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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7
도널드 크루즈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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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나는 그 낱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귓가에서 ‘붕~붕~’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다. 높은 운전석과 커다란 운전대, 멀리 보이는 뒷거울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트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트럭 운전사가 내 꿈이니,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우와!’ 소리가 나오고도 남았다.

그런데 봐야지 봐야지 하고 펼쳐본 이 그림책은 나에게 그리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커다란 책 위에서 빨간색 트레일러가 검은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달리지만, 왠지 나에게는 그 트럭이 그냥 서 있는 것만 같다. ‘달린다 달려!’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방통행 길로 조심스레 우회전을 하고 힘을 내 속도를 높인 뒤 터널을 지나고 내리막길을 달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리는 트럭. 비와 안개를 뚫고 다리를 건너 달리는 트럭. 그러다 갑자기 우회전 한 번 또 하고는 목적지에 도착해 짐을 부리는 트럭.

그림을 설명하자면 이러할 테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정적이다. 강렬한 색채의 트럭이 구릉~구릉~ 끙끙대기도 하면서 때론 생생~ 달리는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친근한 그림으로만 표현돼 있어서 그런지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적어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런데 한편 달리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트럭은 늘 그렇게 짐을 싣고 단지 움직여 목적지에 도착하여 짐을 부리는 일을 되풀이 하니까 말이다. 그 잔잔한 움직임을 그냥 그것 그대로 보이려 했던 걸까? 그래도 나는 어디서 라디오 소리라도 이따금씩 들려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계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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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웃었니? 비룡소 창작그림책
윤정주 그림, 최승호 글 / 비룡소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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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내가 웃었냐구? 글쎄, 누가 웃었을까? 내가 웃은 거 맞나? 숲 속에서 웃음소리가 잇달아 난다. 그럴 때마다 동물들이 하나씩 나와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다. 몇 줄 되지도 않는 글을 이런 책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이들이 볼 책, 그것도 좀 어린 아이들이 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가능한 일일 거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림’이 있기에 그 짧은 글도 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예 같다. 한 장면 한 장면 푸근하고 재미있다. 동물들의 표정이 하나하나 장면장면 독특하게 살아 있고, 색감이 은은하여 편안함과 즐거움을 준다. 물론 시간 배경이 밤이라 그러해야 하겠지만, 화려하지 않고 흐릿하면서도 다양하게 색을 선택하고 배치한 점이 참 좋아 보인다. 또 동물들이 하나씩 걸치고 있거나 지니고 있는 것들이 재미있고, 앞 장면에서 뒤에 나올 동물을 하나씩 암시하는 것도 재미있다.

누가 웃었냐는 질문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계속 나와 궁금함을 일으키지만, 내가 그림을 보며 웃고 있는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맞다. 내가 웃고 있는 게 맞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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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여우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0
한성옥 그림, 팀 마이어스 글,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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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야기는 흥미롭다. 시인과 여우가 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궁금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재미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궁금함이 더해가는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여우의 대답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 시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런데 아이들도 그 여우의 대답을 읽으며 시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그 다음쪽에 바쇼의 생각이 나오면서 고민거리를 던져주긴 하지만, 그 생각은 아이들이 벌써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가진 생각을 잘못 여물게 할 소지가 있는 것이거나, 그럴 거 같다. 아이들이 그 생각을 아주 좋아하며 동의를 한다면, 그건 아마 그들이 벌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러는 것 아닐까?(그러니 어떤 아이들은 이야기에 나오는 세 편의 하이쿠에 대해 여우보다 더한 혹평을 할 거다.) 그런데 그 좋아함과 동의가 그 생각을 또 하나의 절대적인 생각으로 키워갈까 걱정도 살짝 된다. 아, 물론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어서 아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그 좋다(?)는 시들을 더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간중간 하이쿠가 몇 편 소개되고 여우와 바쇼의 말투가 아주 높임말은 아니어서 그런지, 차분하게 서술되는 지문이 그리 지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 아이들이 무리 없이 읽고 내용 이해도 쉽게 할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 다만, 첫 만남부터 바쇼와 여우가 반말투의 말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여우가 바쇼의 시를 보고 갑자기 높임말을 쓰는 것은 어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원문이 어떠한지, 옮긴이가 선택한 말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말투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변화가 이야기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첫 만남부터 “야, 자” 하는 관계로 설정이 되었다는 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그림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좀 있다. 미국 작가의 글에 한국인이 그림을 더해 책으로 나왔고, 더구나 좋은 상을 받았다는 것은 당연히 이 책이 내세울 만한 점일 테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한 적이 몇 번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그림의 질과 글/그림의 배치, 편집 같은 것들은 잘 되어 있다고 본다. 그림이 일본풍을 잘 살렸으면서도 그리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게 되어 좋다.

문제는 버찌와 벚꽃의 색이 좀 이상하다는 거다. 그게 뭐 중요하랴 하겠지만, 세상에 없는 걸 그리는 게 아닐진데 왜 색이 그러할까 의아함이 든다. 버찌는 달게 먹을 정도로 익으면 검붉은 색이 된다. 혹 버찌의 종류에 따라 다른가? 내가 알기로는 버찌가 밝게 붉을 때는 아직 익지 않은 때다. 내용에 나온 것처럼 ‘얼마나 달콤한지 말로 다할 수 없는 정도’로 익은 버찌라면 그림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밝은 붉은색이어서는 안 된다.(그림자에 가려 있는 버찌의 색이 진짜 버찌 색 같다.) 그리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면은 아주 멋은 있지만 벚꽃의 색이 그리 붉게 되어 있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 벚꽃이 분홍빛을 조금 띠는 게 있기는 하여도, 그렇게 붉은빛이 짙게 나는 건 없는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그 장면을 보고는 매화가 아닌가 했을 정도다. 아, 그리고 이상한 것이, 버찌가 늦여름(내용엔 ‘무더운 8월’이라고도 돼 있다)에 따 먹는 건가? 내가 알기로는 늦여름이면 버찌가 지고도 꽤 지났을 때인데, 일본의 기후와 지역의 위도가 우리와 달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여우가 바쇼를 칭찬하는 장면에 있는 바쇼의 얼굴이 다른 바쇼의 얼굴과 너무 다르다는 게 좀 흠 같다. 여기에 뱀발을 하나 또 달자면, 하이쿠의 세 행을 가운데 정렬하여 편집을 했는데, 그냥 좌단에 맞추는 편집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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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마법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3
패트리샤 폴라코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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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간단하다. 가족 모임을 하는 자리에 모인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직은 아이인 주인공에게 아이와 아이,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피어나는 활기와 웃음, 사랑이 큰 즐거움과 추억으로 남고, 그 즐거움과 추억은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은 채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가족이기에 맛볼 수 있는 행복과 그 이어짐을 지은이가 겪은 것을 바탕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책은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넘치는 감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활기와 웃음, 애정, 행복한 마음으로 넘쳐흐른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지나치다 보니 장면장면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만들어낸 거리감만 쌓인다.

말썽피우는 아이, 성질 더러운 어른, 차분한 성격의 인물은 하나도 없이 모두 활기와 웃음으로만 가득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배경’ 더하기 ‘훌륭한 교육(훌륭한 사회)’ 더하기 ‘한없는 가족의 사랑’ 더하기 ‘활기찬 천성’ 더하기 ‘그 천성의 완벽한 유전’ 더하기……, 너무 많은 조건들이 채워져야 가능한 모습 아닐까? 이야기 자체도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중간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나는 재미가 없는데,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참 재미있어 한다.

아쉬움을 주는 요소는 또 있다. 내용을 보면, 음식을 마련해오고 차리는 사람들, 그러니까 앞치마를 두른 사람은 대부분 여자다.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도 대부분 여자다. 야구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한 팀이 아예 다 남자다. 음식을 만들고 차리기 좋아하는 남자 어른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 어른은 원래 없는 건가? 남녀의 성 역할이 어느 정도는 구분돼 있어야 가족의 행복이 제대로 꽃피는 것일까?

지은이가 소중한 자기 경험을 보편화하지 못하고 자기 추억 속에서 추억이기에 가능한 즐거움만 뽑아 이야기로 펼쳐보인 것 같다. 나도 당연히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가족의 사랑을 바라지만, 그것이 그렇게 즐거움만으로 채워지는 건 왠지 낯간지럽다. 실제로는 재미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아, 그림도 그리 정감 있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못한 것 같고, 번역 또한 아주 좋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문체에서 간혹 지루함이 베어나고, 생생한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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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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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간다’? 제목만 봐서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심드렁한 얼굴로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에게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할머니. 표지 그림, 그것도 참 모를 일이다. 웬 둥그런 우물 안에서 누가 날뛰는 것 같은 모양. 뒤표지 그림, 그것도 참 모를 일이다.(사실 우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 책은 궁금함이 책을 열게 한다. 아, 또 하나, 진짜 ‘제대로’ 표현된 표지의 할아버지 할머니 표정 또한 책을 훌훌 넘겨보게 만든다.

이 책은 사이좋게 지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찾아온 이가 ‘훨훨 (날아서) 간다’. 새도 아니고 연도 아닌데 ‘훨훨’ 소리가 나는 듯 그 모양새 그대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우선 이 책을 사볼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재미있어요!” 하고 외치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 그림이 아주 제대로예요!” 하고 외치고 싶다. 정말 그 느낌 그대로 ‘킥킥킥’ 웃으며 ‘으응~’ 하며 글을 읽고 그림을 본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겨운 표정과 둘 사이에 흐르는, 뚝뚝 떨어질 듯한 애정이 사람 사이가 어땠으면 좋겠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책 자체가 정겹고, 뽀얀 종이에 정성을 다해 그렸을 정감 어린 색감의 그림이 화가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림 그리느라 수고 많으셨다고, 참말 잘 그리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물론 이 책을 이렇게 만들어낸 편집자들도 수고가 참 많았을 거다. ^^) 그러고 보니 이 책, 애정으로 똘똘 뭉친 책이다. 하긴, ‘훨훨’ 날아서 집을 나간 그 사람에게도 우리는 정을 느낄 판이니까. 아휴, 지금 다시 펼쳐 보니까 그 사람의 얼굴 표정 또한 압권일세.

글이 별로일 가능성이 많은 그림책에서, 글이 재미있고, 그림이 그 글을 이렇게 잘 살려줄 때, 그때 그림책의 진가가 들어나는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고 등장인물의 표정을 읽는 것이 진정 즐거운 일이 될 거다.(아이들이 이 책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에 얼마나 감정이입될지는 미지수지만.) 기분이 ‘훨훨’ 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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