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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r to One

From a fickering light
On a cold moonless night
A spark has grown into flame
Just to call out your name
Turns the darkness bright

And when everything seemed
To be only a dream
You whispered and said "it's real"
Tell the world how we feel
Sharing love so right

Never too late
Never too young
To find what your heart has been seeking
This is our new day - no more fears
Now we are

Closer - and growing ever
Closer - and we have only begun
Closer - to one

With our eyes open wide
Having nothing to hide
We walk each day hand-in-hand
No mistake where we stand
Always side-by-side

Never too old
Never too soon
To find life's most beautiful treasure
No turning back now
No regrets
For we are

Closer - and growing ever
Closer - with every touch we are
Closer - to one
Closer

Shing - love holds the key
To finding - sweet destiny
You and me
More and more we just goota be

Closer - and growing ever
Closer - to have you here
Next to me
Destiny
More and more we just gotta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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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가 나는 여름밤의 야외무대
토요문화광장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자



유럽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약을 하고 있는 Jazz Vocalist 나윤선.
이번 공연은 상반기를 결산하고 3개월간 유럽투어를 위해 출국하기 전 그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이다.

관람료 :  무료 (우천시 공연없음)
공연기간 :  2004-08-07
공연시간 :  오후 7시 30분
문의전화 :  02-2280-4115~6(고객지원센터)
장소 :  국립극장 문화광장 

- 국립극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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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재즈, 맛보실래요?
[속보, 생활/문화] 2004년 02월 18일 (수) 16:30
◇일본 재즈계 물들이는 한국여성 3人 3味

일본 재즈계에서 한국계 여성 파워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재즈 시장 규모가 큰 곳. 당연히 실력 있는 연주자들과 보컬리스트들이 적지 않다. 경쟁 치열한 일본 재즈 무대에서 보컬 부문 정상권에 오른 재일교포 3인방. 게이코 리, 안 샐리, 눈. 이름만으론 국적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모두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창법과 음색도 3인3색. 게이코 리는 ‘블루지’하고, 안 샐리는 맑고 곱다. 막내인 눈은 포근하게 속삭이는 창법이 매혹적이다.

‘곰삭은 젓갈’ 게이코 리

게이코 리의 목소리는 곰삭은 젓갈 같다. 저음의 허스키 보이스. 재즈적 감각도 탁월하다. 한국 이름은 이경자(李京子). 1965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고교 시절에 퓨전밴드의 키보드 주자로 잠시 활동했다.

재즈 보컬리스트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93년. 도쿄와 나고야의 재즈바에서 노래하다 유명한 재즈 드러머 그래디 데이트에게 발탁되었다. 95년 첫 앨범 ‘Imagine’ 발표. 피아노에 캐니 배론, 드럼에 그래디 데이트, 베이스를 레이 드러몬드가 맡은 최상의 세션이었다. 그녀는 이 데뷔 앨범 한장으로 일본 최고의 재즈가수로 ‘떴다’. 서양인이나 일본인은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음색과 창법. 그녀의 노래는 일본 재즈팬들을 적잖이 열광시켰다.

이 음반은 곧바로 한국에 상륙, 수많은 게이코 리의 팬을 만들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웨이브진 긴 머리, 상큼하게 치켜올라간 눈꼬리, 반쯤 잠든 듯한 나른한 표정도 인기에 한몫을 담당했다. 그녀는 지난해 발표한 ‘Vitamin K’까지 모두 12장의 앨범을 내놓았다. 그동안 함께 녹음한 연주자들의 면면이 한마디로 ‘드림팀’이다. 리 코니츠, 아트 파머, 론 카터, 조 헨더슨 등.

그녀는 99년 일본의 재즈잡지 ‘스윙저널’에서 ‘베스트 보컬리스트’로 선정됐다. 현재 일본 재즈 무대에서 그녀의 라이벌은 오직 한명. 148㎝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폭발적 ‘보컬 파워’를 보여주는 치에 아야도


정도다.

내년이면 마흔. 노래에서는 해가 갈수록 연륜이 배어난다. ‘한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의 목소리는 서편제 한 대목을 불러도 어울릴 듯하다. 몇해 전 내한한 그녀에게 “혹시 판소리를 들어봤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런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면서 “판소리를 몇번 들어봤는데,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끌린다”고 대답했다.

‘상큼한 샐러드’ 안 샐리

안샐리의 목소리는 맑고 투명하다. 낮은 음역에선 다소 불안할 때도 있지만, 비음이 약간 섞인 중·고역에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낸다. 게이코 리의 음색과는 정반대. 안 샐리의 상큼한 목소리는 보사노바 스타일의 재즈에서 특히 빛난다. 수면을 가볍게 차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 그녀의 보사노바는 그런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올해로 데뷔 4년째. 안 샐리는 이력이 독특하다. 게이코 리와 마찬가지로 재일교포 3세.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음악의 길에 들어선 것은 의대 재학중이던 시절, 학교 서클에서 노래를 부르면서였다. 재즈와 의학공부를 병행하며 무사히 대학을 마친 그녀는 현재 심장내과 전문의로 일한다. 의사와 재즈의 길을 동시에 걷는 보기 드문 경우. 요즘 말로 ‘투잡스족’인 셈이다.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에 눈빛이 제법 강렬하다. 어두운 조명이 어울리는 게이코 리의 분위기와 달리, 안 샐리는 깔끔하고 단정하다. 음악도 역시 외모와 닮았다. 2001년 10월에 발표한 첫 앨범 ‘Voyage’는 깔끔한 그릇에 보기 좋게 담긴 일본 음식 같다. 일본에서 보사노바 기타 일인자로 평가받는 나카무라 요시로, 하모니카 연주로 전세계에 폭넓은 팬을 갖고 있는 투츠 틸레망스가 참여했다. 나카무라 요시로는 국내에 생소하지만 투츠 틸레망스는 많이 알려져 있다. 편안하게 듣기에 딱 좋은 그의 하모니카 연주를 기억한다면 안 샐리의 첫 음반에 담긴 음악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안 샐리는 지금까지 모두 4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지난해 4월 ‘Day Dream’과 ‘Moon Dance’를 동시 발매했고, 12월엔 ‘Hallelujah’를 발표하여 일본 HMV 재즈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 선보인 음반은 없다. 한국 시장에선 올봄부터 순차적으로 발매, 올해 안에 4장이 모두 출시될 예정이다. C&L과 BMG에서 각각 2장씩 내놓는다.

‘부드러운 케익’ 눈

눈은 지난해 10월 데뷔, 재즈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올해 26살. 한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파워가 실린 목소리는 아니지만, 온몸에 감기는 듯한 부드러운 스윙이 일품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가성을 사용하는 창법. 일본의 재즈 비평가 후나미 마리네는 “눈의 가성은 우아하고 경쾌하며 포용력이 넘친다”고 극찬했다.

그녀는 재일교포 4세. 게다가 안 샐리와는 먼 친척뻘이다. 재즈계 데뷔는 우연이었다. 어느날 ‘친척 언니’ 안 샐리의 집을 방문했다가 일본 재즈계의 유력자인 스즈키 곤잘레스를 만난다. 그는 안 샐리를 데뷔시킨 프로듀서였고 소울보사 트리오의 리더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스즈키 곤잘레스는 바로 그 자리에서 눈의 노래에 매료돼 가수로 데뷔시킬 결심을 굳힌다. 그는 즉각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자고 제의한다. 바로 이 레코딩이 지난해 10월 JVC를 통해 발매된 눈의 데뷔 앨범 ‘Better Than Anything’이다. 한마디로 속전 속결. 하지만 음반에 담긴 모든 곡들이 한치의 허술함도 없다. 그만큼 눈은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재질을 타고났다.

이 데뷔 앨범은 최근 국내에도 출시됐다. 베니 굿맨의 연주로 유명한 ‘Moonglow’부터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Getting Some Fun Out Of Life’까지 모두 12곡을 수록했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로 가득 채워진, 부담 없이 듣기 좋은 음반이다.

눈은 일본 재즈계의 떠오르는 별이다. 실제 이름은 가와무라 가스미. 데뷔 후 5개월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최근 재즈보컬 인기차트 3위까지 치솟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듯하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의 음악잡지들은 일제히 눈을 대서특필했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가 한국계라는 내용은 실려있지 않다.

〈문학수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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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JAZZ 1월호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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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같은 딸…재즈의 길 同行…이정식·이발차 부녀
재즈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43)은 올해 초 자신이 이끄는 밴드 ‘서울재즈퀄텟’의 피아니스트로 큰 딸 이발차(22)를 맞아 들였다. 2년 전부터 가끔씩 아버지 공연에서 피아노를 쳤던 딸은 이제 아버지 밴드의 정식멤버가 됐다. 부녀가 한 밴드에서 연주하는 경우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발차’란 이름이 참 독특하다고 했더니 이정식이 사연을 설명해줬다. “얘 증조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너무 촌스럽다고 해서 그동안 ‘이예숙’이란 예명을 써왔어요. 그러다가 얘가 연주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발차란 본명을 다시 쓰기 시작했죠. 아무래도 개성이 중요하니까요.”

나란히 옆에 앉으니 부녀는 오누이처럼 보였다. 이정식이 일찍 결혼한 탓에 부녀의 나이 차는 21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정식의 차림이며 얼굴은 또래보다 젊은 편이었고,정장을 차려입은 딸은 꽤 성숙한 느낌을 줬다.

딸이 재즈 피아니스트로 나서면서 부녀는 재즈의 길을 함께 가게 됐다. 그러나 한 세대도 못되는 세월을 앞뒤로 재즈에 닿기까지 둘이 걸어온 길은 너무나 달랐다. 아버지가 자갈 가득한 길을 맨발로 걸어왔다면,딸은 잘 닦인 고속도로를 자동차로 달려왔다고 할까.

이정식은 중학교 때 브라스밴드에서 처음 색소폰을 입에 물었다. 그 후 색소폰은 이정식의 분신이 되었지만,이 악기로 밥을 먹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군악대를 거쳐 사회에 나온 20대 초반부터 밤무대 연주 생활을 시작했어요. 카바레는 물론이고 유랑극단,심지어 서커스단 아래서도 색소폰을 불었죠. 아마 나처럼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한 사람도 드물껄요,허허허.”

20대 그 시절,이정식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유랑극단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던 시절은 말 그대로 자장면 한 끼 먹으며 하루를 버텨야 했어요. 집사람과 갓 태어난 딸을 지방의 월셋방에 떼어놓고 다녔는데 나 먹을 것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집에 부쳐줄 돈이 있었겠어요? 애는 눈에 황달이 들고,마누라는 빈혈기가 돌았죠.”

아버지의 눈물겨운 고생담을 들은 딸의 반응은 뜻밖에도 “참 낭만적이예요”였다. “가끔 아버지로부터 옛날 얘기를 듣는데 그때마다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음악가들의 얘기 같잖아요. 사실 전 모든 게 너무 쉬웠어요. 배를 곯아본 적도 없구요.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에 비해 음악에 대한 애착이 약하고 또 열심히 안하는 것 같아요.”

고생 고생하며 대중가요를 불던 이정식이 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꿈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배 고프고 생활이 어렵다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우리같은 ‘딴따라’들에게는 비전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 당시 연주자라고 하면 거의 밑바닥 인생 취급을 받았죠. 아무도 딸을 주려 하지지 않았고,어디 가서 음악 한다고 얘기하는 게 창피했어요.” 내일이 없는 삶을 이어가며 주변의 많은 연주인들은 술이나 여자에 빠져 인생을 소진했다. 젊은 이정식은 이대로 살 수 없다고 결심한다. “어차피 평생 딴따라로 살아갈 팔자라면 이 바닥에서 최고의 음악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재즈였어요. 재즈를 하려고 하니까 주변에선 돈이 안된다며 다 말리더군요.”

오기로 시작해 독학으로 재즈를 공부한 아버지와 달리 딸은 어릴 때부터 집 안에 넘쳐나는 음반들을 들으며 자연스레 재즈를 익혔다. 집 안의 피아노는 어릴 적부터 그녀의 장난감이었다. 이발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재즈를 한 번 배워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이정식은 무척 기뻤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재즈라면 내가 좀 힘이 돼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제 우리나라도 재즈한다고 굶어죽는 시절은 벗어났구요.”

이정식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서민적’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의 고생과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음악에 양분이 됐다. “다양한 경험들이 내 몸 안에 녹아 있어요. 그래서 내가 풀어내는 재즈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회한에 맞닿을 수 있다고 봅니다. 거칠고 촌스럽기도 하지만 뚝배기 맛이 나는 재즈,난 그걸 ‘서민적 재즈’라고 부르고 싶어요.”

이정식을 곁에서 오래 지켜봐온 이발차는 아버지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으로 열정을 꼽았다. “연주할 때 뿜어져 나오는 아버지의 열정적인 모습을 닮고 싶어요. 저는 아직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음악적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그게 음악만으로는 되는 게 아닌가 봐요. 아버지는 늘 경험이 많고 생각이 깊어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죠.”

국내 재즈계에서 이정식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 7장의 색소폰 연주음반을 낸 실력파 뮤지션,인기 재즈밴드 서울재즈퀄텟의 리더,5년이 넘게 수원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음악 교수,국내 유일의 재즈 프로그램인 CBS ‘0시의 재즈’ 진행자. 이 모든 타이틀은 유학파들이 넘쳐나는 국내 재즈계에서 이정식이 독학으로 획득한 것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이정식을 아버지로 둔 덕에 이발차의 음악 인생은 남들보다 쉽게 출발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악을 하겠다고 나선 이상,이정식이란 이름은 그녀에게 무엇보다 높은 장벽이다. “어딜 가나 ‘이정식의 딸’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녀요. 이정식의 딸이 아니라 재즈 피아니스트 이발차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 몰라요.”

이정식은 요즘 해외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출반한 ‘원더풀 피스(Wonderful Peace)’의 해외 판로를 모색하는 한편 다음달 1일 LG아트센터에서 ‘아시안 스피리츠(Asian Spirits)’ 공연을 올린다. 이정식 주도로 일본,홍콩,말레이시아,싱가포르 연주자들이 참여한 ‘아시안 스피리츠’ 밴드는 아시아의 재즈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담고 아시아 각 국에서 공연일정을 잡고 있다.

이발차는 당분간 아버지 밴드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밴드에서 연주 경험을 쌓는 한편 내년 졸업 후에는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제 이름을 단 밴드를 만들 거예요. 그래서 연주와 함께 작곡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누가 알아요? 나중엔 제 팀이 아버지 밴드를 치고 올라갈 지,호호.”

김남중기자 njkim@kmib.co.kr

http://www.kmib.co.kr/html/kmview/2003/0922/0919154341131100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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