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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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토끼]로 주목받은 신진작가 임태희 씨의 첫 청소년소설. 제목도 특이한 데다가 청소년문학에 힘을 쏟는 출판사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책이라 관심을 갖고 보았다.

일단 짧게 소감을 말하자면, 청소년문학의 본령은 과연 무엇일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부정적인 고민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할까.

짧은 재치와 이야기의 힘으로 이끌어간 작품이지만 잘 읽히지를 않는다. 손이 안 가고, 그저 재미가 없다. 무척 얇은 책인데도 이걸 언제 다 읽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그리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끝까지 읽고서도 작가가 도대체 무얼 얘기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게 어찌나 허탈한지. 또 기발할 수 있던 설정을 제목에서부터 내비추지만, 그걸 작품 전체에 녹여내지 못한 채 ‘기발하지? 기발해!’ 하고 독자한테 던지고는 그냥 힘없니 빠져버린 느낌이다.

청소년이 아닌 작가가 마치 청소년인 양 그들의 말투와 생각을 현실감 있게 재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짙은 이 작품을 실제 청소년은 어떻게 볼까. 얼마나 공감할까. 물론 작가가 그래야 할 작품이 있고 그럴 필요는 없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헌데 그러고자 작정한 듯한 이 작가의 의도가 뭔가 빗나가 있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무리 작가가 당대 현실의 청소년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일까.(물론 이 작품이 현실의 청소년을 실제로 생생하게 재현했는지부터 따져볼 문제지만.)

이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십대 여학생이 그 또래의 생활세계와 심리를 의미있게 드러내는 화자로서, 또 그걸 통찰할 계기를 마련해줄 화자로서 과연 합당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문학을 보면서 아무리 개별적인 경험치라도 그것이 작가를 거쳐 작품이 되었을 때는 보편적인 경험치를 아우르며 건드려주기를 바라니까 말이다.(물론 그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작품은 작가가 애쓴 정도와는 상관없이 길을 잃고 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깊이는 놓치고 청소년 독자에게 '나랑 공감해줘!'라는 부탁 겸 억지를 부리고 만 격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청소년문학은 어떠해야 할까. 유치함과 유의미함의 적절한 섞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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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풀빛 그림 아이 1
로드 클레멘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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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 커다란 공룡은 뭐지? 공룡 얼굴만 크게 보이는 책 표지가 처음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눈에 잘 띄는 표지이면서도 선뜻 제목과 전체 그림이 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근데 그걸 의도한 것일까? 뭔 책인지 궁금해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책 내용이 '일기'다. 오늘이든 어제든, 아니 내일이든 일기는 만날 똑같기만 했던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고 집에 오고 씻고 자고... 그 단단한 나날의 일상이 언제 깨질까 기대하면서, '오늘도 이런 거야?' 하는 아쉬움을 담뿍 담아 쓰고 그렸던 '오늘의 일기'. 헌데 이 책을 열어보니, 첫 장면에서부터 그 오래 묵은 아쉬움은 '팍' 하고 깨져나간다.

글만 읽으면 이 책은 그야말로 그저 그런 누구나의 일기다. 물론 몇몇 소소한 일상이 담기긴 했지만, 그 무엇 하나 보통 아이들의 일상에서 딱히 벗어나 있진 않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글만 읽어서는 상상하기 힘든 그저 그렇지 않은 세계가 그림에서 좌악 펼쳐진다. 그것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무심코 한두 장 넘겼다가 '어, 이거 웃기네?' 하고 돌아와 첫 장부터 다시 봤다.

일기 내용이 글과 그림에서 따로 논다. 아침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아이는 비장한 표정의 독수리 투구를 쓰고 날개를 펼쳐 절벽 아래로 비행을 한다. 동네에서 최고로 나이 많은 할머니는 그야말로 주름이 쭈글쭈글한 '공룡'이고, 얼마 전에 전학을 와서 아주 먼 곳에 있는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는 교복을 입은 손가락 긴 외계인! 도서관에서 껌을 씹다 들켜 내쫓기는 아이가 책의 바다로 빠져 익사(?)하기 전에 짓는 표정이란!

장면 하나하나가 기발하고 무릎을 치며 웃게 한다. 이렇게 아이다움을 잘 받아 적고 그린 책이 흔할까? 그렇지 않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기대를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그저 그런 일상을, 숙제로 쓰는 억지 일기에 담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아이들, 그 아이들 내면에는 바로 이런 '오늘의 일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리란 기대. 그렇게 쌓인 '오늘의 일기'가 아이들 마음에 상상의 힘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 실제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기에, 그 아이들을 보듬는 마음으로 품은 그 기대가 이 책을 쓰고 그리게 했을 것이다. 그래, 참 믿음직스러운 마음 씀씀이다.

아이들이 그야말로 재미나게, 깔깔대며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자기 내면에 이런 상상의 힘을 키울 싹을 띄웠으면 정말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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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 제1회 5.18 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높은 학년 동화 10
서지선 지음, 김병하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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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 이야기의 중심 사건이 되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끼리 상처를 주고받고, 또 풀어내고 하는 과정이 더 살갑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의심이란 역시 참 무서운 것이다. 의심을 품은 사람도 의도와 달리 그 의심이란 것에 빠져들게 되고, 의심을 받게 된 사람은 또 거기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큰 상처를 입는다. 사람 사이에 많은 다툼이 있겠지만, 의심만큼 상대를 비참하고 답답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또 자기 의심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때, 그것만큼 부끄럽고 죄를 지은 느낌에 사로잡힐 게 또 있을까. 특히 ‘돈’과 관련된 의심이라면 더더욱.

넉넉한 자연의 품 안에서 따뜻한 정과 노동을 나누며 귀하게, 살갑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돈이 낳은 의심. 그 의심은 습관과도 같은 그놈의 ‘지역감정’과 합쳐져 의심을 품은 사람에게나 받은 사람에게나 큰 상처를 입힌다. 돌이킬 수 없는 균열.
하지만 그 균열은 이미 정과 노동을 나누며 이웃이 되어, 형제가 되어 살던 그들의 정직과 용기로 어느새, 스르르 아문다. 아문 상처가 그동안 도둑맞은 마음을,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감사히 되돌려준다. 낮은 자리에 선 사람들의 정직과 용기를 읽으며 내 마음도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그들을 한껏 지지하게 된다. 살갑고 재미난 경상도 사투리가 인물들의 아픔과 치유를 넘치지 않게 담아 전해준다. 참 좋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들이 있다. 4,5,6학년 아이들이 볼 작품이라는 걸 작가가 얼마나 철저히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살이의 중요한 모습들을 민감하게 포착해 잘 드러냈지만, 그 모습들이 놓인 시대와 역사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끔 작품 속에 잘 녹여놓지는 못했다고 할까. 지역감정이란 것이 생긴 까닭부터를 아이들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감정의 폐해를 먼저 만나게 되고, 5.18민주화운동도 너무나 살짝,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맥락에 놓이지 못한 채 제시되었다. 자기 경험을 어둡고 속 깊은 우물에서 귀하게 길어 올리긴 했지만, 그것을 ‘지금 여기’의 아이들이 깊이 나눌 수 있도록 맥락을 잡아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받은 감동과 재미는 어쩌면 어른인 나이기에 가능한 누림일지도 모르겠다.

참, 그리고 한 가지. 잘 읽히지 않는 몇몇 문장들에 대한 지적. 특히 앞부분에서 마을 전경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그런 배경 묘사나 설명 같은 게 단순하게 읽히지 않아 때때로 몰입을 방해했다. 뒤로 갈수록 많이 줄어들어 괜찮게 읽혔지만, 아이들이 단순하고 쉽게 읽을 문장에 대한 고민이 조금만 더 되었더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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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쥐 털가죽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경옥 옮김, 김선배 그림 / 우리교육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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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 사람과 자연이 진정 소통하며 살던 시대. 사람과 동물 사이에 ‘대칭’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던,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던 시대. 그 시대 사람들은 동물을 잡아먹기 전에 동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꼭 죽은 동물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제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칭성의 사회를 살던 사람들은 철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신화로써 그러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후대에게 가르쳐왔다고 한다. 일본의 인문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야생적 사고의 산책’이라는 뜻의 ‘카이에 소바주 Cahier Sauvage’ 씨리즈 중 하나인 『곰에서 왕으로-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동아시아)에서 그러한 시대와 단절된 지금을 야만의 시대로 규정한다. ‘문화’는 없고 ‘문명’만 남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동물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는 야만의 시대. 나카자와 신이치는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아나서는 지적인 여행을 열어 야만의 시대를 벗어날 지혜를 들려준다.

이 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 「빙하쥐의 털가죽」 내용을 모두 소개한 뒤, 미야자와 겐지가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인간과 동물의 비대칭적 관계를 뒤엎는 통쾌한 이야기를 써왔다고 말한다. 신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야만의 문명을 쌓아온 인간세계에 도전하는 문학을 해온 작가로 평가하면서.

동화작가는 샤먼과 같다는 이야기를 어느 어린이문학평론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사람과 자연의 소통이 가능하던 시대의 이야기인 신화를 읽고 공부하는 것이 어린이책 관계자들, 특히 작가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러한 인식 때문일까. 이들에게 신화가 담고 있는 상상력은 그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만이 아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그 회복된 관계를 이야기로써 아이들과 나누기 위한 상상력이기도 할 터. 나카자와 신이치가 소개한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이 이 책 『빙하쥐 털가죽』(우리교육)이라는 그림책으로 되살아났는데, 샤먼으로서의 동화작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이야기의 분위기 자체가 신화적이다. “머나먼 북쪽 추운 곳”으로부터 “드문드문 바람결에 실려 온” 이 이야기는, 베링이라는 상상의 장소로 가는 열차를 무대로 펼쳐진다. 미야자와 겐지는 바람결에 실려 온 이야기 중 하나를 전해준 셈인데, 열차에는 수많은 동물의 털가죽을 벗겨 만든 외투를 입은 뚱보 신사, 뻣뻣한 천으로 만든 옷만 걸친 젊은이, 그리고 붉은 수염이 난, 북극여우처럼 생긴 사람 등 여러 명이 타고 있다. 이들은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점점 더 깊이 신화의 장소로 들어선다. 그러다 동쪽 창이 눈부시게 빛나는 새벽, 열차가 느닷없이 멈추고 스무 명쯤 되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총을 들고 객실로 들어온다. 이들은 마치 흰곰, 흰여우 같이 생겼는데, 열차에 타고 있던 붉은 수염 사나이도 총을 든 채 그 맨 앞에 서서는 뚱보 신사를 잠에서 깨운다. 그 뚱보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동물을 죽여 만든 털가죽 외투를 입었는지를 밤새 자랑했던, 검은 여우 털가죽을 900장이나 벗기러 베링에 가는 사내다. 총을 든 사내들이 뚱보를 밖으로 떠밀어 내보내는 사이, 갑자기 탕! 총소리가 난다. 그러면서 뻣뻣한 천으로 만든 옷만 걸인 젊은이가 나타나는데…….


미야자와 겐지는 추억의 만화 「은하철도 999」의 바탕이 된 「은하철도의 밤」을 쓴 작가라는데,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이 하나밖에 없다. 그것도 그의 단편에 그림을 많이 넣어 만든 어린이책인데, 『첼로 켜는 고슈』(보림)라는 작품으로, 여기서도 주인공 소년 고슈는 밤마다 동물들을 만나 첼로 연주를 들려주는, 동물과 인간이 소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침 비슷한 때에 미야자와 겐지의 두 단편이 그림이 들어간 책으로 나와 흥미로웠던 데다가, 『곰에서 왕으로』를 읽고 알고 있던 이야기인지라 관심을 갖고 얼른 이 책을 본 것이다.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이야기를 보는 맛’을 한껏 전해준다. 추운 북쪽으로 가는 열차가 이야기의 무대라 그런지, 차가운 서리가 어린 창문을 통해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런 느낌이 일러스트로 잘 표현되었다. 그러면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익살스럽기도 한 분위기도 한껏 잘 나타냈다. 설명하는 그림이 아닌,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살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그림이랄까. 글과 그림의 관계도 단조롭지 않게, 구성력 있게 잘 엮여졌고,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그림 그린 분은 책에서 처음 만나는 화가인데, 앞으로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을 보여줄지 무척 기대된다. 그동안 기존의 단편 작품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이 어린이책 판 안에서 많이 돼 왔는데, 이 책은 그런 책들 가운데 단연 그림책의 특성을 잘 살려 만들어진 책으로 돋보인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을 아이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권정생 동화집 『하느님의 눈물』(산하)이 떠오르기도 하니, 아울러 그 책도 아이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풀을 먹어야 사는 토끼가, 자기가 먹으면 죽게 될 수밖에 없는 풀이 가여워 풀을 먹지 못하는 이야기 「하느님의 눈물」. 자기 목숨을 유지하려면 다른 생물을 죽여 먹을 수밖에 없는, 서로 먹고 먹힐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는 저 토끼처럼 내 목숨을 어떻게 유지해야 되나 고민을 주지만, 미야자와 겐지가 말한, 그의 작품을 통해 나카자와 신이치가 말한 인간과 자연의 대칭성 회복은 그런 고민을 해결해나갈 주요한 인식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신화적 사고가 잘 담긴 이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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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나가는 문 - 아르헨티나문학 다림세계문학 5
아나 마리아 슈아 지음, 조영실 옮김, 아나 루이사 스톡 그림 / 다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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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나가는 문’이라,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면 이 세상 바깥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건가?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걸까? 만약 나갈 수 있다면,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겪을 것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었기에, 또 생소하기만 한 아르헨티나 어린이문학이라는 점에도 이끌려 결국 이 책을 읽었다.

세상에서 나가는 문이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 문고리를 잡아보지 않을까 한다. 이 두 마음은 어쩌면 하나일지 모르겠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둘이면서 하나인 마음.
헌데 세상에서 나가는 문은 그 문을 깊이 갈구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기 마련일 듯하다. 엄연히 존재하여 우리가 찾아가거나 말거나 하는 문이 아닌, 적극적으로 불러내는 문. 이 세상에서 나가고 싶은, 혹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그 문을 소망할 테고,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 문을 통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아니 내 아이, 당신의 아이가 지금 그 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호기심은 곧 두려움이기도 하니, 바깥세상으로 가든 이 세상에 계속 있든 ‘살아가기’는 어차피 마찬가지일 거라고 충고할 것인가. 아니면 왜 다른 세상을 꿈꾸는지 대화해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그 문을 아이 앞에 불러내줄 것인가.

이 책을 쓴 작가 ‘아나 마리아 슈아’는 아마도 아이들이라면 세상에서 나가는 문을 찾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믿음은 작가도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깊은 믿음이 아닐까 싶다. 자기도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에서 나가는 문을 찾으려 했고, 그럴 수 없는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 바람만은 잃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세상에서 나가는 문을 찾고 있을 아이들에게 보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세상에서 나가는 문’이 되었다. 고작 손바닥 안에 놓일 작은 문이지만, 아이들의 적극적인 부름에 호응하여 불러내준 문이다. 펼쳐봐야 글자랑 그림밖에 없고 얼굴 하나 가릴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작은 문. 바로 이 책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자.
이야기 시작부터 흥미로운 말 걸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문을 열자마자 “네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란다”라며 책 읽는 ‘나’를, ‘내 경험’을 끌고 나와 앉힌다.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숱하게 많이 봤어도 이렇게 ‘네’ ‘너’를 지목하며 책 읽는 나를 불러들이는 이야기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오~ 쎈데?’ 하면서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점점 우리를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문으로 드나들게 한다. 이 책 띠지에 있는 문안처럼 “현실과 닿아 있는 ‘환상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줄곧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어쩌면 이렇게도 현실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아이였을 때 느끼고 겪었음직한 것들을 잘 불러 모아 그것을 현실과 환상을 직조해내는 가운데 무늬로 박아 넣을 수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적극적으로 불러내주는 작가의 면모가 잘 살아 있는 대목이다. 어디까지나 아이들 편에 서려는 태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단편 한 편 한 편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들의 경험이 우리 둘레 아이들의 경험으로 전이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 그 녀석이 지금 얘처럼 이런 경험을 했기에, 이런 상태에 있었기에 그때 그랬구나, 하며 현실의 아이를 이해하게끔 돕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이끌어낸다. 어른들의 거짓에 속이 타는 아이, 지저분한 물건 하나를 애지중지 간직하며 혼자 말을 거는 아이, 눈에 안 보이는 친구가 있는 듯 혼자 중얼거리는 아이,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걸 혼자서만 무서워하고 왠지 모를 두려움에 혼자 떠는 아이…….
이 책의 미덕은 또한 넘치지 않는 익살에도 있다. 대놓고 ‘너’한테 말을 걸며 이야기를 시작한 작가는 줄곧 이야기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지도, 또 한발 물러나 팔짱만 끼고 있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그때그때 발휘되는 익살이 웃음을 짓게 한다. 이야기 자체로, 또 언어감각으로도 익살을 준다. 물론 가끔은 익살을 들려주기 위해 어른이 아이에게 말을 거는 듯한 태도도 보여 작가와 아이들 사이에 거리감을 느끼게도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어차피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 식으로 전개되니 그리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모두 2부로 나눠진 듯한 구성에서, 뒤에 놓인 이야기 세 편은 아르헨티나의 전설에 바탕을 둔 것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전설이라,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인지라 호기심이 일기도 했지만 이질감이 느껴질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작가는 이야기 세 편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자기는 아르헨티나 전설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며, 그 전설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를 밝힌다. 이야기 사이에 작가의 말이 들어가 있는 건데, 그게 독특하면서도 재미있고, 작품의 이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돕기도 해서 우리 아이들이 읽기에 나쁘지 않겠다.
사실 이 대목은 이 책 작가에게 믿음을 갖고 지지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나라의 전설을 적극적으로 현대 이야기로 불러들여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전통을 새롭게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라 좋게 평가하고 싶다. 또 그런 시도에는 일방적인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의 의지도 들어 있어 더욱 믿음을 준다. 다양한 언어와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전해지기는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단단하다.
이런 의도로 씌어진 이야기가 재미도 쏠쏠하다. 현대 아이들의 보편적인 삶에 불러들인 전설이기에 이질적이지 않고 참신하다. 어디까지나 지금 아이들의 삶에 밑닿아 그들 편에 서려는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 아이들 스스로 이야기를 읽으며 자기 삶을 돌아보게도 한다.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읽었다는 기쁨이 크다. 영미권이나 일본의 작품, 또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나 상받은 작품만 그저 쏟아져 들어오는 우리 어린이책 출판계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 바깥 나라의 작품을 소개하려는 출판사의 의지도 돋보인다. 앞부분에서 번역투 문장이 몇몇 눈에 띄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읽혔고, 책 속 그림도 설명적이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잘 들어가 있어 좋았다. 이 책이 좀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어 아이들에게 현실 속 환상의 문, ‘세상에서 나가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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