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유혹의 영원한 밤"
『2001 야화 2001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애니북스 펴냄)
이 책은 일본의 만화가 호시노 유키노부가 하드 SF에 대한 오마주의 형식으로 구성한 20편의 우주 서사시다. 이 책의 오프닝은 하드 SF의 선구자라 할 만한 영국의 아서 C. 클라크에 대한 존경을 볼 수 있는 일련의 컷 앤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부터 아서 클라크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땄다. 각 편의 제목도 하드 SF의 고전들을 그대로 옮겨왔다. 원숭이와 뼈다귀 오프닝과 제목의 구성을 보고 한 사람의 SF 팬이 좋아하는 작품들을 그림으로 극화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츠야 코야마가 연재중인 '우주형제'가 우주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드라마에 치중했기에 어쨌든 '이야기'라면, 호시노 유키노부의 이 작품은 인간이 배제된 시로 흐른다. 사람들은 우주 안에서 먼지일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강조하면 추접해지고 비루해진다. 우주를 올려다보다 그 안으로 들어간 인간들의 기록을 남기는 데까지 인류의 승리같은 것을 말하고 앉아있는 것이 "'사람'을 강조"하는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에피소드부터 유키노부는 이야기에서 시적 사유로 넘어간다. 이제부터 모든 단편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토건사업은 망하고, 유전자로 대를 이어가며 겨우 버티지만 인간은 다시 안으로 안으로 되밀려온다.
전체적으로 중요한 극적 토대는 1권에서 모두 제시가 되는데, 길이가 가장 길기도 하고 밀턴의 '실락원'의 구절들을 삽입하여 구성력을 높인 1권 마지막 에피소드 '악마의 별'은 그림 상의 구도나 마지막에 과학자이자 신부인 라몬이 하는 기도 모두 백미다. 그 외에도 동면 캡슐 안에서의 심우주 여행의 진실, 인류 파종 계획 등등 성좌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빅뱅들이 1권 안에 모두 담겨 있다.
2권은 1권 마지막, 마왕성의 발견으로 완성된 하이퍼 스페이스 항행이 이룩한 우주 식민지 건설의 첫 발자국, 그 이후의 전혀 다른 우주와 그 안에 발을 디뎌도 태양계에서와 별다를 것 없는 사람들의 죄의 순환고리, 우주 지성체의 독백, 몇 개의 소품이 있다. 2권은 간주곡의 색이 짙다. 1권에서 운을 뗀 이야기들의 중간 보고 형식의 짧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3권은 인간 아닌 생명을 통찰하고 경외한다. 시간을 여행하는 새와 의태생물들이 만들어낸 악몽의 세계, 자기들만의 인류파종계획을 행하고 있는 우주 식물. 그 안에서 인간은 유전자로만 남아 하찮게도 또 죄를 대물림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1권의 로빈슨 부부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대를 이어 인류의 근심을 표상하는 지, 결국 독자는 거기서 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래 전(1권에서) 우주로 보내진 또 한 명의 탐험가 커크 이야기의 마침표는 고맙게도, 번외편으로 출간된 '2001+5'에 실려있다. 유일한 해피엔딩이라 말하고 싶은 에피소드다. 2권 어디에서 홀로 우주 유영하며 고독을 씹는 커크의 모습은 뇌리를 떠나지 않고 못내 남는다.
"눈을 떠라, 여행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