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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59호 - 2009.여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배수아 작가의 '올빼미의 없음'을 두 번 읽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두고 얘기를 하는지 가닥을 잡느리 헤맸다.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책 읽는 오랜 습관 때문이다.
이 작품은 2009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단편이다. 두번째 읽을 때는 어느 정도 줄거리도 파악했겠다, 느긋하게 문장들을 즐기며 읽었다. 그 장소는 병원 대기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대기실의 텔레비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대한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귀로는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방송을 들으며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나도 목놓아 울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음으로 내 곁을 떠난 후에 그가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끝없이 중얼거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작품, '올빼미의 없음'이다.
외르그 드렙스가 죽은 후 화자와 베르너는 장례식을 치르며 그 과정에서 과연 죽음이라는게 어떤 것인지, 슬퍼한다는 형식이 어떤 위로를 주는 건지 끝없이 중얼거린다.
올빼미는 화자와 외르그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외르그의 창문으로 보이던 커다란 두 그루의 전나무에 올빼미는 날아와 앉아있곤 했었고 그 올빼미 사진을 외르그는 찍었고 화자는 그 사진을 좋아하혔다. 어느날 외르그는 자신의 창 앞에 있던 전나무가 사라졌으며 더 이상 올빼미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메일을 보내온다. 그리고 다음해(아마도)에 화자는 베르너로부터 외르그의 부음을 듣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별하는 절차, 장례식의 광경.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떤 슬픔의 형식으로도 메울 수 없는 그 공허함이 읽는 나를 한 없이 빨아들였다. 올빼미 없음, 외르그 없음.
병원 대기실에서 이 작품을 다시 읽는 동안 나는 한 줄 한 줄을 베껴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배수아 작가의 작품은 늘 나를 지상에서 한 뼘쯤 내 발을 들어올려 시공이 흐릿한 가운데 몽롱한 상태로 취하게 한다.
한 문장이지만 한 문장이라기엔 너무나 긴 문장, 그러나 그 속에 다 담을 수 없는 아픔이 행간에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문장을 옮겨본다.
-사람은 아프며,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다음이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안과 고독을 느끼고, 그리하여 스스로 깊은 우울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며, 그것은 원인으로 다가가기가 두려운 우울이므로 치유가 불가능하고, 일생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일을 하며, 당연하게도 미친 듯이 일을 하며, 그런 다음 자신이 해놓은 일이 모두 소용 없는 것으로 판명날 것임을 깨닫게 되고, 어떤 날 이후부터는 오직 종이와 필체의 산더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런 자신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 언젠가는 모두 떠날 것이며, 그리하여 남몰래 좌절한 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이고 불명확한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에 몰두하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가고, 어느 날 신문을 펼쳤는데, 다시 친구가 죽고, 친구가 이해할 수 없는 몸짓으로 갑자기 죽고, 함께 차를 마시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그 자리에 친구가 없고, 한마디 인사도 남기지 않은 영원한 작별, 비명 없이 베어져나가는 마음, 스스로에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늘 그렇듯이 여행을 하고, 비행기와 기차를 타며, 때로는 대양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고, 비행기의 창밖으로 하염없이 시선을 돌리며, 그것과 문득 눈이 마주치고, 자주 반복되는 그 행위로 인해 음울의 정서가 가슴에 쌓여가며, 태양이 비치는 드문 날이면 화분을 발코니에 내다놓고, 때로는 농담을 하고 미소도 지으며, 외국으로 이메일을 쓰고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치며, 명랑한 자리에 초대될 때도 있으며 그리고 글을 쓰며, 친구를 생각하고, 이미 죽은 친구들과 살아 있는 친구들을, 이미 죽은 친구들과 이제 앞으로 죽게 될 친구들을, 이런저런 약속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전시회나 음악회, 극장을 찾아가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며, 눈보라에 대해서 생각하고,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생가갛고, 그 생각을 생각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문득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으나 장거리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다시 아프다.
-2009문학동네 여름호, 205-2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