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은 나에게 정도의 차이일 뿐 어차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대개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더 마음이 끌린다거나 나를 더 생각해 준다거나 도덕적으로 장애가 없다거나 순수하다거나 심지어는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다 무의미한 핑계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섹스에 명분은 필요 없다. 사랑하지 않는 섹스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2. 사람들은 남자/여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 일한다. 먹이도 정체성도 부족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은 나약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가지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3. 나는 코웃음치면서 일어섰다. 세트 메뉴의 마지막 코스인 커피는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식사 코스를 끝까지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나는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떠나갈 것이다. 애피타이저는 생략할 수도 있고 버터를 두껍게 바른 빵을 맨 마지막에 먹을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시고 식사 전에 초콜릿을 먹고 야채 샐러드에는 간장 소스를 뿌린다.
겁낼 것이 무엇인가. 나는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안다. 그것은 '脫戀愛主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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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 때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 사람이 상처 한번 받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겠어. 다행히 그것도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사람의 숨결 속에서 말이야. 과거의 자신을 애써 부인하려고 하지 마. 그때엔 그게 아마도 최선이고 진실이었을 거야. 저 봐, 지금도 시간은 마라톤 선수처럼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어. 느린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굉장한 속도로 말이지. 이 순간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단 거야. 그러니 너무 과거에 대해 집착하지 마. 거꾸로 나이를 먹어 난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말이지.

  -윤대녕 '가족사진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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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뚜렷이 하기 싫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일상이 고인 물처럼 혹은 사방으로 뻗은 길처럼 그에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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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의 당간지주 앞에서 무량수전까지 걸어보라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집이 대개 산 속에 있게 마련인데 부석사는 산등성이에 있다고 했다. 개울을 건너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사과나무들이 펼쳐져 있다고.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했다.

신경숙 '종소리- 부석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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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돌이야 지금 내가 깔고 앉아 있지요

그건 큰 스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걸 빤히 아시면서 왜 바윗돌이

내 마음속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묻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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