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검 5 - 애장판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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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살면서 무언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는데도, 책이 품절된 것도 아닌데도, 애장판이 나왔을 정도로 이 작품은 걸작이다. 게다가 한글의 아름다움이 반짝이는 멋진 대사와 독백들은 한 편의 시같다. 또, 아사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설이나 바리의 노래들은 신화나 설화, 구전가요 등을 생각나게 한다.

나이가 들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좋아하는 작품도 달라지게 되고, 예전에 좋았던 것이 유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김혜린 선생님의 작품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좋아지고,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들도 생긴다. 그래서 수십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릴 땐 보이지 않던 수하이나 카라의 슬픈 내면도 보이고 왕이기에 속내를 감추어야 하는 천궁도 이해하게 된다.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신녀임을 되뇌이는 소서노의 외로움도 느껴진다.

많은 등장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냥 쉽게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 '아무르'의 재건을 위해 신궁을 무너뜨렸던 흰 석수 할아바이도, 적의 수장이지만 옛 초원의 혼을 잃지 않았던 전사 우르판도, 온갖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청산녀도, 그리고 전사의 아내로 당당하고 멋진 우이도, 다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이 끝나도 삶은 고단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완결에선 평온한 일상을 찾게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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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성 이야기 또하나의 문화 8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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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엄마들은 피임을 하지 않고 아이가 생기면 약을 먹고 지웠다고 한다. 때로는 수술을 하기도 했을테고. 더 옛날엔 약도 없었으니 그냥 낳았겠지. 왜 여자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성관계에서 여성은 항상 수동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하는 건지 참 안타깝다. 게다가 포르노에서 그려지는 여자의 모습이나, 직장이든 학교든 어디서나 당하게 되는 성차별이나 성추행, 또 술자리에서 듣게 되는 음란가요들, 이렇게 여성을 비하하는 일들이 세상엔 널려있다. 여자도 그저 한 인간일 뿐인데 어째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비록 요즘은 옛날보다 훨씬 평등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성관계에서 주인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성폭행을 당해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는 세상이니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이런 차별과 상처없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세상이란 게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고, 나 또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아이가 크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성교육에 대해서도 걱정이다. 내가 자랄 땐 집에서는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꽤 도움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만 실제로 부딪혔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가끔은 나도 성차별적인 말을 할 때가 있으니까. '남자가 그러면 못써'라던가...

꽁트 '그 남자가 절망한 이유'는 허탈한 웃음이 나고 '살려주세요!'는 슬프다. 딸이지만 태어날 수 있었던 걸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 생리를 남성이 할 경우, 지금과의 정 반대인 상황에 관한 재미있는 상상인 '이런 이야기는 어때?'도 유쾌하지만 씁쓸한 느낌을 준다. TV나 영화나 노래에서 제일 많이 다루는 것은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꿈처럼 달콤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헤어짐을 노래하는 애절한 발라드처럼 슬픈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고 때로는 싸워야하며,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저 사랑하니까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거나 상대방의 의견에 따르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긴 이런 사람이 요즘에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고민도 하게 되고, 또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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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같은 세월 창비시선 130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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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무 연작시들이 참 좋다. 지금은 온통 진한 초록색으로 숲이 덮여버렸지만, 봄에 매일 산에 오르며 나뭇잎들의 색이 변하는 걸 보면서 하루하루 즐거웠다. 나무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동을 준다. 때로는 말을 걸어 보고 싶을 때도 있다. 오늘 기분은 어떠니...라고. 나무 밑에 피어나는 갖가지 풀꽃들은 또 얼마나 예쁜지! 작고 귀여운 꽃을 볼 때마다 걸음이 멈춰진다.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건 김용택님의 시였다. 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 보는 걸 나도 보려고 애쓴다. 그리움도 즐거운 추억도 아름다운 자연도 또, 고단한 현실도...

이제 곧 여름이다. 큰 나무의 그늘 밑에서 쉬고 싶은 계절... 바람이 살랑 부는 나무 밑에서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때로는 소나기를 피하기도 할 것이다. 봄에 느꼈던 싱그러움과 고운 꽃들은 다 떨어져 어느샌가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나무는 항상 그렇게 거기에 서서 계절에 맞게 변해갈 것이다. 열매도 맺고 단풍도 들면서 언제나 사람들의 벗이 되어주겠지. 그 나무 밑에서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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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프리카 5 - 완결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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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님의 그림은 정말 예쁘다. 특히 <호텔 아프리카>에서는 눈부실 정도다. 어린 엘비스도 얼마나 귀여운지...^^ 그림이 예쁜 작가들 중엔 스토리가 형편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박희정은 예쁜 그림에 어울리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다섯 권의 책에 가득 풀어놓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엘비스의 어머니인 아델과 지요의 사랑은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호텔 아프리카>는 사랑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엔 많은 사랑이 있다. 엘비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처럼 짧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고, 죽은 후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단지 '사랑해'라는 글자만 쓰여진 편지를 수백장쯤 남기는 눈 먼 남자도 있고,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여자들도 있다. 가족에게든 연인에게든, 사람들에겐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단지 그림만으로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책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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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이야기 - My Beautiful Girl, Mari
권대웅 지음, 이성강 그림 / 이레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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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를 보고 그림이 너무 예뻐서 동화책을 보았는데, 애니와는 달리 남우가 아니라 마리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새로운 느낌이었다. 커다랗고 복실복실한 개를 타고 다니는 마리는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소녀다. 마리는 남우를 '나무'라고 부른다. '마리' 또한 남우가 지어준 이름이다. 마리는 아버지를 잃고 외로워하는 남우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다. 남우의 어머니는 동네 아저씨랑 결혼할 지도 모르고, 제일 친한 친구였던 준호는 서울로 전학을 간다고 한다. 남우는 모두들 다 떠난다고 슬퍼한다. 한창 사랑받고 커야 할 시기에 외로움을 먼저 알아버렸나 보다.

외로운 사람에겐 환상의 세계가 힘이 되어주는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도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자주 놀곤 했다. 상상속의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고, 공상으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엔 그게 외로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게도 별로 친구가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남우는 바닷가에 살고 있고 환상의 세계와 만나는 낡은 등대도 있으며 귀여운 고양이 '요'도 있으니 나보다는 낫다. 게다가 '마리'를 만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남우도 나도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 그런 것은 그저 꿈같은 일일 뿐이겠지. 그래도 눈이 내리는 어느 날에는 그런 꿈을 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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