 위반이나 욕망의 표출은 근대 사회의 엄격한 판옵티콘의 시선에서는 위험하고 불온해진다. (중략) 군중 속에 쉽게 숨을 수 있는 익명성, 그러니까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 앞에서 홈즈는 자신의 뛰어난 개성을 발휘하여, 군중 속에 숨어 있는 범죄자의 정체성을 추적하고 결국은 포착하고야 만다. 탐정의 개성이 범죄자의 개성을 압도한다. (92~93면)


앞서 인용한 프랑코 모레티의 분류처럼 ‘장르당 평군 30년 주기’를 적용했을 때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절정기를 누렸던 영국의 고전적 추리소설은 대부분 계급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선에 갇혀 우아한 매너리즘을 고수했고, 1920년대 이후부터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갔다. 범죄가 대량화되고 잔혹해지며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담아낼 전혀 새로운 스타일과 서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131면)


하드보일드 소설이 그토록 엄청난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우선 작가와 독자층과 소설 주인공 사이의 일치된 교감을 꼽을 수 있다. (중략) 하드보일드 소설은 주로 ‘육체노동자들’에게 읽혔다는 사실 때문에 당대 평론가들에게 무시당했지만, 또한 이 육체노동자들이 하드보일드 소설을 적극적으로 애독하면서 투사한 자기 반영적 이미지야말로 당대의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주요한 지표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드보일드 소설들은 하나의 텅 빈 무대이자 거울처럼 작용하면서,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기의들이 삽입될 수 있는 투명한 기표였다. 이는 마이클 데닝이 언급했던 일종의 ‘악센트’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러시아의 언어학자 발렌틴 볼로시노프에게서 빌려온 이 용어를 사용하여 대중문학 속 모든 캐릭터와 단어, 형상, 내러티브 패턴이 “그들이 굴절시키니는 다른 계급의 악센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균일하게 통일 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나의 언어로 말해지더라도 개인별로 다른 기원을 두고 있는 ‘악센트’가 가미됨으로써, 대중문학이 각기 다른 역사와 이데올로기로 읽혀질 수 있는 다층적인 텍스트임을 주장한 것이다. (177, 178~179면)


대실 해밋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곤경을 간결하게 적시했다. “거기 있지 않은 검은 모자를 찾아 어두운 방에서 더듬거리는 장님 남자”라고. (232~233면)


말로가 생존하기 위한 문제 해결 방식은 혼돈에 빠진 세계 자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말로는 이 부패의 세계에서 실제 살인자를 지목하고 그를 ‘골라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균형일 뿐임을 알고 있다. 그들 세계의 ‘안정’은 ‘부패의 평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말로라는 외부 자극이 잠깐 그들을 혼란시켰다 할지라도 다시금 자신들의 평형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2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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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Space Fantasia (2001 야화) 세트 1~3(완결) 2001 Space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글.그림, 박상준 감수 / 애니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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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유혹의 영원한 밤"

『2001 야화 2001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애니북스 펴냄)


이 책은 일본의 만화가 호시노 유키노부가 하드 SF에 대한 오마주의 형식으로 구성한 20편의 우주 서사시다. 이 책의 오프닝은 하드 SF의 선구자라 할 만한 영국의 아서 C. 클라크에 대한 존경을 볼 수 있는 일련의 컷 앤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부터 아서 클라크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땄다. 각 편의 제목도 하드 SF의 고전들을 그대로 옮겨왔다. 원숭이와 뼈다귀 오프닝과 제목의 구성을 보고 한 사람의 SF 팬이 좋아하는 작품들을 그림으로 극화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츠야 코야마가 연재중인 '우주형제'가 우주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드라마에 치중했기에 어쨌든 '이야기'라면, 호시노 유키노부의 이 작품은 인간이 배제된 시로 흐른다. 사람들은 우주 안에서 먼지일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강조하면 추접해지고 비루해진다. 우주를 올려다보다 그 안으로 들어간 인간들의 기록을 남기는 데까지 인류의 승리같은 것을 말하고 앉아있는 것이 "'사람'을 강조"하는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에피소드부터 유키노부는 이야기에서 시적 사유로 넘어간다. 이제부터 모든 단편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토건사업은 망하고, 유전자로 대를 이어가며 겨우 버티지만 인간은 다시 안으로 안으로 되밀려온다. 


 전체적으로 중요한 극적 토대는 1권에서 모두 제시가 되는데, 길이가 가장 길기도 하고 밀턴의 '실락원'의 구절들을 삽입하여 구성력을 높인 1권 마지막 에피소드 '악마의 별'은 그림 상의 구도나 마지막에 과학자이자 신부인 라몬이 하는 기도 모두 백미다. 그 외에도 동면 캡슐 안에서의 심우주 여행의 진실, 인류 파종 계획 등등 성좌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빅뱅들이 1권 안에 모두 담겨 있다. 


 2권은 1권 마지막, 마왕성의 발견으로 완성된 하이퍼 스페이스 항행이 이룩한 우주 식민지 건설의 첫 발자국, 그 이후의 전혀 다른 우주와 그 안에 발을 디뎌도 태양계에서와 별다를 것 없는 사람들의 죄의 순환고리, 우주 지성체의 독백, 몇 개의 소품이 있다. 2권은 간주곡의 색이 짙다. 1권에서 운을 뗀 이야기들의 중간 보고 형식의 짧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3권은 인간 아닌 생명을 통찰하고 경외한다. 시간을 여행하는 새와 의태생물들이 만들어낸 악몽의 세계, 자기들만의 인류파종계획을 행하고 있는 우주 식물. 그 안에서 인간은 유전자로만 남아 하찮게도 또 죄를 대물림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1권의 로빈슨 부부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대를 이어 인류의 근심을 표상하는 지, 결국 독자는 거기서 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래 전(1권에서) 우주로 보내진 또 한 명의 탐험가 커크 이야기의 마침표는 고맙게도, 번외편으로 출간된 '2001+5'에 실려있다. 유일한 해피엔딩이라 말하고 싶은 에피소드다. 2권 어디에서 홀로 우주 유영하며 고독을 씹는 커크의 모습은 뇌리를 떠나지 않고 못내 남는다. 



"눈을 떠라, 여행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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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비평의 길을 열다
에밀리 비커턴 지음, 정용준.이수원 옮김 / 이앤비플러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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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라는 익숙한 것에 붙은 '카이에'라는 낯선 것의 간추린 역사: 만약의 오해 아닌 오해가 하나 있다. 진지함은 어디서나 지나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라는 것. 진지한 사람은 웃기거나 썰렁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시초의 '카이에 뒤 시네마' 의 상징이었다던 노란색 표지를 본 딴 국역본의 이 책은 '영화'에 진지하고 게다가! 급진적이었던 한 무리의 시네필들이 걸어온 길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 진지하게 굴려는 사람에게 내가 속한 이 시대는 어떻게 나오는가? 애석하게도 저자 에밀리 비커턴 역시 지금의 '카이에'를 지지하지 않는다. 어쩌면 '카이에'의 마지막 황금기를 이끌었던 세르주 다네가 물러나고 그와 공동 편집장이었던 세르주 투비아나가 단독 편집권을 차지한 뒤의 '카이에'는 가벼워졌고 유해졌다. 특유의 고집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 편파적인 사랑과 지지로 똘똘뭉친 돌파력은 지금의 '카이에'에서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비커턴이 지금의 '카이에'(이건 고유명사다)에 대는 잣대를 앞으로의 '카이에'(이건 일반명사다)까지 던지진 않는다. 그녀는 불사조의 신화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카이에>는 현재 죽은 태양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영화의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풍부한 원천을 남겼다. <카이에>의 잿더미에서 1,000명의 대천재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222면, '맺음말')


 히치콕은 알지만, 하워드 훅스는 모르고, 장 뤽 고다르는 알지만 자크 리베트는 헛갈린 사람에게 이 책은 좀 난처하다. 약사(略史)의 미덕을 지키기 위해 친절하게 풀어주는 설명은 거의 생략됐기 때문이다. 대신 집중적으로 파헤쳐 정리한 듯한, 그래서 외워두고 싶은 문장들은 곳곳에 있다. 집단 '카이에'보단 그 안의 각자의 빛나는 지점을 돋아낸 그것들은 대부분이 긴 편이다.  


바쟁은 엄격한 질서와 자발성, 그 둘을 규정하는 자유와 속박의 혼재에 매료되어 마치 자신이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돌보며 느끼는 매혹과 같은 감정을 갖고 영화를 보았다. “그의 영화 사랑법은 영화를 통한 사랑법인데 그것은 마치 그가 앵무새나 카멜레온, 뱀 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세계의 생명체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바쟁의 글은 그가 영화 앞에서 경험하는 이 같은 폭로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즉 영화는 그에게 인생과 예술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고, 그는 이제 막 무언가를 알게 된 학생이 그 새로운 지식을 즉시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는 흥분된 열정으로 글을 썼다. (52면, '황색 시대: 1951-1959'


다네와 투비아나는 모두 1973년 이후 ≪리베라시옹 Libération≫에 비평을 써왔는데 이는 이들이 비평가의 역할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다네는 이 경험에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마감 시한이 빠른 데다 독자들이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분석해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좀더 정기적으로 그리고 보다 절박하게 제기해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다네는 이러한 형식으로 글을 쓰면서 진공 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보다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구체적인 적―”반동적이며 파시스트적인 영화”―에 대항해 싸우는 실제 투쟁의 일부가 되는 것을 느꼈으며, 이 투쟁에 글을 쓰며 참여할 때 저널리스트들은 그 대상, 즉 독자를 고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145면, '다네의 시대: 1974-1981')


 이 책(지금 독서일기 쓰는 비커턴의 책 또는 카이에'의 역사라는 추상적인 책)에서 유일하게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영화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정의 이야기들이었다. '카이에' 1세대에게 영화가 가족과 교육을 대신했다는 대목이나 들뢰즈나 푸코 등 동시대의 지식인들의 영화 사랑으로 뛰어나고 힘이 있었으며 역사적인 공동 창작물을 남긴 에피소드가 그렇다. 정치로 뜨겁기도 했고, 이론에 경도돼 아카데믹해지기도 했다가 이제는 자본 '안에서'(그건 창간호 때부터 주어진 조건이었다. 문제는 한창 때와 달리 지금의 '카이에'가) 그냥 순응하며 살기로 이어져 오기까지 '카이에'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아직 단 한 권의 '카이에 뒤 시네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비커턴의 안내를 받으며, '카이에'의 지속이 아니라 그 '정신'의 지금의 당위성과 가능성 그리고 잠재성을 진지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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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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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서문으로 이루어진 제 1권 제 1부 `콩브레` 또는 한 권의 책으로써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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