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 제1회 5.18 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높은 학년 동화 10
서지선 지음, 김병하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 이야기의 중심 사건이 되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끼리 상처를 주고받고, 또 풀어내고 하는 과정이 더 살갑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의심이란 역시 참 무서운 것이다. 의심을 품은 사람도 의도와 달리 그 의심이란 것에 빠져들게 되고, 의심을 받게 된 사람은 또 거기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큰 상처를 입는다. 사람 사이에 많은 다툼이 있겠지만, 의심만큼 상대를 비참하고 답답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또 자기 의심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때, 그것만큼 부끄럽고 죄를 지은 느낌에 사로잡힐 게 또 있을까. 특히 ‘돈’과 관련된 의심이라면 더더욱.

넉넉한 자연의 품 안에서 따뜻한 정과 노동을 나누며 귀하게, 살갑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돈이 낳은 의심. 그 의심은 습관과도 같은 그놈의 ‘지역감정’과 합쳐져 의심을 품은 사람에게나 받은 사람에게나 큰 상처를 입힌다. 돌이킬 수 없는 균열.
하지만 그 균열은 이미 정과 노동을 나누며 이웃이 되어, 형제가 되어 살던 그들의 정직과 용기로 어느새, 스르르 아문다. 아문 상처가 그동안 도둑맞은 마음을,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감사히 되돌려준다. 낮은 자리에 선 사람들의 정직과 용기를 읽으며 내 마음도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그들을 한껏 지지하게 된다. 살갑고 재미난 경상도 사투리가 인물들의 아픔과 치유를 넘치지 않게 담아 전해준다. 참 좋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들이 있다. 4,5,6학년 아이들이 볼 작품이라는 걸 작가가 얼마나 철저히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살이의 중요한 모습들을 민감하게 포착해 잘 드러냈지만, 그 모습들이 놓인 시대와 역사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끔 작품 속에 잘 녹여놓지는 못했다고 할까. 지역감정이란 것이 생긴 까닭부터를 아이들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감정의 폐해를 먼저 만나게 되고, 5.18민주화운동도 너무나 살짝,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맥락에 놓이지 못한 채 제시되었다. 자기 경험을 어둡고 속 깊은 우물에서 귀하게 길어 올리긴 했지만, 그것을 ‘지금 여기’의 아이들이 깊이 나눌 수 있도록 맥락을 잡아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받은 감동과 재미는 어쩌면 어른인 나이기에 가능한 누림일지도 모르겠다.

참, 그리고 한 가지. 잘 읽히지 않는 몇몇 문장들에 대한 지적. 특히 앞부분에서 마을 전경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그런 배경 묘사나 설명 같은 게 단순하게 읽히지 않아 때때로 몰입을 방해했다. 뒤로 갈수록 많이 줄어들어 괜찮게 읽혔지만, 아이들이 단순하고 쉽게 읽을 문장에 대한 고민이 조금만 더 되었더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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