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대본 + MP3 CD 1장) Screen Play
이일범 지음 / 스크린영어사 / 2009년 7월
구판절판


행동은 별개의 것이며 결정은 따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고 또 하리고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23쪽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 전 반 시간 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줘야 햇다.-49쪽


그녀는 기차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면 뒤쪽에 처지는 도시처럼 뒤에 남았다. 그 도시는 그대로 있다. 우리의 등 뒤 어디엔가.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도시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94쪽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142쪽

그녀는 완전히 탈진 상태였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법정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감추기 위해서 늘 싸워왔고 또 싸웠다. 그것을 실제로는 힘찬 후퇴일 수밖에 없는 전진과 실제로는 은폐된 패배일 수밖에 없는 승리로 이루어진 삶이었다. -144쪽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148쪽

나는 단 한 번도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책을 낭독하는 일은 계속했다. -중략-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201쪽

그녀는 나한테 있어 그토록 마음 편하게 가깝고도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찾아가고 싶지 않앗다. 나는 실제의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만 그녀가 과거에 지녔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5쪽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기대감을 보았으며, 나를 알아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내가 다가가자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두 눈을 보았고, 무엇인가를 찾고 묻는 그녀의 두 눈에 불안과 아픔의 빛이 서리는 것을 보았으며, 그녀의 얼굴빛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207쪽

하지만 왜 내가 그녀에게 내 인생의 한 자리를 내주었어야 한단 말인가? -210쪽

다음 날 아침 한나는 죽었다. 그녀는 동틀 녘에 목을 맸다. -215쪽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록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르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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