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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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9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다가 반값 행사하는 것에 혹해서 덤으로 주문한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한동안 베스트셀러를 달릴 때도 그를 만날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반값이라는 유혹에 주문한 것이다.

 

깊이 생각하기 싫고(파스칼 키냐르에 질려서) 그냥 술술 넘기면서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잡았다. 내 기대를 무시하지 않고 이 책은 적당히 쉽고 아주 재미있었다.

 

소설의 미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소설은 장면들이 모두 영화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 큰 미덕이다.  

이제는 실패한 이상주의로 치부되고 마는 사회주의를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들이 지향했던 이상향을 제시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포획되어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이토록 쉽고 재미나게 쓸 수 있다니.  

오쿠다 히데오는 생생한 장면과 생명력있는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 그리고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쉽게 재미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내 취향은 어떤 설득을 위한 도구로서의 문학보다는 예술성을 지향한 문학에 더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 소설은 청소년기나 이십대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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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대본 + MP3 CD 1장) Screen Play
이일범 지음 / 스크린영어사 / 2009년 7월
구판절판


행동은 별개의 것이며 결정은 따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고 또 하리고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23쪽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 전 반 시간 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줘야 햇다.-49쪽


그녀는 기차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면 뒤쪽에 처지는 도시처럼 뒤에 남았다. 그 도시는 그대로 있다. 우리의 등 뒤 어디엔가.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도시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94쪽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142쪽

그녀는 완전히 탈진 상태였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법정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감추기 위해서 늘 싸워왔고 또 싸웠다. 그것을 실제로는 힘찬 후퇴일 수밖에 없는 전진과 실제로는 은폐된 패배일 수밖에 없는 승리로 이루어진 삶이었다. -144쪽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148쪽

나는 단 한 번도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책을 낭독하는 일은 계속했다. -중략-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201쪽

그녀는 나한테 있어 그토록 마음 편하게 가깝고도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찾아가고 싶지 않앗다. 나는 실제의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만 그녀가 과거에 지녔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5쪽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기대감을 보았으며, 나를 알아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내가 다가가자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두 눈을 보았고, 무엇인가를 찾고 묻는 그녀의 두 눈에 불안과 아픔의 빛이 서리는 것을 보았으며, 그녀의 얼굴빛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207쪽

하지만 왜 내가 그녀에게 내 인생의 한 자리를 내주었어야 한단 말인가? -210쪽

다음 날 아침 한나는 죽었다. 그녀는 동틀 녘에 목을 맸다. -215쪽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록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르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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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5 

 


현대문학 4월에의 특집, 신춘당선자들의 새로운 작품 중 김성중의 '그림자'는 어느 작품들보다도 재미있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당선작은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였다. 그 작품을 프린트해서 나는 국망봉 숲속 바위위에 걸터앉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심사평에선 '독자를 향한 돌팔매질이 야물지 못하며 의미의 돌멩이(문장)들이 충분한 비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나는 그저, 야 재밌게 잘썼다, 감탄할 뿐이었다.

 

오늘 읽은 김성중의 '그림자' 또한 읽기 시작하자마자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난시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겹쳐보이고 또 하나의 상을 만날 수 있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또 하나의 세상- 또 하나의 나, 도덕적이고 규범에 충실한 인간- 부도덕하고 야만적인 인간. 이러한 대칭적이고 모순적인 대립항은 알고보면 내 자신과 내 그림자와의 관계와 같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바뀌고 바뀐 그림자대로 행동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 아비규환이 된다. 아가씨의 그림자를 갖게 된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펴고 젊음을 얻었으며 목사의 그림자를 갖게 된 연쇄살인범은 감옥에서 기도한다.  

내 자신 조차도 어느날 동생과 그림자가 바뀌어있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동생인지 내가 나인지 혼란스럽다. 폐허가 되어버린 시가지는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나고 난잡한 성교와 범죄속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은 마치 '눈먼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그림자를 찾아서 제대로 바꿔주는 소녀가 나타나는데 그 소녀는 그림자가 없다. 그녀는 메시아일까. 소녀 덕에 사람들은 그림자를 되 찾게 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바로 그 소녀에게 있다고 소리친다.  

그리곤 세상에 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게 된다. 마침내 사람들은 모두 그림자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주제를 향해 몰아가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고 흡인력있는 문장의 힘이 보여서 김성중의 앞으로 작품 활동이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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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5 

 


현대문학(2009년 4월호)에 신춘당선자 특집이 실렸다. 2009 조선일보 단편소설 당선자인 채현선 작품 '모퉁이를 돌면'을 읽었다.

 

신춘당선작이었던 '아칸소스테가'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아내를 둔 나의 이야기라면  '모퉁이를 돌면'은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나와 그, 그녀들의 이야기다.

 

내게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미수가 있고 미세스 로렌스에겐 식물학자였던 로빈슨 로렌스가 있으며 남자에겐 생전에 만화영화를 좋아했던 아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대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미세스 로렌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게 꿈이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도 "우리 로빈슨이 반드시 도와줄거야. 그렇지, 허니?"라고 한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아들의 묘지에서 아들이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미쳤다고 생각해. 고통에 갇혀서 살아간다고도 하고. 당연해. 처음엔 죽는 게 차라리 나았거든. -생략- 결국 아들 녀석의 무덤에서 죽으려고 이곳을 찾아왔었어. 그런데 누군가 귀에 대고, 후욱, 입김을 불어넣는 거야. 우리는 그것이 아들아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보았지. 녀석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나는 미세스 로렌스가 실험삼아 구워보는 치그 케이크를 날마다 먹으며 지겨워하고, 죽은 영혼이 찾아와 입김을 불어넣고 바람을 타며 춤을 춘다는 남자를 허무맹랑한 말을 늘어놓는 궤변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세스 로렌스가 일러준 소원을 비는 호수를 찾아나서는데 실수로 호수에 빠지고 만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미수를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물속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긴 숨을 뱉었고 그때 누군가가 나의 엉덩이를 밀어올렸다.

 

남자는 말했다.  

모퉁이를 돌것인지 그냥 돌아갈 것인지 그자리에 죽어버릴 것인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자신은 모퉁이를 돌겠다고.  

나는 물 속에서 미수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났을 때 이미 모퉁이를 돌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 물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받아들일때 구원받는 것이다.

 

나는 입영통지서를 든 가방을 챙겨서 카페 미세스 로렌스를 벗어난다. 살아오는 동안의 굴곡을 몸매의 굴곡으로 소화한 미세스 로렌스는 계속 로빈슨 만의 로렌스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영화관 남자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며 묘지 영화관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미세스 로렌스가 구운 치즈 케이크를 먹는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옅은 바람이 스크린 자락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캐릭터들의 몸이 길어졌다가 짧아지고 구부러진다는 것을. 설령 그것이 바람의 영혼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영화관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찾아와 리듬을 타며 춤추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정말 상관없는 일이었다.--183쪽 마지막 부분. 

 

신춘당선작은 해마다 쏟아져나오지만 그 이후로 잊혀지는 당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채현선이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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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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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4 

 

파스칼 키냐르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읽을려고 빌렸지만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망설인 이유는 누군가가 읽기 힘들었다고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파스칼 키냐르는 영화로도 상영이 된 <세상의 모든 아침>의 원작자로 프랑스에서 1948년에 태어났다. 그는 <떠도는 그림자들>로 공쿠르 상을 받은 작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오페라 작곡가라고 한다. 참 대단하군.



은밀한 생>은 199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된다. 장편소설로 분류되어있지만 잠언 같고 시 같은 문장들은 그 자체로는 온전히 내게 다가오기 어려웠다. 그것은 내 머리속에서 형태를 갖지 않은 채 피어나는 수 많은 이미지들을 채워서 내가 짐작할 뿐이다.



화자가 사랑했던 네미 사틀레와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보이는 전반부는 그래도 읽기가 수월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뒷 부분으로 갈수록 읽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아이구, 자폐증에 걸린 영감탱이의 주절거림 같다"라고 중얼거리면서 어렵게 읽었다.



잘 읽히지 않는 것은 그의 글을 글 자체로 읽기에는 우선 내가 역량미달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문장 자체로 이해하려고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일반적인 '집'이라는 단오로만 읽을 수가 없다. '집'이라는 단어가 피워내는 많은 이미지들 중 적합한 이미지를 가져와야한다. 키냐르가 쓴 단어, 문장들의 나머지 반은 내가 채워가며 읽어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고 시적인 감성이 필요하다. 오죽 읽기가 팍팍했으면, 박상륭을 떠올렸을까.



소설이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깊은 사색의 순간을 그대로 기록한 것 같은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차례와 본문의 각 장에서 제목이 약간씩 다르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차례에서 제 1장은 제목을 괄호 속에 '아트라니'를 넣어두었는데 본문에서는 그냥 제 1장, 이런 식이다. 이것을 역자는 작가가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 침묵의 의미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키냐르는 말보다 침묵을 요구하고 소리나지 않는 연주에 감동하기를(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혹은 연주를 듣는 청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음악은 사랑이며 문학이다.

책 말미에 역자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은밀한 생’이라는 제목은 사회의 사각(死角)지대에서 사회의 중재 없이 살아가는 삶의 한 형태, 전류에 비유하자면 정상적인 흐름에서 단락(短絡)된 상태로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집단의 동의 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결혼이 아닌, 번식의 목적성이 배제된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은밀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480쪽.



번역을 하는데 3년이나 걸렸다는데도 나는 읽어내려가면서 문장이 턱턱 걸릴 때마다 불평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구. 키냐르 잘못이냐구, 번역자 잘못이냐구. 이런 문장을 볼까.



최초의 의존 상태에서 눈금이 새겨진 모든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각인을 향해 역류하려는 경향이 있다. -13쪽.



최초의 의존 상태는 뭐고 눈금이 새겨진 모든 것은 뭐란 말일까.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각인은 또 뭔가. 각인? 각인. 그리고 그 각인을 향해 눈금이 새겨진 모든 것이 역류한다?  

프랑스어 문장에 꼭 맞는 우리문장 대체가 어려운 건지, 키냐르의 사고를 내가 따라잡기 어려운 건지 잘 모르겠다. 마치 번역된(서투른) 논문을 읽을 때의 불편함을 느꼈다.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읽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이 혹시 있나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파스칼 키냐르의 책들은 모두 송경의씨가 번역을 한 모양이다. 이럴때 나는 힘이 빠진다.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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