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5 

 


현대문학(2009년 4월호)에 신춘당선자 특집이 실렸다. 2009 조선일보 단편소설 당선자인 채현선 작품 '모퉁이를 돌면'을 읽었다.

 

신춘당선작이었던 '아칸소스테가'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아내를 둔 나의 이야기라면  '모퉁이를 돌면'은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나와 그, 그녀들의 이야기다.

 

내게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미수가 있고 미세스 로렌스에겐 식물학자였던 로빈슨 로렌스가 있으며 남자에겐 생전에 만화영화를 좋아했던 아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대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미세스 로렌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게 꿈이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도 "우리 로빈슨이 반드시 도와줄거야. 그렇지, 허니?"라고 한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아들의 묘지에서 아들이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미쳤다고 생각해. 고통에 갇혀서 살아간다고도 하고. 당연해. 처음엔 죽는 게 차라리 나았거든. -생략- 결국 아들 녀석의 무덤에서 죽으려고 이곳을 찾아왔었어. 그런데 누군가 귀에 대고, 후욱, 입김을 불어넣는 거야. 우리는 그것이 아들아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보았지. 녀석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나는 미세스 로렌스가 실험삼아 구워보는 치그 케이크를 날마다 먹으며 지겨워하고, 죽은 영혼이 찾아와 입김을 불어넣고 바람을 타며 춤을 춘다는 남자를 허무맹랑한 말을 늘어놓는 궤변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세스 로렌스가 일러준 소원을 비는 호수를 찾아나서는데 실수로 호수에 빠지고 만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미수를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물속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긴 숨을 뱉었고 그때 누군가가 나의 엉덩이를 밀어올렸다.

 

남자는 말했다.  

모퉁이를 돌것인지 그냥 돌아갈 것인지 그자리에 죽어버릴 것인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자신은 모퉁이를 돌겠다고.  

나는 물 속에서 미수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났을 때 이미 모퉁이를 돌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 물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받아들일때 구원받는 것이다.

 

나는 입영통지서를 든 가방을 챙겨서 카페 미세스 로렌스를 벗어난다. 살아오는 동안의 굴곡을 몸매의 굴곡으로 소화한 미세스 로렌스는 계속 로빈슨 만의 로렌스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영화관 남자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며 묘지 영화관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미세스 로렌스가 구운 치즈 케이크를 먹는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옅은 바람이 스크린 자락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캐릭터들의 몸이 길어졌다가 짧아지고 구부러진다는 것을. 설령 그것이 바람의 영혼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영화관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찾아와 리듬을 타며 춤추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정말 상관없는 일이었다.--183쪽 마지막 부분. 

 

신춘당선작은 해마다 쏟아져나오지만 그 이후로 잊혀지는 당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채현선이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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