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설 - 그 기원과 매혹
김용언 지음 / 강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자폐적 인간의 중세 신학적 세계 통치에서 막다른 실존의 벽에 내몰린 안티 히어로의 근심과 세계 구원의 서사로 이행하다. 그리고 장르적 쾌감의 폭은 부단히 넓어지며 사유의 깊이까지 얻어가다. 대중의 장르, 시대의 문패를 얻다. 



홈즈에게 그 자신의 개성에 필적할 만한 모든 수수께끼는 제거되고 해결되어야만 한다. 개성이란 교육받고 교양 있는, 한 사회의 안녕을 책임질 수 있는 그 자신 같은 존재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다. 그 외의 타인들은 사회가 부가한 ‘정체성’으로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한다. 개성으로서의 위반이나 욕망의 표출은 근대 사회의 엄격한 판옵티콘의 시선에서는 위험하고 불온해진다. (중략) 군중 속에 쉽게 숨을 수 있는 익명성, 그러니까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 앞에서 홈즈는 자신의 뛰어난 개성을 발휘하여, 군중 속에 숨어 있는 범죄자의 정체성을 추적하고 결국은 포착하고야 만다. 탐정의 개성이 범죄자의 개성을 압도한다. (92~93면)


앞서 인용한 프랑코 모레티의 분류처럼 ‘장르당 평군 30년 주기’를 적용했을 때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절정기를 누렸던 영국의 고전적 추리소설은 대부분 계급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선에 갇혀 우아한 매너리즘을 고수했고, 1920년대 이후부터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갔다. 범죄가 대량화되고 잔혹해지며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담아낼 전혀 새로운 스타일과 서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131면)


하드보일드 소설이 그토록 엄청난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우선 작가와 독자층과 소설 주인공 사이의 일치된 교감을 꼽을 수 있다. (중략) 하드보일드 소설은 주로 ‘육체노동자들’에게 읽혔다는 사실 때문에 당대 평론가들에게 무시당했지만, 또한 이 육체노동자들이 하드보일드 소설을 적극적으로 애독하면서 투사한 자기 반영적 이미지야말로 당대의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주요한 지표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드보일드 소설들은 하나의 텅 빈 무대이자 거울처럼 작용하면서,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기의들이 삽입될 수 있는 투명한 기표였다. 이는 마이클 데닝이 언급했던 일종의 ‘악센트’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러시아의 언어학자 발렌틴 볼로시노프에게서 빌려온 이 용어를 사용하여 대중문학 속 모든 캐릭터와 단어, 형상, 내러티브 패턴이 “그들이 굴절시키니는 다른 계급의 악센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균일하게 통일 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나의 언어로 말해지더라도 개인별로 다른 기원을 두고 있는 ‘악센트’가 가미됨으로써, 대중문학이 각기 다른 역사와 이데올로기로 읽혀질 수 있는 다층적인 텍스트임을 주장한 것이다. (177, 178~179면)


대실 해밋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곤경을 간결하게 적시했다. “거기 있지 않은 검은 모자를 찾아 어두운 방에서 더듬거리는 장님 남자”라고. (232~233면)


말로가 생존하기 위한 문제 해결 방식은 혼돈에 빠진 세계 자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말로는 이 부패의 세계에서 실제 살인자를 지목하고 그를 ‘골라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균형일 뿐임을 알고 있다. 그들 세계의 ‘안정’은 ‘부패의 평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말로라는 외부 자극이 잠깐 그들을 혼란시켰다 할지라도 다시금 자신들의 평형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2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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