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수프 건강법 - 만병을 다스리는
노만 월커 지음, 로하스 365팀 옮김 / 삶과벗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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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수프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생즙인지 삶은 수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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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60호 - 2009.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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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그것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2009년 문학동네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작인 '제니'(기준영 작)를 본 후의 내 기분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가까운 이에게 이 영화에 얼마나 내가 매료되었는지 설명하고 싶어지곤 하지만 번번이 말이 막혔다. 그것은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간에 궁극으로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라는 질문으로 정리해오던 오랜 습성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감독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다는 거냐", 똑떨어지는 주제를 찾아야만 제대로 읽은 거고 제대로 본 것 같다. 그걸 찾아야만 누군가를 설득하는 논거가 될 것만 같다.  

 이러니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내 마음의 흔들림과 내 몸의 중력이탈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  

기준영씨의 당선작 '제니'를 읽고 관계없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끌어들인 것은 바로 딱 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호감은 이 소설이 영화적이라서가 아니다. 영화적인 것은 이 소설의 한 특징 중의 하나다. 장면 장면이 보여지는 그 이면이 내게 다가올 때 내 마음은 흔들린다. 이 작품은 말하지 않고 보여주면서 읽는 독자를 흔들리게 하는 힘을 가졌다.   

제니의 일상은 전지자 시점을 가진 것처럼 화자의 나래이션으로 보여진다. 통상적인 시점의 상식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부모를 홍희, 석주라 이름을 부르고 이모아 이모부를 안나와 용식이라 부른다.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장치들이 도발적이고 톡톡튀는 진술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어색하거나 과잉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심사평을 보니 수상작 선정에 세 편의 작품이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한다. 나머지 두 작품도 무척 궁금하다. 아마도 언젠가는 좋은 작품으로 등극을 하겠지. 기준영씨의 좋은 작품들을 앞으로 많이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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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59호 - 2009.여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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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의 '올빼미의 없음'을 두 번 읽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두고 얘기를 하는지 가닥을 잡느리 헤맸다.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책 읽는 오랜 습관 때문이다.  

이 작품은 2009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단편이다. 두번째 읽을 때는 어느 정도 줄거리도 파악했겠다, 느긋하게 문장들을 즐기며 읽었다. 그 장소는 병원 대기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대기실의 텔레비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대한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귀로는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방송을 들으며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나도 목놓아 울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음으로 내 곁을 떠난 후에 그가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끝없이 중얼거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작품, '올빼미의 없음'이다.  

외르그 드렙스가 죽은 후 화자와 베르너는 장례식을 치르며 그 과정에서 과연 죽음이라는게 어떤 것인지, 슬퍼한다는 형식이 어떤 위로를 주는 건지 끝없이 중얼거린다.  

 올빼미는 화자와 외르그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외르그의 창문으로 보이던 커다란 두 그루의 전나무에 올빼미는 날아와 앉아있곤 했었고 그 올빼미 사진을 외르그는 찍었고 화자는 그 사진을 좋아하혔다. 어느날 외르그는 자신의 창 앞에 있던 전나무가 사라졌으며 더 이상 올빼미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메일을 보내온다. 그리고 다음해(아마도)에 화자는 베르너로부터 외르그의 부음을 듣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별하는 절차, 장례식의 광경.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떤 슬픔의 형식으로도 메울 수 없는 그 공허함이 읽는 나를 한 없이 빨아들였다. 올빼미 없음, 외르그 없음.   

병원 대기실에서 이 작품을 다시 읽는 동안 나는 한 줄 한 줄을 베껴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배수아 작가의 작품은 늘 나를 지상에서 한 뼘쯤 내 발을 들어올려 시공이 흐릿한 가운데 몽롱한 상태로 취하게 한다.     

한 문장이지만 한 문장이라기엔 너무나 긴 문장, 그러나 그 속에 다 담을 수 없는 아픔이 행간에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문장을 옮겨본다.

-사람은 아프며,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다음이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안과 고독을 느끼고, 그리하여 스스로 깊은 우울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며, 그것은 원인으로 다가가기가 두려운 우울이므로 치유가 불가능하고, 일생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일을 하며, 당연하게도 미친 듯이 일을 하며, 그런 다음 자신이 해놓은 일이 모두 소용 없는 것으로 판명날 것임을 깨닫게 되고, 어떤 날 이후부터는 오직 종이와 필체의 산더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런 자신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 언젠가는 모두 떠날 것이며, 그리하여 남몰래 좌절한 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이고 불명확한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에 몰두하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가고, 어느 날 신문을 펼쳤는데, 다시 친구가 죽고, 친구가 이해할 수 없는 몸짓으로 갑자기 죽고, 함께 차를 마시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그 자리에 친구가 없고, 한마디 인사도 남기지 않은 영원한 작별, 비명 없이 베어져나가는 마음, 스스로에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늘 그렇듯이 여행을 하고, 비행기와 기차를 타며, 때로는 대양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고, 비행기의 창밖으로 하염없이 시선을 돌리며, 그것과 문득 눈이 마주치고, 자주 반복되는 그 행위로 인해 음울의 정서가 가슴에 쌓여가며, 태양이 비치는 드문 날이면 화분을 발코니에 내다놓고, 때로는 농담을 하고 미소도 지으며, 외국으로 이메일을 쓰고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치며, 명랑한 자리에 초대될 때도 있으며 그리고 글을 쓰며, 친구를 생각하고, 이미 죽은 친구들과 살아 있는 친구들을, 이미 죽은 친구들과 이제 앞으로 죽게 될 친구들을, 이런저런 약속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전시회나 음악회, 극장을 찾아가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며, 눈보라에 대해서 생각하고,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생가갛고, 그 생각을 생각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문득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으나 장거리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다시 아프다.

    -2009문학동네 여름호,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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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靑衣)
비페이위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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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 

[청의]. 이 책에는 서로 연관이 없이 독립적인 중편 <청의>, <추수이>, <서사>가 실려있다.

[청의]의 뒷 표지에는 이런 글이 크게 씌어있다.

 

어떤 탄식은 우주의 시간마저 멈추게 한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파문당한 영혼들이 피워낸 불안의 꽃

 

이 문장이야말로 이 소설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은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 군중을 선동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가만가만 읊조리지 않고(결코) 목울대에 혈관 돋우며 큰 소리로 과장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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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 어느 소설가가 집 짓는 동안 생긴 일
박정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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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1 

 

박정석 '하우스'는 부제 그대로 '어느 소설가가 집 짓는 동안 생긴 일'에 대한 글을 써놓은 책이다.

우연하게 박정석 작가에 대한 글을 읽고 바로 이 책을 주문했다.

박정석씨는 2004년 문학사상 공모에 당선한 소설가다.

 

살아가면서 생긴 일을 썼으니 수필인가?

나는 에세이집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뭐 일부러 읽지 않겠다 마음 먹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다.

그런데도 이 책은 읽고 싶었고,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다.

 

나는 집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집을 아름답게 혹은 세련되게 꾸미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그런 내 주장 배경에는 내 게으름이 있고 낮은 미적 수준에 대한 자각이 있다.

아름답거나 세련되게 꾸미려면 아무래도 부지런해야하고 감각이 있어야할 터이다.

생활하는데 편하면 된다는 아주 편리한 생각으로

내가 아무렇게나 사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로 박정석씨가 꿈꾸는 집을 이루기 위해 치룬 노고 같은 것을 치르고 싶은 생각일랑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집을 짓기 위해서 알아두어야할 것도 나는 없는데.

집 짓는 스토리를 토대로 쓴 소설 작품도 아닌데.

일상을 보여주면서 대단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현학도 없는데.

 

내가 책을 고르고 읽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글을 읽으며 그 글을 쓴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아닐까.

글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그, 그녀의 매력, 그게 바로 내가 책을 읽는 기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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