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것은 당연하단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슬픈 거야.

그리고 그것은,
결국 지나가게 되어 있어.
바람 같이 말이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때 열 한 살 쯤이었던가-
낮에 거실 창가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슬퍼져서 그만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그 때 내 울음 소리에 놀란 엄마가 다가와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모든걸 이해했다는 눈빛으로
조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슬픈 것은 당연하단다.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어.
세상에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는 거야.

그렇지만 못 견디게 슬프다면 울어 버리렴.
슬픔이 다 지나갈 때까지 울어버려.

도저히 참을 수 없더라고 이상할 건 하나 없으니까.
설령 그것이 영원히 머문다 해도.

모든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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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불의 검

작        가  : 김혜린

출   판  사  : 1992 년 육영재단의 댕기에서 연재 시작.
                   잡지폐간 이후 2 년간 붕 뜬 상태에서 화이트에 5 회 연재.
                   다시 잡지 휴간(사실상의 폐간)으로 붕 뜸.
                   대원에서 다시 출간, 이후 단행본 출간.
                   2003 년까지 12 권 완간을 목표로 작업한다는 언론 발표
                   이후 오리무중, 전격 애장본 출간 이후 만화웹진
                   we6 에 연재 결정    

평        점  : ★★★★★

순정만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이 이야기를 어찌 다 필설로 풀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단순히 <불의 검>이란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기엔 '제 3 세대 순정 만화작가군의 대표적인 작가' 라는 작가 김혜린이 가진 무게가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김혜린이 걸어온 길이 한국 순정만화계의 르네상스와 함께 했으며, 그녀의 작품이 바로 90 년대 시작된 한국 순정만화 르네상스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작품들이었기에, 그녀를 더듬어 간다는 것 자체가 80 년대와 90 년대, 그리고 2 천년대를 관통하는 한국 순정만화의 역사를 되짚어 가는 장대한 역사탐험(?)의 시작이기에, 그녀를 설명한다는 것이 바로 한국 순정만화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할 수 있겠다.
 

제3세대 순정 만화작가 김혜린

순정만화(純情漫畵)란 한자 뜻 그대로 해석 한다면, ‘섞임이 없는 순수한 본성 + 질펀한 그림이 넘쳐 흐른다 = 순정만화’ 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된 순정만화란 개념이란, 여자들이 보는 만화책, 닭살 연애 만화 + 신데렐라 콤플렉스 덩어리 등등 그닥 호의적인 단어로 기억되는 만화는 아니다. 만약 남자가 이런 순정만화를 본다는 건 90 년대 당시로선 '상당한 각오' 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자, 그럼 이런 순정만화는 다른 나라에도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순정만화(純情漫畵)란 말이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일각에선 순정만화란 것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순정만화란 단어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엔 순정만화가 없다. 그렇다면 일본엔 여자들이 보는 만화가 없다는 것일까? 일본엔 여자들이 보는 소녀만화란 것이 있을 뿐 순정만화는 없다. 웃기는 것이 이런 만화의 남녀구분의 시초는 일본이 최초란 것이다. (서양의 경우에도 일본에서 건너간 소녀만화에 의해 여성들을 위한 '전용' 만화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소녀만화, 순정만화란 개념은 유교적 영향권이 강한 동양권 국가에서 등장한 것으로 여성에 대한 굴종을 강조하는 영향에 의해서인지 여성을 위한 만화가 나오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낳게 된다.)  

최초 일본의 경우에는 소년만화보다 소녀만화가 먼저 나왔다. 국내에서 <사파이어 왕자>라는 타이틀로 80 년대 한창 방영 하였던 테츠카 오사무의 <리본의 기사>가 1953 년 '소녀클럽' 이란 잡지에서 연재되면서 그 시작을 알렸는데, 이후 여자를 위한 만화를 '소녀만화' 라는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가 나오고 얼마 뒤 소년지들이 창간한 걸 보면, 일반적으로 순정만화를 하위 개념으로 두는 것이 잘못된 상식이라 볼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런 소녀만화란 장르가 한국에 넘어와 '순정만화' 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그 말많고 탈많은 <캔디>의 등장 때문이었다.

70 년대 해적판으로 들어와 수많은 한국 여학생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캔디.. '테리우스 G. 그란체스터' 란 최고의 히어로를 만들어 낸 캔디는 이 척박한 한국 땅에 '순정만화' 란 장르에 대한 패러다임을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웃기는 것이 2002 년 하이북스에서 <캔디캔디> 애장판을 찍어냈는데, 종이질과 제본 상태, 표지 디자인은 한 눈에 정식 라이센스본이란 착각이 들게 만들었으나, 한국땅에 들어온지 30 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해적판으로만 독자에게 전해졌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작화를 한 이가라시 유미코와 스토리를 그린 미즈키 쿄코가 법적 분쟁에 들어간 상황인지라 판권 문제가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캔디캔디가 이 땅에서 명멸하였고, 나중엔 한국에서 고스트라이터를 고용해서 한국판 캔디를 찍어내 나중에 캔디와 테리우스를 결혼시키는 촌극까지 연출해 낸걸 보면, 한국이란 나라의 '위대함' 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캔디캔디와 함께 80 년대 한국 순정만화계를 뒤엎어 버린 또 하나의 걸작이 들어와 순정만화에 대한 확실한 결정타를 먹이게 되는데 바로 이케다 리요코와 미야모토 에리카의 <올훼스의 창>이었다. 그리고 이런 순정만화에 대한 환상을 '집착' 으로 이끌고 간 것이 바로 와타나베 미사코의 <유리의 성>이었다. 이 세 작품의 한국 상륙은 한국 순정만화계의 부활이란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

일단 한국 자체적인 순수 토종 순정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겠는데, 구체적으로 '1세대 순정만화 작가' 의 대표를 우리는 60 년대 활동안 엄희자씨나 조원기씨 등에서 찾게 된다. 초기 순정만화는 소녀가 등장하며 배경은 가정을 주 무대로 그려진 작품으로 소위 '가정만화' 라고 불리는 만화 장르의 시초였다. 이 가정만화가 순정만화로 발전하게 되는데, 바로 70 년대 한국 순정만화가 사그러드는 배경이 된다. 70 년대 그 엄혹했던 군사문화에 의한 심의와 규제로 순정만화는 '가정만화' 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고(한 방안에 남매 두 명이 앉아 있는 장면도 불건전하다 하여 심의에 걸릴 정도) 독자들은 순정만화를 외면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미 1950 년대 말 한국 만화판은 '대본소 체제' 로 완전히 굳어져버린 상황이었고, 뒤이어 등장한 '합동' 의 등장으로 한국 만화판은 개판 5 분전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물론 [새소년] 이나 [어깨동무] 의 부록으로 등장한 만화잡지의 등장으로 대본소 체제 아닌 만화연재가 가능했긴 했지만, 이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만화가가 대본소 체제에 순응해야 했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대본소 체제의 주 소비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 였다. 결국 몇 안되는 1 세대 순정만화 작가군이 활동을 접으며, 한국 순정만화는 그렇게 사그러들게 된다.

그리고 70 년대 말.. 한국 땅에 '캔디' 가 들어왔다. 그리고 폭발하게 된다. 그 동안 시장으로 생각 안하던 '소녀' 들이 만화의 소비층으로 부쩍 다가선 것이었다. 결국 만화판은 일본 불법 복제만화의 양산과 함께 한국 순정만화가들의 등장을 예고하게 되었고, 그들이 바로 황미나, 이진주, 김동화 등등이 주축이 되는 '제 2 세대 순정만화 작가' 들이었다. 그때 유명한 일화의 하나로 황미나의 역작인 <아뉴스 데이>란 작품에 관한 것인데(필자는 90 년대 복간된 작품을 봤다), 당시 황미나의 원고를 본 출판사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일본만화 누구 걸 베꼈냐?” 였다. 제 2 세대 순정만화 작가들의 실력과 당시 한국만화 출판관계자들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여하튼 이 2 세대 작가군의 꼬리를 물고 뒤이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제3세대 순정만화 작가' 들이다. 80 년대 중후반과 90 년대 이름을 떨친 김혜린, 신일숙, 김진, 이미라, 이은혜, 강경옥 등등 지금도 만화를 보는 분이라면 한번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작가들이다. 개인적으로 본 필자는 이들 제 3 세대 순정만화 작가군을 한국 순정만화의 'Golden Age' 라고 말하고 싶다.

김혜린은 <북해의 별>로 1983 년 데뷔하게 되는데, 당시 그 혼란한 정국 속에서 한 때 운동권의 '학습교재' 로 그 임무를 다 했던 이 <북해의 별>은 김혜린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고, 히트작이 되었으며, 작가인 김혜린은 1985 년 1 월 황미나 등과 함께 한국 만화 르네상스의 시작인 '나인' 이란 동인을 만들게 된다. 9 명의 순정만화 작가들이 뭉쳐서 만든 나인, 그리고 그들의 작지만 의미있는 일보가 되는 '아홉번째 신화' 란 동인지... 다들 예상했겠지만, 이 '아홉 번째 신화' 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80 년대 그 엄혹했던 검열의 칼날을 피한(비매품인 동인지였으니 검열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아홉 번째 신화는 1,2 호 때 1 천부를 찍었다가 순식간에 매진되어버리는 기염을 토해내더니, 3 호부터는 원정 출판사의 제작지원을 받아 3 천부를 찍어 판매를 하게 된다. 이 역시 순식간에 동이 나버리고, 이 '유의미한 결과' 는 결국 한국 순정만화 잡지 탄생에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바로 '시장의 확인'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8 년 11 월 한국 순정만화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바로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의 탄생이었다. 당시 순정만화 작가들은 어쨌든 이 [르네상스]를 키우고 살려야 한다는 대전제에 공감하였고, 지금도 '최고의 작가군' 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작가들이 르네상스의 기치 아래 모이게 된다. 김동화, 이진주,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한승원, 김진... 르네상스는 그렇게 순풍에 돛단 듯 한국 순정만화계의 판도를 뒤바꾸면서 순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여기서 르네상스의 편집인들 중에서 '강인선' 이란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바로 한국 순정만화계의 역사라 불리우는 '안드로이드 강' 의 출현이었다.

88 년 [르네상스]의 등장으로 촉발된 한국 순정만화계의 르네상스는 90 년대 초반까지는 '난맥'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선구자 [르네상스]의 등장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르네상스]가 돈이 된다는 걸 확인한 다른 출판사에서 잇달아 순정잡지를 창간하게 된다. [모던 타임즈]나, [로망스]란 잡지는 채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폐간되었고, 일본만화 카피의 마술사 김영숙 여사께서 직접 발행인으로 뛰어든 [하이센스]란 잡지 역시 근근히 그 명맥은 유지해 왔지만, [하이센스]를 한국 순정지 역사에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한국 순정 만화에 대한 모독이란 것이 본 필자 개인적 판단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한국 순정만화지 역사상 불멸의 대작이 튀어 나오게 된다. 바로 육영재단이 본격적으로 순정지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르네상스]의 편집장인 강인선을 스카웃해서 1991 년 12 월 창간한 [댕기].. 12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그 탁월한 구성과 색감, 잡지 컨셉과 디자인 등등 나무랄 것 하나 없는 이 걸작의 탄생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 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당시 댕기의 작가군 역시 한국 순정만화계의 '드림팀' 이라 불리워도 모자람이 없었다.

10 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까지 연재가 이어지는 김진의 <바람의 나라>, 대사 보다 나레이션이 더 많다는 핀잔을 듣지만, 여성의 심리묘사에 있어선 따라갈 자가 없다던 강경옥의 <스타가 되고 싶어>, 언제나 여고생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던 한국판 테리우스 민휘경의 등장을 알려주었던 이은혜의 <점프 트리 에이플러스>, 제 3 세대 순정작가군의 꼬리를 물고 당당히 들어온 한승원과 가끔 지원사격을 날려준 신일숙...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할 김혜린의 <불의 검>... 당시 [댕기]는 여고 근처 서점가에 '광풍' 으로 다가왔다. 격주간으로 댕기가 나오는 날에는 길게 늘어선 여학생들의 줄 사이사이로 본 필자와 같은 거뭇거뭇한 수염을 흩날리며 그 무리에 슬그머니 끼어드는 남학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댕기의 단행본이 나왔을 때는 더 대단했다. '댕기네 책들' 이라는 단행본 시리즈는 댕기 단행본 특유의 '노란빛깔 표지' 로 각인 되었는데, 서점에다가 먼저 주문을 넣고 대기를 해야만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본 필자는 1992 년 크리스마스 날 눈을 맞으며 <불의검>을 품안에 넣고 집으로 달려오던 그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뭐였을까? 기껏해야 흔하디 흔한 순정지일 뿐인데 말이다. 무엇이 당시 학생들을 [댕기]에 미치게 만들었던 것일까? 일단은 [댕기]란 잡지의 컨셉부터가 새로웠다. '감성세대 순정지' 란 보편타당하고 평범한 기치 아래 만들어진 [댕기]는 '민족적 색채' 가 무척이나 강했다. 일단 [댕기]란 이름에서 느껴지듯 어설픈 서양냄새 충만한 그동안의 제호가 아닌 한국적 제호를 찾았고, 이는 '한국적 순정지' 란 타이틀에 걸맞는 편집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댕기]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댕기]의 로고는 사각형 몇 개로 조합된 말 그대로의 '댕기' 가 쓰여졌고, 독자 서비스로 나온 <바람의 나라> 특별 화보는 김진씨의 '쌩 노가다' 가 느껴지는 고구려 복식사에 관한 일러스트가 나왔다.

연재물 역시 기존의 다른 순정지에선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인 색채' 를 강조하였고, 그 선봉에 선 게 김진의 <바람의 나라>와 김혜린의 <불의 검>이었다. 결정적으로 [댕기]가 한국 순정지 시장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이라면 '격주간 순정지' 의 정착이었다. 도서출판 고구려성이 1989 년 슬그머니 만들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폐간시킨 [로망스] 가 한 번 격주간지에 도전했다가 참패했던것과 달리 댕기는 성공적으로 격주간지란 시장을 개척해 냈다. 소년지 시장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순정지 시장에서도 성공시킨 [댕기]는 그야말로 '혁명' 이었다. 이런 댕기가 순정지 최대 발매부수를 자랑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였을 것이다. 댕기는 그렇게 한국 순정만화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다시는 모일 것 같지 않던 황금세대 작가군의 드림팀과 전설의 시작이 된 안드로이드 강의 신화창조의 서막을 열었다.

[댕기]가 나오고 한 달 뒤 한국 순정만화계에 또다른 작은 움직임이 있었는데, 바로 초등학교 여학생을 주 타켓으로 하는 [나나]의 창간이었다. 본 필자 역시 여동생이 [나나]를 사보는 통에 떠들어 봤지만, 역시 주 대상 연령대가 연령대인 만치 그리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빅토리 비키>나, 황미나의 <소림사로 가다>인가? 하는 작품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지만, 그닥 끌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연령대별로 순정지를 만들 정도로 한국 순정지 시장이 커졌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훗날 초등학생용 [나나], 중학생용 [윙크], 고등학생용 [댕기]란 공식이 생겨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이었을 뿐... 우리는 한국 순정만화지의 한계를 접하게 된다.

http://tour.ddanzi.com/2004/m03/m03_99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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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비애주의자? 휴머니스트?

1962 년생 범띠 여자 김귀자(金貴子)... 말 그대로 귀한 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름은 범상치(?)않은 인생역정을 살아갈 한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낙찰보게 된다. 그리고 1983 년 이 여자아이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동기들이 왁자하게 노는 가운데, 자신 혼자만 과자 상자에다가 만화를 그리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리곤 만화를 그리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시 제 2 세대 순정만화작가로 활동하던 황미나에게 무턱대고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리곤 만화판에 뛰어들게 된다. 1983 년 도서출판 프린스에서 그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의 하나가 되는 <북해의 별> 1 권을 출판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녀의 이름이 작가로선 '부적합하다' 란 결론이 모아지고, 그녀는 그 당시 자신이 살던 진주에서 이름을 따와 김진주란 이름을 말했으나, 당시 활동하던 만화가 이진주 선생과 이름이 겹친다는 것을 확인, 잠시 고민을 더한 그녀가 택한 이름이 바로 '김혜린' 이었다. 그후 20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작가 김혜린의 탄생이었다.

김혜린... 우리는 어째서 그녀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녀의 작품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 보면, 대충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징징비극, 영웅찬가, 사극 위주... 이것이 그녀 작품의 3 요소이다.

그녀는 언제나 선굵은 역사물을 고집한다. 그녀의 작품엔 언제나 '보편타당한 도덕률에 가장 합당한 영웅' 이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비극이며 독자에게 눈물을 강요한다.

지난 10 여 년간 그녀의 작품에 열광한 본 필자가 바라본 그녀의 작품은 어떠할까?

- 김혜린의 작품은 아주 간단하다. 역사의 변혁기 한 가운데 지극히 건전한 영웅 한 명과 그 영웅의 여자를 등장시킨다. 두 남녀는 짧디짧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곤 강제로 헤어지게 만든다. 역사의 변혁기 한 가운데 두 남녀는 갖은 고난과 난관을 헤쳐 나가는 사이 둘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 곱씹으며 괴로워 한다. 그리고 이 둘은 마지막에 이르러선 겨우 만나게 되지만, 작가의 농단으로 둘다 죽이던가, 비극으로 끝을 내버린다.

김혜린 작품의 기본 포맷이다. 그녀의 데뷔작인 <북해의 별>을 보면, 이런 포맷의 기본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때 운동권에서 학습교재로 사용하였다는 걸로도 회자되는 <북해의 별>은 스칸디나비아의 가상국가 보드니아의 후작이자 군인인 유리핀 조안 아우구스트 멤피스와 그녀의 영원한 연인인 아니타 에델라이트의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사랑이야기다. 물론 그 베이스가 되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 모델이 되는 보드니아의 시민혁명 전야이다. 여기서 주인공 유리핀은 초반부 엄청난 능력으로 군인으로서, 귀족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다가 주변의 모함에 의해 낙마, 결국 해적 생활을 하다 후반부로 가선 시민혁명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또다른 대표작인 <비천무>... 한 때 신현준 김희선 주연의 <비싼무>에서 김희선 낭자가 선보인 '국어책 독음권' 에 의해 김혜린의 <비천무>가 무참히 씹혀나가는 걸 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비천무팬들에 의해 '안티 영화 비천무' 사이트가 개설되었고, '비싼무 안보기 운동' 을 벌였던 걸로도 유명한 <비천무>.. 이 역시 원말명초의 시대적 격동기 한 가운데, 호북유가의 유일한 생존자 유진하와 타루가 설리...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 두 명의 연인이 그 격동의 중국 대륙을 휘젖고 다니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고, 김혜린은 진하와 설리를 죽여버림으로써 '비애주의 작가' 라는 눈물섞인 독자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던 작품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마지막 순간까지 설마설마 하며 기다리는 독자들의 염장을 확실히 질러버리는 김혜린식의 비극적인 결말... 그 몸서리 치는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또다시 김혜린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들... 그녀는 마약이었다.

우리는 그녀 작품의 기본 포맷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녀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의 작품엔 '사람' 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이야기' 이다. 음, 그렇다면 다른 만화는 사람이 나오는 만화가 아니었다는 말일까? 기본적으로 하나의 작품, 그것도 독자들에 의해 인정받고 명작 반열에 오르는 작품들의 기본 요건 중의 하나가 바로 '작가의 세계관' 인데, 김혜린 작품의 세계관은 바로 '사람' 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녀가 바라보는 '사람' 이란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말처럼.

- 사람은 알고보면 누구나 불쌍하다

실제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그들만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인간은 악한 동물이 아니란 걸 확인하게 된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제법 비중있는 인물들에게 그들만의 사연, 왜 표독해져야 하고, 왜 절절하게 그녀를 그리워 해야 하고, 왜 그렇게 아파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작품에 절대악이란 개념이 없다. 이놈은 나쁜놈, 저놈은 착한놈 하는 이분법적인 선악 구조가 없다. 악역에겐 악역의 사연이, 선한 주인공에겐 왜 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 결국 독자들은 그들 모두를 생각하고 작품을 읽어내려가야 하고, 종국에 가선 인간의 선함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된다. 어찌보면 김혜린은 작품 내내 중용의 미덕을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작가라 볼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치우침이 없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녀를 제단하려는 외부의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곤 한다. 그녀 작품에 나오는 강인한 여성상을 보며 혹자들은 그녀의 페미니즘 성향에 대해 말하려 하였지만, 김혜린 스스로는,

- 내 작품은 페미니즘 성향의 작품도, 남녀 평등을 말하는 양성평등주의의 작품도 아니다. 다만 인간 사회의 '정의' 에 대해 말하려 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 작품의 영원한 화두가 되는 '사람' 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비운의 작품, 비운의 연재, 비운의 독자들...

- 1992 년 3 월 18 일 [댕기] 통권 제 7 호에 연재 시작
- 1996 년 8 월 1 일 통권 제 111 호에 연재 잠시 중단
- 1996 년 9 월 15 일 [댕기] 폐간 <불의 검> 연재 중단
- 육영재단에서 '댕기네 책들' 이란 제목으로 1992 년 12 월 25 일 <불의 검> 단행본 1 권 최초 출간, 1996 년 3 월 10 일 단행본 8 권을 마지막으로 [댕기]에서의 단행본 작업 종결
- 1998 년 5 월 도서출판 대원에서 [댕기]에서 연재되었던 단행본 8 권 이후의 원고를 모아 단행본 9 권 출간
- 1999 년 11 월 도서출판 대원에서 <불의 검> 1 권 ~ 9 권 재간
- 2000 년 11 월 [화이트]에서  <불의 검> 연재 재개
- 2001 년 3 월  [화이트] 휴간(사실상의 폐간) 5 회 연재중 4 회는 기존에 있었던 [댕기]에서의 연재분, 순수창작분은 1 회
- 2001 년 3 월 대원 씨아이에서 연재분을 취합 단행본 10 권 출간
- 2002 년 5 월 대원 씨아이에서 잡지 연재 없이 단행본 11 권 출간
- 2002 년 10 월 대원 씨아이 아직 진행중인 작품으론 최초로 애장판 출간 하드바인더 겉표지에 상당히 공을 들인 애장판임. 현재 5 권까지 발간(6 권이 마지막 권으로써, 기존 단행본 2 권을 한 권으로 묶어놓은 형태. 아직 6 권은 미발매)
- 2003 년 11 월 작가 김혜린, 김기혜, 김광성, 김진, 장태산이 모여 만든 만화 웹진WE 6 (작가 5 명 + 독자 = www.we6.co.kr)에 <불의 검> 연재 재개 발표


허연 바탕이 애장판

김혜린의 역작 <불의 검>이 지난 12 년간 걸어온 길이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다. 고등학교 2 학년에 갓 올라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12 년의 세월을 헤쳐나가며 겪은 그 수많은 인생 역정들... 수학능력 시험을 보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아빠가 된 그 12 년 세월동안 <불의 검>은 그 나름의 한많은 인생을 보내야 했다. 하긴 이건 <불의 검>만의 이야기가 아닐 듯 싶다.

1992 년 3 월, [댕기]는 그야말로 폭발직전의 인기 가도를 달렸고, 거기에 투입된 김혜린은 이런 [댕기]의 인기를 가속화시켰다. 문제는 앞전에 설명한 강인선 편집장이 [윙크]로 스카웃 돼가면서 [댕기]는 서서히 쇄락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기존의 인기작가들 마저 연재 종료와 함께 [윙크]로 넘어간 상태에서 [댕기]를 지키며(?) 고군분투 했던 두 작품이 바로 김진의 <바람의 나라>와 김혜린의 <불의 검>이었다. 두 작품 다 순정만화로선 드물게 역사물이었으며, 한국 고대사와 고대사였을 법한(상고사라 해야 하나?) 소재를 들고 말 그대로의 '대하 역사극' 을 펼쳐내는 중이었기에 연재는 작가가 펜을 접기 전까진 계속 이어지려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육영이 만화사업 쪽에서 손을 떼는 지경에 이르면서부터다(그 당시 박근혜 의원에 대한 원망이 대단했었다) 김혜린이 잠시 손을 접은 사이에 기습적(?)으로 폐간 결정이 난 [댕기]... 윙크 초창기에 댕기 독자들이 엽서를 날리며 '윙크에 지지 마세요!' 라며 눈물 섞인 바램을 날리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결국 폐간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바람의 나라>와 <불의 검>... 이 두 작품은 말 그대로 만화판을 방황하게 된다. 독자들의 원망과 한숨 속에 작가들은 또 얼마나 가슴 아파 했었을까? 이 상황에서 만화계엔 IMF 한파에 뒤이어 IMF 를 극복해내겠다며 서민들의 창업 열기 속에 등장한 '대여점의 쇄도'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때 서민들 살리겠다고 서민들의 먹이로 만화가들을 택했다는 시니컬한 농담들이 오갈 정도로 대여점의 위세는 기세등등했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만화가들을 물어뜯어가는 그들 덕분에 가뜩이나 열악했던 한국 만화계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순정지들은 창간과 폐간을 밥먹듯이 해댔고, 만화시장은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의 검>과 <바람의 나라>에 대한 독자들의 충성도를 인지했던지, 대원과 시공사에서 각각 <불의 검>과 <바람의 나라>를 재간하기에 이른다.

본 필자의 집에는 댕기네 책들 당시의 <불의 검>과 대원에서 나온 9 권, 대원씨아이에서 재간한 <불의 검> 11 권과 역시 대원 씨아이에서 나온 애장판 5 권이 다 있다. 말 그대로 <불의 검>이라고 나온 단행본은 다 샀다.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나온 종수만 4 종류나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2002 년 <불의 검> 애장판이 나왔을 무렵 김혜린은 아직 완결이 안된 작품을 애장판으로 출간한다는 사실에 못내 부담스러워 했다. 그리고 2003 년... 애장판 5 권이 나올 무렵, 김혜린은 지난 12 년간 독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던 <불의 검>을 종결 짓겠다고 말했다. 2003 년 안에 단행본 12 권을 출간시켜, 지난 11 년간의 <불의 검>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겠단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까지와의 결말과 좀 달리 마무리를 짓겠다고 천기누설을 하게 된다(남자주인공은 살려 둘 것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덜컹 놀래야 했다). 김혜린의 그 비애주의적 기질(?)이 또다시 발동 아라를 죽일 심산이었다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며 안타까워 했지만, 이 안타까움은 또다른 안타까움으로 전염되어갔다. 2003 년이 다 지나가는데도 12 권 출간 소식은 감감이었던 것이다. 김혜린은 끝끝내 12 년을 다 채우고 <불의 검>을 종결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따져보면 1 년에 한 권씩 출간한 꼴이 되는 것이지만, 어쩔 것인가...<불의 검>이라는 비운의 작품에 손을 댄 비운의 독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인 걸...
 

우리는 왜 <불의 검>에 열광하는 것일까?

요즘 간간히 TV 토론 프로에 얼굴을 보이는 이주향 교수가 지난 2000 년 6 월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어지간한 만화광이다라는 표현이 오갔지만, 당시 분위기는 대학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도 만화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며, 그것도 '철학' 씩이나 되는 고고한 학문을 이야기 한다는 사실에 작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녀가 어떤 센세이션을 목적으로 책을 만들었던, 그녀의 튀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책을 냈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만화라는, 소위 말해서 이 사회에서 '하위문화' 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당당히 문화의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 다룬 그 '철학' 중에 필자가 의미있게 본 것이 바로 '카라論' 이었다. 지금까지와의 악녀와 다르게 카라의 행동에는 분명 전과 후가 있었고, 행동에 대한 이유가 있었다. 왕이자 오래비인 온구트에 의해 어렸을 적부터 성적 노리개가 되어 온구트의 힘에 짓눌려 카르마키의 신녀이자 모주이면서도 또한 오래비에게 근친상간을 당해야 했던 한 여자는 그렇게 독기를 품고 온구트를 몰아세우려 했다. 여자로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온구트에게 거세 당한 카라.. 육체를 탐닉하면서도 언제나 허허로운 눈빛으로 단순히 쾌락을 쫓는 듯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큰 틀이 그려져 있었다. 카르마키의 진정한 모주(母主)가 되려는 틀... 그리고 실제 모주가 되긴 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아니한다 하였던가? 여하튼 당시 이주향 교수는 <불의 검>에 대해 그런 식의 나름의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 작품을 봤을까? 그리고 김혜린은 어떤 생각으로 <불의 검>을 그렸을까?

...(중략) 또 영웅찬가냐? 또 징징비극이냐? 또 사극이냐? 등등... 투덜대는 말씀을 일단은 겸허하게 접수해 두면서, 고백하건데- 이것은 영웅 환타지이며 활달한 야만의 노래다. 동시에 무엇보다도 여인의 이야기이다. 비록 나의 희망사항에 그친 변명일지라도...(이하생략)

1992 년 12 월 25 일 [댕기]에서 나온 <불의 검> 1 권 머릿부분에 나와있는 '작가의 말' 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필자는 이 작가의 말에 <불의 검>에 관한 모든 미덕이 다 담겨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덕에 대해 한 가지씩 짚어 나가자.

첫째, 이건 좀 의외의 말일지 모르는데, <불의 검>은 김혜린 작화의 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마 김혜린의 작품을 다 보신 분이라면 느끼시겠지만, 김혜린 작화의 완성은 <비천무> 후반부에서 느낄수 있는데, 보통 조금 긴 연재라던가, 작가가 자신의 그림체를 완성시키지 못한 상황의 연재중에 '성장'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보게 되면 확 눈에 띄는 게 바로 '작화' 이다.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보다가 <비천무>를 보면, 뭔가 그림체가 확 튀는 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비천무> 후반부로 가면 지금의 김혜린 그림체를 확인하게 된다. <불의 검>의 경우, 일단 완성된 김혜린의 그림체가 1 권부터 11 권까지 일정하게 유지된 작품이다. 작화에 있어선 이미 '완성화' 되었단 말이다. 거기에다가 데뷔 20 년 동안의 노하우가 이제 농염하다 못해 고혹적으로 펼쳐진다. 20 대의 치기도, 30 대의 노련미를 거쳐 40 대의 농염함으로 그림은 이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김혜린이 주무기(?)로 사용하는 먹이 제대로 날개를 단 작품이 이 <불의 검>이기도 하다. 김혜린은 스크린톤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로는 “비싸고, 일제가 많아서” 라지만, 따져보면 그녀의 먹을 쓰는 능력, 먹으로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걸 넘어서 등장인물과 상황의 분위기 전반을 먹 하나에 의존해서도 다 표현해낼 만한 능력이 만개한 작품이 <불의 검>이다. <비천무> 시절부터 동양적 사극에 맛을 들인(?) 작가에게 먹은 동양적 만화에 제격인 도구였고, <불의 검>에선 일상화를 넘어서 김혜린 작화의 특징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둘째, 사극이었다. 김혜린의 작품은 데뷔작에서부터 순정만화 작가로선 표현하기 어려운 권력의 속성에 대해 너무도 그 핵심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해의 별>이 그랬으며, <테르미도르>와 <비천무>까지 김혜린은 권력 내의 암투와 권력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그 어떤 순정만화 작가들보다 내밀한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런 김혜린의 특성이 만개한 것이 또한 <불의 검>이었다. 남쪽 나라... 중국에서 건너온 제백과 천궁과의 정치적 밀담. 검을 쥐고 군권의 한 가운데 있는 가라한 아사와 천궁과의 관계, 친구이기 이전에 신하와 군주의 관계, 친구로선 믿고 있으나 신하로선 군권을 가지고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한 2 인자로서의 관계, 이 둘 사이에 갈등하는 천궁과 그 모든 걸 이해해 주는 가라한. 그리고 주변에 들끓는 간신과 모리배...

김혜린은 간신이라 불릴 만한 존재들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이유' 와 '존재가치' 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사람은 약하기 때문' 일까? 단순히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간신이나 모리배들도 사람을 통치하는 데에 필요하고, 그만의 위치와 존재가치가 있음을 김혜린은 조용히 보여준다. 그것이 권력이란 걸 김혜린은 독자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보여주고 있다.

셋째, <불의 검>의 주인공 가라한 아사는 그녀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보편타당한 상식에 근거한 '영웅' 의 모습이다. <불의 검>이라는 이야기 자체는 B.C 850 ~ 700 년경 한민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예맥족인 아무르 족과 이들을 노리는 유목민족인 카르마키의 전쟁상황이 그 배경이다. 문제는 카르마키 쪽이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먼저 접어들면서 아무르를 정복하게 되고, 아무르는 여기에 대항해 항전하는 가운데, 아무르 족의 푸른용부(이 시대는 아직 절대왕권이 확립된 게 아니었다)의 수장인 가라한이 카르마키로 잠입 철기의 비밀을 캐내려다 잡히게 되고, 고문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에서 아라와 접하게 된다. 당연히 이 둘은 사랑을 하게 되고, 다시 잡힌 가라한 아사는 카라에 의해 그 기억상실증이 풀리고, 신전 공사장에서 탈출, 아무르의 영토회복을 위해 싸워 나간다....뭐 대충 이게 <불의 검>의 큰 이야기 줄거리이다.

아라가 아사를 위해 불칼(불의 검은 철검을 의미한다)을 만들어 아무르도 철기를 가지게 되면서 이야기가 좀 스펙타클해지는데, 격동의 한 가운데에서 가라한 아사는 자신의 여자와 자신의 전사대와, 자신의 왕이자 친구, 자신의 백성들과 아무르란 국가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나간다. 아라녀에 대한 절절한 사랑만이 아니라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과 도덕률에 근거한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영웅' 그 자체였다. 아파도 아니 아파하고, 슬퍼도 아니 슬퍼하고, 그 모든 번뇌과 아픔을 들고 그는 칼을 휘두른다. 이 작품은 가라한 아사의 그 애끓는 영웅담 하나만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작품이었던 것이다.

넷째, 이 이야기는 '여자의 이야기' 이다. 김혜린의 코멘트가 없더라도 이 작품이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작품을 펴보는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불의 검>은 전쟁이라는 격동의 한 가운데를 그려내면서 그닥 선명한 전투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라한이 신궁 공사장을 탈출할 때의 전투씬 두 번, 천궁이 위계에 걸려 자신의 아내를 잃을 때의 장면 하나, 우르판과 가라한의 맞대결 정도가 기억에 남는 전투 장면일 뿐 그닥 인상 깊은 전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이 전쟁의 한 가운데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바로 '전쟁터의 여자들' 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불의 검>의 남자들은 전쟁과 살육의 가해자들일 뿐이고, 그들 뒤에서 신음하며, 아파하며, 종국에 가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아픈 이들을 감싸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니 바로 그 여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불의 검>이다. 김혜린의 말처럼 <불의 검>은 여자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음.. 이 이야기 한 번 찐하게 해야겠다. 휴우.. 숨 한 번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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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 여자들의 이야기

<불의 검>에 나오는 여자 중 가장 비중 있는 세 명을 보자. 일단 주인공인 아라, 아무르의 신녀인 소서노, 카르마키의 신녀인 카라... 이 세 명의 공통점이라면, 다들 가라한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음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라와 소서노는 가라한을 좋아한다. 소서노는 신녀는 무녀여야 하고, 무녀는 금혼을 해야 하기에 처녀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라한을 은애할 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아무르를 떠 받쳐주는 만인의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절제한다. 아라의 경우엔 가라한이 기억상실일 무렵 혼례 아닌 혼례... 소위 말하는 그 '사고친다' 란 개념으로 만나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가라한을 찾아 나서지만, 이미 수하이에게 성폭행 당한 상태에서 후실 비슷한 모습으로 망치질을 하며 불칼에 덤벼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라가 개중에 가장 괜찮은 캐릭터인데, 이 역시도 가라한의 몸에 반해(?) 가라한을 탐내한다. 그러다 호되게 한 번 당하지만, 가라한의 몸을 좋아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

일단 이런 메인 캐릭터 말고도 <불의 검>에 나오는 여자들은 은근히 그 수에서 남자들을 압도하고, 그 질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김혜린은 <불의 검>에 이름 석자 걸어두고 나오는 여자 캐릭터들에게 그 시대에 살아가는 여성들, 어찌 보면 현대여성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럼 한 명씩 어떤 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 나가는지 살펴 보자.

아라는 들꽃 혹은 풀꽃 혹은 잡초다.

달맞이꽃, 민들레, 질경이풀, 도라지꽃, 억새풀, 쑥부쟁이, 양파꽃, 패랭이꽃... 온갖 야생화들. 내 속에 담겨있던 많은 꽃들의 이미지가 때론 이렇게 때론 저렇게 합쳐진 듯 하다고나 할까. 현재 무지 고생을 시키고 있는 통에 독자들의 원망 내지 협박(?)을 듣고 있지만, 아.. 난들 꽃같은 내 딸을 고생시키고 싶을까!!

지금까지 아라의 일러스트들이 그랬듯 표지의 아라 모습은 순전히 CF 용이다. (세상에!)

나는 가련한 나의 딸에게 한 벌의 비단 옷도 예쁜 거울도 곡옥의 장신구 하나도 주질 못했다. 아라는 그 당시에 혹은 어느 때든-가장 많았던 그 여자들 중의 한 명이기 떄문이다. (물론 사랑은 다소 별나게 하지만.. 이 점은 산마로의 성격도 참고가 돼야 할 것 같다.)

마음은 하늘, 발은 땅. 그러니 순 내 욕심이지만, 나는 아라를 통해 인습과 약육강식의 굴레 속에 있는 여자들의 슬픔과 생명력을, 또한 용기를 표현하고 싶다. 그저 순종하지도, 그저 체념하지도 않는 여자. 글 따윈 몰라도 바람 냄새로 봄을 아는 여자. 작은 손으로 망치도 쥘 수 있고 낡은 앞치마에 돌을 재여 적에게 퍼부을 수도 있는 여자. 역사니 세상이니 거창한 말은 몰라도 뙤약볕 아래 땅을 일굴 줄 아는 여자. 사랑을 위해 세상 끝까지 맨발로 가는 여자. 그것이 내가 그리고픈 아라다... 돼먹지 않은 욕심, 마음은 하늘, 발은 땅.

내가 줄창 그려온 사랑의 절대성과 영원성이란 어쩌면 꿈인지도 모른다. 누구 말마따나,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소유욕에 가까운 사랑이 보다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오늘도 외길의 사랑을 그린다. 굳세고 착한 사람들에 대한 몽상을 그린다. 못나고 못난 쪽만 보다가 눈이 가재미처럼 돌아가기보단 반쯤 감고 멍청하게라도 앞을 보고 싶다.

이런 점은 아라랑 닮은 것도 같은데... 모전여전인가?! 고생시켜 미안하다. 아라-하지만 먼저 내 마음이 아프지 않고선 너의 아픔도 표현되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겠지?! 우리 함께 좀 더 노력해보자.

김혜린이 댕기네 책들로 나온 <불의 검> 2 권에서 밝힌 아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말보다 더 확실히 아라를 표현 해낼 말이 있을까? 그녀는 잠시 잠깐 봄같은 사랑을 맛봤다. 1 권에서 한겨울 강가에 떠내려 온 가라한을 구해내 그해 겨울 그에게 정을 붙였고, 이듬해 봄 가라한과 짧은 육체의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끝이다. 수하이 바토르에게 끌려가 첩실 자리에 앉은 채로 그녀는 가라한을 위해 불칼에 매달려야 했다. 육체적으로 계속 짓밟히고 또 짓밟혔지만, 그녀는 오로지 가라한을 찾아 나서겠다며 그 끈질김과 함께 강인한 풀꽃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라의 모습은 메마른 내 가슴속에서 '이제 제발 아라를 행복하게 해줘!!' 라며 숨가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10 권, 11 권에서의 짧디 짧은 행복... 단목다루와 가라한의 모습 속에서 아라의 그 행복해 하는 모습과 아라가 단목다루의 동생을 가졌을 때의 짧디 짧은 그 행복의 시간... 아라는 충분히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나온 11 권에서 그녀가 행복했던 시간은 채 1 권도 되지 않은 분량이었다. 한 권이 무엇이던가? 채 30 페이지도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잠깐 나눈 일생일대의 사랑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사랑을 찾아 나서는 그 모습. 그리고 남녀를 떠나 사랑하는 자에게 해 줄수 있는 최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그것이 아라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소서노란 이름은 우리 역사상에선 고구려 시조 주몽의 두번째 아내 이름이다(백제 시조 온조의 어머니). 그 이름이 좋아 차용을 한 덕(?)에 몇몇 독자로부터 <불의 검>이 고구려 건국신화와 연관된 얘기냐는 오해까지 받았지만 분명히 나의 소서노는 그 소서노가 아니다.

나의 소서노는 쉽게 말해 나라의 무당, 고대 시대의 여성 지식인이며 의사며 정치가, 아무르인의 대모이며 큰 누님, 초능력자, 아라와는 또 좀 다른 의미로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은 혜린의 욕심).

청동기->철기의 교체기, 제정 분리의 과도기, 나라와 신궁을 잃은 신녀로서, 한 남자를 몰래 사모하는 한 여자로서, 그녀는 남몰래 고충이 많은 사람이다. (가끔은 '단지 그녀가 아사를 사랑한단 이유만으로' 아라의 적이니까 밉다는 독자까지!)

나의 소서노는... 상냥한 성품이지만 그 부드러움을 절제해야 하고, 뜨거운 정열이 있으나 초탈한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고, 울며 성질부리고 싶을 때도 무연한 낯으로 등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고독하고... 때로는 내숭떨고, 잘난 체 한다는 독자의 몰이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소서노는 쉽게 자기 연민이나 과시욕에 빠지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 이라는 것에 대한 구도자인 그녀는 삶에 대한 노력을 잊지 않으며 실제로 노력한다.

나의 표현력이 부족해 잘 전달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기품있고 의연한 소서노를 그리고 싶다. 인간의 약은 재능과 자기절제, 보살필 줄 아는 마음... 그것을 알고 노력하는 머언 옛날의 우리 벗, 한 여성을...

역시 <불의 검> 3 권에 나와 있는 김혜린의 '소서노論' 이다. 개인적으로 댕기네 책들 버전으로 나온 <불의 검>이 대원에서 나온 <불의 검>보다 정감이 가는 것은 아마도 이런 작가와 독자의 소통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댕기네 책들로 나온 <불의 검> 앞장에 나와 있는 김혜린의 코멘트 두 페이지가 가지는 무게는 나와 같은 이가 떠드는 <불의 검>에 대한 글 수십 페이지와 맞먹는 내용이 아니던가? 대원판으로 <불의 검>을 접한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댕기네 책들에 나와 있는 김혜린의 코멘트를 전문 다 실어야겠다는 의무감에 불타는 지금이다.

소서노란 이름을 접했을 때 필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먼저 떠올랐다. 90 년대 들어 심심찮게 고구려 건국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 속에 '소서노' 란 특별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재구성되는 분위기였다. 주몽이란 신흥 세력, 비록 당장의 능력은 떨어지나 앞으로의 가능성이 창창한 동부여의 망명자 고주몽을 믿고 졸본부여의 공주인 소서노는 자신과 자신의 부족을 걸고 일생일대의 거래를 하게 된다.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한(소서노는 남편이 죽었고, 상처한 남편 사이에 비류란 왕자를 두고 있었다) 소서노는 주몽이 졸본부여의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게 이르자, 주몽과 다시 한 번 거래를 하게 된다. 비류는 주몽의 아들이 아니지만,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니 온조를 고구려의 태자로 삼아달라는 조건이었다. 주몽은 이에 찬성하지만, 동부여에서 부러진 칼자루 하나 들고 온 유리에 의해 온조는 밀려나게 된다. 결국 소서노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 남하해 백제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역사 속의 소서노는 <불의 검>의 소서노라기 보단 카라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아니 지금 현재의 여성상으로 보기드문 여성이었다.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길들여진 정치감각과 과감한 결단성과 실행능력 등은 고대여성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질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소서노의 지위와 능력을 얻기 위해 주몽은 소서노를 이용했고, 결국엔 버린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바라본 소서노는 비운의 여성이지만, 그 마지막 순간까지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아있기를 거부하였다. 그녀는 아파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지울 그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여성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불의 검>의 소서노와 그 밑의(?) 가라한과 천궁은 비류와 온조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불의 검>에서 소서노는 언제나 가라한과 천궁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권력이란 것이 천길칼산 위에 혼자 서 있는 거라는 말이 있듯이 이 두 젊은 부족의 수장과 국가의 왕자는 늘 외롭고 힘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둘은 바로 아무르의 기둥이며 대들보였다. 그러기에 이들은 함부로 자신의 힘듦을 말해선 안되는 위치였다. <불의 검>에서 중국의 사신인 제백이 소서노를 평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르는 두 기둥... 바로 가라한과 천궁에 의해 떠받들여져 있는 나라이지만, 이 둘이 궂은 비를 피하는 것이 바로 소서노란 지붕이라며 말하는 장면이 있다. 제백의 말 그대로 소서노는 두 젊은 영웅의 마지막 안식처와 같은 존재였다. 여자로서의 마음을 거세당한 채 민족의 모주(母主)로서의 소서노란 이름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 없지만, 이 역시도 그녀의 운명임을,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일전 어떤 독자의 편지 중에서 '당신이 카라를 통해 말하고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걸 생각해 보는 것도 <불의 검>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 이란 구절이 있었다. 글쎄... 무엇일까?... 들켰나?!

 '카라' 는 (몽골어로는) 검다는 의미다. 실제 그녀는 혈통상 터어키 계열이며 따라서 피부도 검은 편이다. 마음 속까지 검은지는 모르겠지만-그녀 자신은 그렇다고 믿고 있으며, 아마 그렇지 않다하면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낼 것이다. 표현절제상 어느 정도 약화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카라는 고대사회의 무서운 주술사이며 남성의 정기를 흡수하는 색녀 초능력자이며 야심적 정치가다. 또... 좀 비뚤어진 페미니스트다.

균형과 이성의 감각을 잠시만 접어둔 채, 그녀식으로 몇 가지 표현을 해보자면ㅡ여성의 야심이나 야망, 기백에 대해 세상이 기껏 붙여주는 것은 여장부니 여걸이니 하는 웃기는 이름이다. 여성의 권세는 치마바람이 되며 여성의 정열은 드셈, 여성의 비판은 건방짐, 여성의 노여움은 발끈함, 여성의 지적 욕구는 지적 허영심이 된다. 남성의 눈물은 눈물단지에 모실 만큼 장엄하지만 여성의 눈물은 약자의 교활한 무기일 뿐, 청승맞은 소금물이다. 남성의 정조는 전장의 깃발이던가? 찢겨질수록 영광이 되고, 여성의 정조는 쪽박이던가? 한 번 깨어지면 뒤란에 버려진 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밟히는 사금파리...

어찌보면 이것은 여성의 피해의식이고, 카라는 그런 피해의식과 복수심, 극단적 자존심을 함께 가진 여성이다. 그것은 그녀의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됐고 그녀가 태어나 자란 그 일족의 타락한 환경이 더욱 그것을 키웠고 아마 그 이전 그녀 자신의 핏속에도 그것은 저주처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그녀는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카라는 같은 여성에겐 사실은 관대한 편인데, 이와 대비해 남성에겐 무자비할 만큼 가혹하고 피를 불사한다. 현재로선 그게 그녀의 한계이고 정치가로서, 인간으로서의 대 약점이다. 카라는 또한 (몇 살인지도 알 수 없게 나오지만) 그녀 자신의 혈육에 의해 생산 기능을 망친 불모의 여인이다. 여성성으로서 취할 행복의 여지가 애초 그녀에게 없었고... 분출할 곳이 없는 모성, 사랑받지 못하는 자의 굶주림은 그녀를 더욱 공포의 어머니요, 인간애가 메마른 마녀로 몰아가고 있다.

나는 카라를 동정하진 않는다. 입장이 그렇구나 해서 가벼운 동정심을 갖다대기엔 그녀는 분명히 사악하고 몹시도 강하다. 나는 또한 카라를 부러워하거나 그녀를 통해 대리만족 따위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고, 그런 형태의 자기 성취란 조금도 아름다울 게 없다. 나는 다만-?을 ?에 대해?!- 노여워 하고 좀 슬퍼할 뿐이다.

아라가 그런 것처럼, 소서노가 그런 것처럼, 혹은 또 누군가들이 그런 것처럼, 카라 또한 우리들의 먼 옛날 어떤 자매, 어떤 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역시 <불의 검> 5 권에 나와있는 작가의 코멘트다. 개인적으로 <불의 검>에서 카라만큼 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거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마치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90 년대식으로 재해석 했을 때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놀부 같은 캐릭터여야 한다!!' 라는 주장이 나오던 것과 비슷한 관점으로 카라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카라의 존재를 두고, 일각에선 페미니스트이다. 혹은 악녀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다.. 의견들이 분분하다. 허나 역시 그녀의 어머니(!!)인 김혜린의 이야기가 가장 정통하지 않았을까? 그녀를 페미니스트로, 혹은 악녀로 보는 우리의 시각을 뒤로 하고 그는 아픈 과거를 현재의 복수와 미래의 지배자의 모습으로 치환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히 그녀를 바라만 봐도 미워할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불의 검>이 매력이 아닐까?

기타의 여자들...

<불의 검>에 등장하는 굵직굵직한 주인공급 여자 세 명 외에도 등장하는 여자들... <불의 검>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은 전쟁의 한 가운데, 격동의 역사 한 가운데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이야기 한다. 아라는 풀꽃같은.. 아니 잡초같은 삶을, 소서노의 관조하며 아파하는 삶을, 카라의 도전하며 쟁취하는 삶을 우리는 봐왔다. 그러나 <불의 검>에는 이런 주도적인 여성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빼앗긴 남편의 정분 한 자락에 목숨 걸고, 남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비파녀의 삶도 있었고, 카르마키 야장귀족에게 몸을 팔아 영달을 구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아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곤지녀.. 그녀는 시대에 순응하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 역시 시대의 피해자인 것을... 그나마 <불의 검> 11 권 중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절우부의 공녀 해조녀를 만났을 때이다. 단순히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절우부에서 푸른용부로 넘어간 정략결혼의 희생자 해조녀.. 그녀에게는 피난 시절 에벤키족의 젊은 수장 무타와의 연분이 있었다.

가라한 역시 수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뭐 그리 큰 허물은 아니라 하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치 그녀의 과거지사는 그 정도 선에서 종결짓고, <바람의 나라>의 '이지' 와 같이 눈물과 회한의 한 시절로 마무리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가라한의 배려와 그녀의 용기가 버무려진 '이혼' 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는 시대의 혼란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부족도, 오래비도 아닌 해조녀 스스로의 '행복' 을 찾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라한의 합법적인 방기... 아니 묵시적인 동조라 해야 하나? 여하튼 가라한과의 이심전심으로 그녀는 무타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에벤키족의 젊은 수장은 지금까지와의 김혜린식 결말이 아닌 좀 더 색다른 결말을 위한 '히든카드' 와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가라한과의 결의 형제는 12 권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나마 <불의 검> 중에서 가장 건전하고, 가장 순탄한 방식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해조녀의 모습에 아파하고 괴로워 하며 절망 속에 신음을 토해내는 삶이 아닌 희망섞인 결말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인물의 탄생이라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김혜린이 지금까지 그려왔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행복에 근접한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뒷 이야기...

김혜린의 <불의 검>을 쓰면서 필자는 십여년 전 추억의 책장을 다시 넘겨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댕기]가 나오던 날 여고 근처 서점가로 달려가 큰 소리로 여동생이 이런 심부름 시킨다며 애써 변명하던 모습, 댕기네 책들이라는 단행본이 나왔을 때 눈에 젖을까 품안에 <불의 검>을 꼭 껴안고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달려오던 기억. 군에 있던 시절, [댕기]가 폐간되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들고 멍했던 기억들... <불의 검>은 어찌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키워드였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필자의 지인들이 내방에 꽂혀있는 4 종류의 <불의 검>을 가리키며, 돈이 썩어난다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할 때마다,

- 손대지 마라 가보로 남길 물건이다.

라며, 애장본과 댕기네 책들 단행본을 숨겨두던 기억(댕기네 책들 버전은 책상 뒤편 구석에 몰래 숨겨 놨다)... <불의 검>은 내게 있어서 그런 책이었다.

이제 그만 <불의 검>에 12 년간 목매단 독자들을 생각해 김혜린씨가 연재를 종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작품을 12 년간 기다려 온 독자들... 물론 <유리가면>과 같은 작품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이 정도로 길게 끈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닌가? 제발 2004 년에는 이 정도에서 종결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

<불의 검> 총 11 권 중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는다는 건 말 그대로 고문이다. 작가 김혜린의 엄청난 대사빨(!!) 앞에 무얼 고르고, 무얼 버려야 할지 고르라는 건 고문이다. 자의식의 과잉도, 이은혜식의 감성시 같은 느낌도 없고, 강경옥식의 끝없는 자아탐닉도 없다. 그녀의 글은 담백하며, 가슴 절절하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독특한 그 무엇이 있는 글이다. 하물며 그녀의 대표작이며, 그녀가 불혹의 나이에 완숙미를 넘어서 농염함까지 보여주는 작품 안에서 고르라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서설이 길었는데, 본 필자가 11 권을 읽고 또 읽는 와중에 가장 와닿았던 대사는 아라녀에게 '행복' 한 시간을 준 장면에서였다. 총 11 권에서 아라녀는 언제나 불행의 그늘에 짓눌려 살아야 했다. 이제 좀 그만 괴롭혀!! 라는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드디어 가라한의 부인이 된 아라녀... 그리고 단목다루...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단목다루, 원수의 씨앗임을 알면서도 영웅 가라한에 의해 이름이 지어졌고, 영웅이기에 아무 탈 없이 인정받게 된 단목다루... 하지만 영웅도 사람인 것을... 전투의 와중에 잠시 잠깐 아라와의 짧은 밀회를 즐기던 10 권에서의 대사를 난 <불의 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말하고 싶다.

아라가 가라한의 요기거리를 챙기겠다며 부엌으로 간 순간 가라한은 단목다루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밖에서 듣게 된 아라녀는 가라한의 마음 한 자락을 보게 되고 눈물을 쏟아 낸다...

  나를 잘 봐 두어라.
  내가 네 아버지다.
  너는 자라면서,
  뒤에서 수근대는 소리들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상처 받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너한테 얘기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너의 목숨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쓰고 피흘렸는지…
  네가... 왜 자신을 귀중하게
  여겨야만 하는지...!
  그래... 너를 보며 가끔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
  나도 인간 남자니까...
  하지만 부디 알아주렴,
  널 미워해서가 아니다.
  그저...
  이것 저것이 아파서다....
  네 그걸 알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 자라다오.
  너희가 덜 울어도 되게...
  죽임 당하지 않고 예쁘게 살 수 있게...
  나도 열심히 애쓸 테니까... 
  자아-
  단목다루!
  불러보아라.
  아.버.지.

<불의 검> 11 권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대사이다.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 나도 인간 남자니까... 영웅에게도 인간의 얼굴이 있었고, 한 사람의 남자로서 당연히 괴로움으로 다가서는 존재이기도 한 내 아이가 아닌 '내 여자의 아이' 를 가라한은 그렇게 자신의 품안으로 보듬었다. 누군가 사랑은 노력하는 거라 했던가? 가라한은 남자로서의 본능마저도 이겨낼 사랑이 있었던 것이었다.

http://tour.ddanzi.com/2004/m03/m03_99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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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가장 애착이 가요”


황미나 대표작 연재 10년만에 12권으로 복간

‘한국 순정만화계의 대모’로 불리는 중견만화가 황미나(43)씨의 대표작 〈레드문〉(애니북스 펴냄·각 8500원)이 전 12권으로 복간됐다. 〈레드문〉은 1994년부터 98년까지 5년간 만화잡지 〈댕기〉와 〈윙크〉에 연재된 대작으로, 이번에 잡지 연재 10년 만에 복간작업이 이뤄졌다. 공상과학 판타지물인 이 작품은 외계생명체와 지구인 간의 전쟁과 사랑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장대한 휴머니즘을 그렸다고 평가받으며, 99년 문화관광부가 뽑은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됐고 온라인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레드문〉은 시그너스별의 구원자인 ‘태양’ 필라르가 지구의 평범한 고등학생 윤태영의 육체 속에 봉인돼 있다가 자아를 각성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필라르는 자신을 죽이려는 동생 아즐라와 화해한 뒤 시그너스를 유린하는 적 아길라스를 물리치고 자기희생을 통해 시그너스를 구한다.

“저한테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연재 시작 전에 건강이 상당히 안 좋아져 앞으로는 만화를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작 같은 기분으로 시작했지요. 캐릭터의 성격 설정이나 상황 해결방법이라든지, ‘내’가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연재 당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을 세월이 너무 흐르기 전에 새롭게 손질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실제로 그는 복간작업 중에 여러 부분을 추가로 그려넣었으나 원 작품이 주는 감동이 반감되는 것 같아 윤태영의 비행기 추락사 부분, 반군 여전사 루나편 등 두가지 내용만 삽입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에 필라르의 피가 시그너스를 소생시키는 장면 등 중요한 대목에선 컬러를 새로 입혀 사실적인 느낌을 살렸다.

1980년에 〈이오니아의 푸른 별〉로 데뷔한 황씨는 20년 넘게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순정만화를 정착시키는 한편 순정만화의 틀을 깨고 무협물, 공상과학물, 액션물 등으로 지평을 넓혀 남성 독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최근 들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황씨는 조만간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담은 새 신문 연재만화를 준비중이다.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4/2004/02/0091000042004022622511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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