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린... 비애주의자? 휴머니스트?
1962 년생 범띠 여자 김귀자(金貴子)... 말 그대로 귀한 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름은 범상치(?)않은 인생역정을 살아갈 한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낙찰보게 된다. 그리고 1983 년 이 여자아이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동기들이 왁자하게 노는 가운데, 자신 혼자만 과자 상자에다가 만화를 그리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리곤 만화를 그리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시 제 2 세대 순정만화작가로 활동하던 황미나에게 무턱대고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리곤 만화판에 뛰어들게 된다. 1983 년 도서출판 프린스에서 그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의 하나가 되는 <북해의 별> 1 권을 출판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녀의 이름이 작가로선 '부적합하다' 란 결론이 모아지고, 그녀는 그 당시 자신이 살던 진주에서 이름을 따와 김진주란 이름을 말했으나, 당시 활동하던 만화가 이진주 선생과 이름이 겹친다는 것을 확인, 잠시 고민을 더한 그녀가 택한 이름이 바로 '김혜린' 이었다. 그후 20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작가 김혜린의 탄생이었다.
김혜린... 우리는 어째서 그녀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녀의 작품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 보면, 대충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징징비극, 영웅찬가, 사극 위주... 이것이 그녀 작품의 3 요소이다.
그녀는 언제나 선굵은 역사물을 고집한다. 그녀의 작품엔 언제나 '보편타당한 도덕률에 가장 합당한 영웅' 이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비극이며 독자에게 눈물을 강요한다.
지난 10 여 년간 그녀의 작품에 열광한 본 필자가 바라본 그녀의 작품은 어떠할까?
- 김혜린의 작품은 아주 간단하다. 역사의 변혁기 한 가운데 지극히 건전한 영웅 한 명과 그 영웅의 여자를 등장시킨다. 두 남녀는 짧디짧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곤 강제로 헤어지게 만든다. 역사의 변혁기 한 가운데 두 남녀는 갖은 고난과 난관을 헤쳐 나가는 사이 둘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 곱씹으며 괴로워 한다. 그리고 이 둘은 마지막에 이르러선 겨우 만나게 되지만, 작가의 농단으로 둘다 죽이던가, 비극으로 끝을 내버린다.
김혜린 작품의 기본 포맷이다. 그녀의 데뷔작인 <북해의 별>을 보면, 이런 포맷의 기본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때 운동권에서 학습교재로 사용하였다는 걸로도 회자되는 <북해의 별>은 스칸디나비아의 가상국가 보드니아의 후작이자 군인인 유리핀 조안 아우구스트 멤피스와 그녀의 영원한 연인인 아니타 에델라이트의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사랑이야기다. 물론 그 베이스가 되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 모델이 되는 보드니아의 시민혁명 전야이다. 여기서 주인공 유리핀은 초반부 엄청난 능력으로 군인으로서, 귀족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다가 주변의 모함에 의해 낙마, 결국 해적 생활을 하다 후반부로 가선 시민혁명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또다른 대표작인 <비천무>... 한 때 신현준 김희선 주연의 <비싼무>에서 김희선 낭자가 선보인 '국어책 독음권' 에 의해 김혜린의 <비천무>가 무참히 씹혀나가는 걸 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비천무팬들에 의해 '안티 영화 비천무' 사이트가 개설되었고, '비싼무 안보기 운동' 을 벌였던 걸로도 유명한 <비천무>.. 이 역시 원말명초의 시대적 격동기 한 가운데, 호북유가의 유일한 생존자 유진하와 타루가 설리...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 두 명의 연인이 그 격동의 중국 대륙을 휘젖고 다니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고, 김혜린은 진하와 설리를 죽여버림으로써 '비애주의 작가' 라는 눈물섞인 독자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던 작품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마지막 순간까지 설마설마 하며 기다리는 독자들의 염장을 확실히 질러버리는 김혜린식의 비극적인 결말... 그 몸서리 치는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또다시 김혜린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들... 그녀는 마약이었다.
우리는 그녀 작품의 기본 포맷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녀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의 작품엔 '사람' 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이야기' 이다. 음, 그렇다면 다른 만화는 사람이 나오는 만화가 아니었다는 말일까? 기본적으로 하나의 작품, 그것도 독자들에 의해 인정받고 명작 반열에 오르는 작품들의 기본 요건 중의 하나가 바로 '작가의 세계관' 인데, 김혜린 작품의 세계관은 바로 '사람' 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녀가 바라보는 '사람' 이란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말처럼.
- 사람은 알고보면 누구나 불쌍하다
실제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그들만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인간은 악한 동물이 아니란 걸 확인하게 된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제법 비중있는 인물들에게 그들만의 사연, 왜 표독해져야 하고, 왜 절절하게 그녀를 그리워 해야 하고, 왜 그렇게 아파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작품에 절대악이란 개념이 없다. 이놈은 나쁜놈, 저놈은 착한놈 하는 이분법적인 선악 구조가 없다. 악역에겐 악역의 사연이, 선한 주인공에겐 왜 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 결국 독자들은 그들 모두를 생각하고 작품을 읽어내려가야 하고, 종국에 가선 인간의 선함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된다. 어찌보면 김혜린은 작품 내내 중용의 미덕을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작가라 볼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치우침이 없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녀를 제단하려는 외부의 움직임(?)에 대해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곤 한다. 그녀 작품에 나오는 강인한 여성상을 보며 혹자들은 그녀의 페미니즘 성향에 대해 말하려 하였지만, 김혜린 스스로는,
- 내 작품은 페미니즘 성향의 작품도, 남녀 평등을 말하는 양성평등주의의 작품도 아니다. 다만 인간 사회의 '정의' 에 대해 말하려 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 작품의 영원한 화두가 되는 '사람' 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비운의 작품, 비운의 연재, 비운의 독자들...
- 1992 년 3 월 18 일 [댕기] 통권 제 7 호에 연재 시작
- 1996 년 8 월 1 일 통권 제 111 호에 연재 잠시 중단
- 1996 년 9 월 15 일 [댕기] 폐간 <불의 검> 연재 중단
- 육영재단에서 '댕기네 책들' 이란 제목으로 1992 년 12 월 25 일 <불의 검> 단행본 1 권 최초 출간, 1996 년 3 월 10 일 단행본 8 권을 마지막으로 [댕기]에서의 단행본 작업 종결
- 1998 년 5 월 도서출판 대원에서 [댕기]에서 연재되었던 단행본 8 권 이후의 원고를 모아 단행본 9 권 출간
- 1999 년 11 월 도서출판 대원에서 <불의 검> 1 권 ~ 9 권 재간
- 2000 년 11 월 [화이트]에서 <불의 검> 연재 재개
- 2001 년 3 월 [화이트] 휴간(사실상의 폐간) 5 회 연재중 4 회는 기존에 있었던 [댕기]에서의 연재분, 순수창작분은 1 회
- 2001 년 3 월 대원 씨아이에서 연재분을 취합 단행본 10 권 출간
- 2002 년 5 월 대원 씨아이에서 잡지 연재 없이 단행본 11 권 출간
- 2002 년 10 월 대원 씨아이 아직 진행중인 작품으론 최초로 애장판 출간 하드바인더 겉표지에 상당히 공을 들인 애장판임. 현재 5 권까지 발간(6 권이 마지막 권으로써, 기존 단행본 2 권을 한 권으로 묶어놓은 형태. 아직 6 권은 미발매)
- 2003 년 11 월 작가 김혜린, 김기혜, 김광성, 김진, 장태산이 모여 만든 만화 웹진WE 6 (작가 5 명 + 독자 = www.we6.co.kr)에 <불의 검> 연재 재개 발표

허연 바탕이 애장판
김혜린의 역작 <불의 검>이 지난 12 년간 걸어온 길이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다. 고등학교 2 학년에 갓 올라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12 년의 세월을 헤쳐나가며 겪은 그 수많은 인생 역정들... 수학능력 시험을 보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아빠가 된 그 12 년 세월동안 <불의 검>은 그 나름의 한많은 인생을 보내야 했다. 하긴 이건 <불의 검>만의 이야기가 아닐 듯 싶다.
1992 년 3 월, [댕기]는 그야말로 폭발직전의 인기 가도를 달렸고, 거기에 투입된 김혜린은 이런 [댕기]의 인기를 가속화시켰다. 문제는 앞전에 설명한 강인선 편집장이 [윙크]로 스카웃 돼가면서 [댕기]는 서서히 쇄락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기존의 인기작가들 마저 연재 종료와 함께 [윙크]로 넘어간 상태에서 [댕기]를 지키며(?) 고군분투 했던 두 작품이 바로 김진의 <바람의 나라>와 김혜린의 <불의 검>이었다. 두 작품 다 순정만화로선 드물게 역사물이었으며, 한국 고대사와 고대사였을 법한(상고사라 해야 하나?) 소재를 들고 말 그대로의 '대하 역사극' 을 펼쳐내는 중이었기에 연재는 작가가 펜을 접기 전까진 계속 이어지려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육영이 만화사업 쪽에서 손을 떼는 지경에 이르면서부터다(그 당시 박근혜 의원에 대한 원망이 대단했었다) 김혜린이 잠시 손을 접은 사이에 기습적(?)으로 폐간 결정이 난 [댕기]... 윙크 초창기에 댕기 독자들이 엽서를 날리며 '윙크에 지지 마세요!' 라며 눈물 섞인 바램을 날리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결국 폐간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바람의 나라>와 <불의 검>... 이 두 작품은 말 그대로 만화판을 방황하게 된다. 독자들의 원망과 한숨 속에 작가들은 또 얼마나 가슴 아파 했었을까? 이 상황에서 만화계엔 IMF 한파에 뒤이어 IMF 를 극복해내겠다며 서민들의 창업 열기 속에 등장한 '대여점의 쇄도'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때 서민들 살리겠다고 서민들의 먹이로 만화가들을 택했다는 시니컬한 농담들이 오갈 정도로 대여점의 위세는 기세등등했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만화가들을 물어뜯어가는 그들 덕분에 가뜩이나 열악했던 한국 만화계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순정지들은 창간과 폐간을 밥먹듯이 해댔고, 만화시장은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의 검>과 <바람의 나라>에 대한 독자들의 충성도를 인지했던지, 대원과 시공사에서 각각 <불의 검>과 <바람의 나라>를 재간하기에 이른다.
본 필자의 집에는 댕기네 책들 당시의 <불의 검>과 대원에서 나온 9 권, 대원씨아이에서 재간한 <불의 검> 11 권과 역시 대원 씨아이에서 나온 애장판 5 권이 다 있다. 말 그대로 <불의 검>이라고 나온 단행본은 다 샀다.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나온 종수만 4 종류나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2002 년 <불의 검> 애장판이 나왔을 무렵 김혜린은 아직 완결이 안된 작품을 애장판으로 출간한다는 사실에 못내 부담스러워 했다. 그리고 2003 년... 애장판 5 권이 나올 무렵, 김혜린은 지난 12 년간 독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던 <불의 검>을 종결 짓겠다고 말했다. 2003 년 안에 단행본 12 권을 출간시켜, 지난 11 년간의 <불의 검>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겠단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까지와의 결말과 좀 달리 마무리를 짓겠다고 천기누설을 하게 된다(남자주인공은 살려 둘 것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덜컹 놀래야 했다). 김혜린의 그 비애주의적 기질(?)이 또다시 발동 아라를 죽일 심산이었다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며 안타까워 했지만, 이 안타까움은 또다른 안타까움으로 전염되어갔다. 2003 년이 다 지나가는데도 12 권 출간 소식은 감감이었던 것이다. 김혜린은 끝끝내 12 년을 다 채우고 <불의 검>을 종결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따져보면 1 년에 한 권씩 출간한 꼴이 되는 것이지만, 어쩔 것인가...<불의 검>이라는 비운의 작품에 손을 댄 비운의 독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인 걸...
우리는 왜 <불의 검>에 열광하는 것일까?
요즘 간간히 TV 토론 프로에 얼굴을 보이는 이주향 교수가 지난 2000 년 6 월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어지간한 만화광이다라는 표현이 오갔지만, 당시 분위기는 대학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도 만화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며, 그것도 '철학' 씩이나 되는 고고한 학문을 이야기 한다는 사실에 작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녀가 어떤 센세이션을 목적으로 책을 만들었던, 그녀의 튀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책을 냈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만화라는, 소위 말해서 이 사회에서 '하위문화' 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당당히 문화의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 다룬 그 '철학' 중에 필자가 의미있게 본 것이 바로 '카라論' 이었다. 지금까지와의 악녀와 다르게 카라의 행동에는 분명 전과 후가 있었고, 행동에 대한 이유가 있었다. 왕이자 오래비인 온구트에 의해 어렸을 적부터 성적 노리개가 되어 온구트의 힘에 짓눌려 카르마키의 신녀이자 모주이면서도 또한 오래비에게 근친상간을 당해야 했던 한 여자는 그렇게 독기를 품고 온구트를 몰아세우려 했다. 여자로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온구트에게 거세 당한 카라.. 육체를 탐닉하면서도 언제나 허허로운 눈빛으로 단순히 쾌락을 쫓는 듯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큰 틀이 그려져 있었다. 카르마키의 진정한 모주(母主)가 되려는 틀... 그리고 실제 모주가 되긴 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아니한다 하였던가? 여하튼 당시 이주향 교수는 <불의 검>에 대해 그런 식의 나름의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 작품을 봤을까? 그리고 김혜린은 어떤 생각으로 <불의 검>을 그렸을까?
...(중략) 또 영웅찬가냐? 또 징징비극이냐? 또 사극이냐? 등등... 투덜대는 말씀을 일단은 겸허하게 접수해 두면서, 고백하건데- 이것은 영웅 환타지이며 활달한 야만의 노래다. 동시에 무엇보다도 여인의 이야기이다. 비록 나의 희망사항에 그친 변명일지라도...(이하생략)
1992 년 12 월 25 일 [댕기]에서 나온 <불의 검> 1 권 머릿부분에 나와있는 '작가의 말' 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필자는 이 작가의 말에 <불의 검>에 관한 모든 미덕이 다 담겨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덕에 대해 한 가지씩 짚어 나가자.
첫째, 이건 좀 의외의 말일지 모르는데, <불의 검>은 김혜린 작화의 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마 김혜린의 작품을 다 보신 분이라면 느끼시겠지만, 김혜린 작화의 완성은 <비천무> 후반부에서 느낄수 있는데, 보통 조금 긴 연재라던가, 작가가 자신의 그림체를 완성시키지 못한 상황의 연재중에 '성장'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보게 되면 확 눈에 띄는 게 바로 '작화' 이다.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보다가 <비천무>를 보면, 뭔가 그림체가 확 튀는 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비천무> 후반부로 가면 지금의 김혜린 그림체를 확인하게 된다. <불의 검>의 경우, 일단 완성된 김혜린의 그림체가 1 권부터 11 권까지 일정하게 유지된 작품이다. 작화에 있어선 이미 '완성화' 되었단 말이다. 거기에다가 데뷔 20 년 동안의 노하우가 이제 농염하다 못해 고혹적으로 펼쳐진다. 20 대의 치기도, 30 대의 노련미를 거쳐 40 대의 농염함으로 그림은 이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김혜린이 주무기(?)로 사용하는 먹이 제대로 날개를 단 작품이 이 <불의 검>이기도 하다. 김혜린은 스크린톤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로는 “비싸고, 일제가 많아서” 라지만, 따져보면 그녀의 먹을 쓰는 능력, 먹으로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걸 넘어서 등장인물과 상황의 분위기 전반을 먹 하나에 의존해서도 다 표현해낼 만한 능력이 만개한 작품이 <불의 검>이다. <비천무> 시절부터 동양적 사극에 맛을 들인(?) 작가에게 먹은 동양적 만화에 제격인 도구였고, <불의 검>에선 일상화를 넘어서 김혜린 작화의 특징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둘째, 사극이었다. 김혜린의 작품은 데뷔작에서부터 순정만화 작가로선 표현하기 어려운 권력의 속성에 대해 너무도 그 핵심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해의 별>이 그랬으며, <테르미도르>와 <비천무>까지 김혜린은 권력 내의 암투와 권력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그 어떤 순정만화 작가들보다 내밀한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런 김혜린의 특성이 만개한 것이 또한 <불의 검>이었다. 남쪽 나라... 중국에서 건너온 제백과 천궁과의 정치적 밀담. 검을 쥐고 군권의 한 가운데 있는 가라한 아사와 천궁과의 관계, 친구이기 이전에 신하와 군주의 관계, 친구로선 믿고 있으나 신하로선 군권을 가지고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한 2 인자로서의 관계, 이 둘 사이에 갈등하는 천궁과 그 모든 걸 이해해 주는 가라한. 그리고 주변에 들끓는 간신과 모리배...
김혜린은 간신이라 불릴 만한 존재들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이유' 와 '존재가치' 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사람은 약하기 때문' 일까? 단순히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간신이나 모리배들도 사람을 통치하는 데에 필요하고, 그만의 위치와 존재가치가 있음을 김혜린은 조용히 보여준다. 그것이 권력이란 걸 김혜린은 독자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보여주고 있다.
셋째, <불의 검>의 주인공 가라한 아사는 그녀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보편타당한 상식에 근거한 '영웅' 의 모습이다. <불의 검>이라는 이야기 자체는 B.C 850 ~ 700 년경 한민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예맥족인 아무르 족과 이들을 노리는 유목민족인 카르마키의 전쟁상황이 그 배경이다. 문제는 카르마키 쪽이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먼저 접어들면서 아무르를 정복하게 되고, 아무르는 여기에 대항해 항전하는 가운데, 아무르 족의 푸른용부(이 시대는 아직 절대왕권이 확립된 게 아니었다)의 수장인 가라한이 카르마키로 잠입 철기의 비밀을 캐내려다 잡히게 되고, 고문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에서 아라와 접하게 된다. 당연히 이 둘은 사랑을 하게 되고, 다시 잡힌 가라한 아사는 카라에 의해 그 기억상실증이 풀리고, 신전 공사장에서 탈출, 아무르의 영토회복을 위해 싸워 나간다....뭐 대충 이게 <불의 검>의 큰 이야기 줄거리이다.
아라가 아사를 위해 불칼(불의 검은 철검을 의미한다)을 만들어 아무르도 철기를 가지게 되면서 이야기가 좀 스펙타클해지는데, 격동의 한 가운데에서 가라한 아사는 자신의 여자와 자신의 전사대와, 자신의 왕이자 친구, 자신의 백성들과 아무르란 국가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나간다. 아라녀에 대한 절절한 사랑만이 아니라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과 도덕률에 근거한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영웅' 그 자체였다. 아파도 아니 아파하고, 슬퍼도 아니 슬퍼하고, 그 모든 번뇌과 아픔을 들고 그는 칼을 휘두른다. 이 작품은 가라한 아사의 그 애끓는 영웅담 하나만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작품이었던 것이다.
넷째, 이 이야기는 '여자의 이야기' 이다. 김혜린의 코멘트가 없더라도 이 작품이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작품을 펴보는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불의 검>은 전쟁이라는 격동의 한 가운데를 그려내면서 그닥 선명한 전투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라한이 신궁 공사장을 탈출할 때의 전투씬 두 번, 천궁이 위계에 걸려 자신의 아내를 잃을 때의 장면 하나, 우르판과 가라한의 맞대결 정도가 기억에 남는 전투 장면일 뿐 그닥 인상 깊은 전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이 전쟁의 한 가운데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바로 '전쟁터의 여자들' 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불의 검>의 남자들은 전쟁과 살육의 가해자들일 뿐이고, 그들 뒤에서 신음하며, 아파하며, 종국에 가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아픈 이들을 감싸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니 바로 그 여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불의 검>이다. 김혜린의 말처럼 <불의 검>은 여자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음.. 이 이야기 한 번 찐하게 해야겠다. 휴우.. 숨 한 번 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