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슈베르트 : 4개의 후기 현악 사중주곡 [2 for 1]
Decca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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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려하고 풍성하다(풍만함과 다른). 하지만 이탈리아 사중주단의 연주에는 항상 나로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소리들이 서로를 잡아당기면서 생기는 빈 공간들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추천하고 싶은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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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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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6일에(은근한 라임?ㅋㅋ) 도착했다.


내년 초에 읽기로 하고, 일단 만듦새에 대한 평을 남긴다.


(사진을 클릭하면 책의 질감을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1. 매우 가볍다. 내지를 부티 나지 않게, 소설의 폼에 맞게 적절한 무게(과장해서 깃털같다)의 종이로 설정한 점이 매우 마음에 든다. 





2. 북디자이너 야후벨이 전담한 한글판 볼라뇨의 커버 디자인은 열린책들 작가 전집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절판된 무선제본의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완성도면에서 가장 좋아하고, 표지 디자인만 놓고 본다면 프로이트 전집:개정판과 이번 볼라뇨가 넘버 원이다) 이번엔 말과 저승사자의 그림자를 이어서 책의 전체를 감싸는 내용의 그림으로 권마다 색을 달리했다. 




3. <buzzbook vol. 1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를 보면 <2666> 출간기획서가 있는데, 거기엔 총 3권으로 예정돼 있던 것을 다섯 권으로 확정했다. 챕터 분류를 위해 수정이 된 것 같다. 4, 5권이 가장 두껍고 2권이 가장 얇다. 2권은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떠올리게 하는 볼륨이다. 앞서 말한대로 책이 전체적으로 매우 가볍다. 지금까지 나왔던 열린책들 소설 가운데 가장 가볍다. 그래서 4, 5권도 두께에 비해 이동중에 읽는다해도, 가방에 넣을 때 공간차지야 하겠지만 무게로 인한 부담은 없다.





총평: 개인적으로 양장보다 무선제본을 좋아하는지라 그 부분은 열린책들 책에서 늘 아쉬운 부분이지만, 내가 느끼는 그 한계를 커버해낸 이번 책은 근래, 그 물질적 특질만으로 본다면 Best of best 구매 도서가 아닐까 싶다.


 다만, 이건 인터넷으로 박스를 살 때 자주 생기는 문제이긴 한데, 또 상자 한 쪽이 짓눌렸다... 뭐, 난 관대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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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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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괜찮은 마케팅! 결과물도 두루 흡족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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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맑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9
가라타니 고진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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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서 도약하여 사상가가 된 가라타니 고진의 첫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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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산의 책 9
가라타니 고진 지음, 김경원 옮김 / 이산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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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하는 독자, 생성되는 사상사"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가라타니 고진 지음, 이산 펴냄)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대표작 『트랜스크리틱』(도서출판 b)에서 말한다.


"나는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아나키스트이며, 맑스주의적인 정당이나 국가에 공감을 지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맑스에게 깊은 경의를 품고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 읽은 '국민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가 달린 『자본』이라는 책에 품었던 경탄은 해를 거듭하면서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의 '1985년 문고판 후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1978년 이 책을 출판할 때 후기에서 '서설'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일본문학의 평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본론'에 상응하는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을 썼지만,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 대해서는 아직 쓰지 못했다."


『트랜스크리틱』은 그가 "아직 쓰지 못했다"는 책일 것이다. 다만 1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 마르크스만의 집중적 독해에서 칸토로의 횡단이라는 운동이 더해졌다. 

 '1978년판 후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왜 마르크스를 읽는가? 모든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결국 하나의 '문제'가 필요한데, 그것이 내게는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사상가의 텍스트는 다의적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사상가로 변모해가는 데는 항상 마르크스라는 중핵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은 그가 말했듯이 '서설'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가 고진의 최초의 태도는 별것 없이, "텍스트 자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 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의 선언도 이런 것이었다. 그렇지만 루터와 그 이후의 '텍스트 중심'에는 계속 때가 끼기 쉽다는 문제가 있었다. 루터의 그 싸움이 순수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뭇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말할 때도 여전히 앞선 이해의 틀이 잠복해 있음을 보곤 한다. 복음에 대한 회고적이고 전투적인 순혈주의 말이다. 그렇게 보면 독자가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 텍스트를 압도해 버린, 텍스트가 단지 그것의 일부를 표시하는 데 불과한 듯이 보이는 의미체계"(23면)를 탈피해서 "읽는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폭력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사적유물론이라든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외재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단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본론』을 읽는다. 그것은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작품' 이외의 어떠한 철학이나 작자의 의도도 전제하지 않고 읽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작품을 읽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사상가 고진은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도약해서 그의 『트랜스크리틱』으로 건너간다. 나는 그의 마르크스 이해가 궁금한 것이다. 내가 다시 그의 텍스트로 간 데에는 사적 의미 구조가 없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나에게 '활달한 사상가'는 아니다. 그 도약 사이에서 가라타니 고진에게 변한 것이 있을까? 


"마르크스의 문체가 현저하게 변한 시기는 『독일 이데올로기』 이후이다. 사상가가 변한다는 것은 그의 문체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 내용이 변하여도 문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사상가는 조금도 변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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