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이상 탄생 100주년(2010) 기념으로 기획되었다는 이 책은, 본문 마지막에 내용 출처 문헌을 밝히는데 할애한 페이지만도 14p에 달한다.
저자 후기를 참고하면 내가 집에서 편하게 뒹굴면서 읽은 한 권의 책은 즉 100권의 책, 1년이라는 시간이 집약된 결과물인 셈.
1930년 대의 이상과 그를 둘러싼 신지식인 모던보이들을 조명하는 이 책은 읽는 동안 특히 두 가지가 인상적인데 1930년 대의 경성과 이상을 비롯한 구인회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일대기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모던 도시 경성에 경쟁하듯 우후죽순 들어선 신식 백화점(하물며 승강기도 있다!) 이야기는 그 시절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내겐 무척이나 신선했다.
거기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부녀자, 여대생들이 욕구를 푸는 민간 소비 행태가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는 근대를 식민지 국가로 전락한 민족의 암흑기로만 인식했던, 한 시절에 대한 내 무지를 일깨우는 일종의 컬쳐쇼크였다.
 

백화점 옥상 정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피카소·스트라빈스키·장 콕토의 작품에 열을 올리고, '파리에 가서 삼 년간 공부하고 오자'(김기림-이상) 계획을 세우기도 하며,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해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하는 모던보이들은 '그 시절도 사람 사는 시절'이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에 '박제'가 있는데 어쩌면 나야말로 30년대 혹은 근대 경성을 박제해서 내 인식 안에 담아두었던 것 같다. 한 장의 흑백 사진, 소리가 거세된 흑백 영상으로만 박제하고 정작 그 시절이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오늘의 과거였음을 잊고 있었던 것인데,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본문에 실린 흑백 사진들이 예전과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예전엔 기록 사진 정도로만 느꼈다면 지금은 애틋하고 짠한 감정의 찌꺼기가 남는 차이랄까.


구인회를 중심으로 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운데 그중 김기림이 조선일보 입사 때 본 공채시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상식 시험에 출제된 문제가 데몬스트레슌·조광조·불복종운동·모라토리엄·코즈모폴리턴·아관파천·스탈린 등이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지식산업의 종사자는 똑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데몬스트레슌은 아마도 demonstration인 듯.

 

한편 신지식인 모던보이들의 독서량도 흥미롭다.

한 예로『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천변풍경』의 박태원은 학생 때 제임스 조이스·고리키·투르게네프·톨스토이·빅토르 위고·모파상·하이네 등에 심취했다고 하는데 왠지 문청의 모범적인 정석 같달까. 얼마 전 조이스의『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면서 서술 구조가 박태원의 작풍과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역시 영향을 받았던 모양이다.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그 작가가 읽어온 독서 저변과 독서량이 보이는데 최근 몇 년간 현대문학을 하는 몇몇 작가군의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어이없음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빈약한 서사와 얄팍한 서술구조, 유행에 편승한 국적 불명의 장르 은유는 자신들이야 pop하다고 주장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나 역설적으로 그들 내부의 문학 환경이 얼마나 조악한지 드러낸다.

 

1930년대는 들여다 볼수록 참 재미있는 시대다.

민족수탈, 독립운동, 친일 등 온갖 암울한 요소들이 뒤섞여 판치던 한쪽에선 모던 껄, 모던 뽀이들의 자유연애, 정사(情死)가 공존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본문에 바우만의 '액체 근대'라는 개념이 잠깐 등장하는데, 말하자면 1900-1930년대 경성이야말로 '액체 근대'에 부합하는 시절이었다고...
저자는 이에 덧붙여, 1895년에 단발령이 공포되었을 때 '내 목을 벨지언정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고 완강하게 저항하던 사회 분위기가 불과 30여년만에 나팔바지, 금팔목시계, 백구두, 봉두난발 등의 '洋'식을 선망하는 시대로 급변이 가능한 배경은 문화의 파급력이 고체가 아닌 액체의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본문 2부 1장) 이라고 해석한다.

 

고백하건데 '이상'은 내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문인이다.
이상의 사생활도, 이상의 작품도 내 정서로는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그가 근대 이전에도 근대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문제적 작가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가 일간지에 연재하던 연작시「오감도」는 원래 30회까지 준비했으나 독자들의 반발로 15회로 마감했다고 한다.
한 작가의 문학세계가 보편적이지 않다 해서 기어이 그의 붓을 꺾으려 들었던 독자들의 몰이해가 안타까운 한편 지금도 난해하다는 평을 듣는 그의 작품이고 보면 당시로서는 오죽했을까 이해도 가는 부분.
짧은 생마저도 그의 작품 세계의 연장처럼 느껴지는 이상.
작가이자 시인이며 화가이고 건축기사였던 김해경 혹은 이 상은 천재일까 기재일까.
책을 읽고 나니 천재로 생각이 기운다. 무엇보다 한글과 일어 숫자와 도안이 섞인 육필 원고는 그가 장난으로, 허세로, 가볍게 문학을 한 것은 아니겠거니 하는 작가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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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책 수다를 떨었는데 대충 이런 내용... (N은 나)
 

N: (하루키의 '잡문집' 지름신을 물리치고) 우리나라에서 하루키의 위치는 유행이다. 유명세만큼 하루키가 제대로 읽혔다면 지금 같은 열풍이 있을 수 없다
B: 예전에『상실의 시대』를 읽었는데 그 뒤로 하루키 소설은 안 읽힌다
N: 나는『해변의 카프카』때부터 때려쳤다. (소설의)자기복제가 심한 작가다. 하루키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그의 소설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단편은 대체로 좋다. 이번 예약구매 신간이 단편집이었다면 고민 안 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수필은 대체로 읽을만 한데 하루키는 예외다
B: (국내에 출간되는)일본 소설은 추리소설이 대세 아닌가
N: 매니아가 많지. 매니아들 서평 덕에 나도 일본 추리소설에 많이 낚였는데 세이조도 낚일 뻔 했다. 알다시피 전작주의라 하마터면 세이조를 다 살 뻔했다
B: (세이조의)『이누가미 일족』은 정말 별로였다. 명색이 추리소설인데 사건이 전부 우연히 이루어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
N: 말이라고 하나. 게다가 명탐정이라는 인간이 눈 앞에서 네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건 정말 코메디다
B: 그래도 교고쿠 시리즈는 괜찮더라
N: 다행이다. 아직 안 읽었지만 교고쿠 역시 평이 워낙 좋아서 나오는대로 사고 있다. 추리소설은 의외로 (인지도가 거의 없는)『시소 게임』이 괜찮았다. 참『용의자 X의 헌신』영화화 한단다
B: 게이고는『백야행』만 읽었는데 난 별로였다
N: 『백야행』은 그냥 로맨스소설이다
B: 주인공 둘 다 능력이 있는데 굳이 둘이서 계속 살인을 해야 하나 설득력이 없다
N: 로맨스소설이라니까. 그냥 남자가 여자한테 낚인 거다. 그래도『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소설답다. 거의 끝부분 한 장면 때문에 인상적인 소설이다
B: 책은 안 읽었지만 그 한 장면은 얘길 들어서 알고 있다
N: 완전범죄의 절대조건은 '알리바이'인데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부분이 나름 참신했다




 

 

N: (요즘 국내에선)일본이 대세지만 추리소설의 본좌는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다. 어린 나한테 모든 범죄의 동기는 '치정' 아니면 '돈'이라는 걸 가르쳐 준 작가다
B: 아가사는『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 읽었다
N: 다른 것도 읽어봐라. 아가사 여사는 심리를 잘 다룬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범인이 누구인가, 범인의 트릭은 뭔가 궁금한 데서 오는 긴장감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아가사 여사가 역시 최고다
B: 아가사 크리스티는 전집이 나오지 않았나 (왜 책장에 책이 안 보이냐는 얘기)
N: 중학생 때부터 책을 모았는데 예전에 병원에 입원한 친구한테 빌려주고 못 돌려받았다. 책과 CD는 빌려주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우쳤다. 그래도 널 위해 내가 아가사 여사 전집을 사마


 

 


 

B: 판타지, SF 소설은 이제 안 사나
N: 왜 안 사겠나. 일단 시중에 나온 건 다 샀고, 이젠 새로 출간되면 그때그때 산다
B: 영국에선 유명한 판타지 작가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소설이 이번에 출간됐던데
N: 제목이 뭔데?
B: 기억 안 난다
N: 생각나는 단어를 말해봐라, 검색해보자
B: 트리니티? 그런 단어가 들어간 것 같다
N: 켈트 신화 영향인지 판타지 소설은 영국이 확실히 강하다
B:『핑거포스트1663』(요 며칠 B가 읽고 있는 소설, 영국이 배경) 읽어봐라. 한 사건에 대한 목격자 네 사람의 증언록인데 재미있다
N: 네 사람이 다른 얘기를 한다는 부분이『그날 밤의 거짓말』(제수알도) 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그날밤ㅡ' (거의)마지막 장면은 영화 <쏘우>랑 같지 않나, <쏘우>가 먼저일까 책 출판이 먼저일까
B: 그랬나? 책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데 중요한 건그 장면까지도 네 사람의 계획에 들어 있었던 거 아닌가
N: 글쎄 소설 주제는 '죄수의 딜레마'니까 그 장면은 별개로 독자를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다
B: 그런데 내용이 정말 기억이 안 난다
N: 나도 그렇다, 그쪽 문화를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봐라, 우리는 '마빡이' 하면 바로 알아듣고 웃지만 다른 나라야 그 정서를 알겠나. 같은 얘기지. 그러니 서양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신화를 열심히 읽어줘야 된다. 조이스의『율리시스』가 대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르도토스의『역사』(숲, 천병희) 부터 읽어봐라. 쉽고 재미있다
B: 율리시스가 신화에 나오는 영웅 맞지? (J.조이스의)『율리시스』에 그 율리시스가 나오는 줄 알았다. 그 책은 도대체 누가 읽나
N: 줄거리만 보면 하룻밤 새 일어나는 막장 치정극이다. 조이스가 워낙 언어를 뒤트는 감각이 남달라서 같은 문화권, 언어권이 아니면 그 소설을 누가 제대로 이해하겠나 싶다. 게다가 문체도 의식 흐름 기법이다. 그나마 단편집『더블린 사람들』은 그럭저럭 읽을만 했는데『피네간의 경야』는 읽는 게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
B:『나사의 회전』도 문체가 딱『올랜도』다. (두께가)얇아서 골랐는데 읽으면서도 문체 때문에 도대체 뭔 소리인지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
N: 그거 내용은 <디 아더스> 아닌가
B: 모르겠다. 하여튼 읽는 동안『올랜도』악몽이 되살아났던 것만 기억난다
N: 나는 처음에 제목 봤을 때 나사가 미항공우주국인 그 나사인 줄 알았다
B: 나는 나사가 (공구) 나사인 줄은 알았다

 

 

 

 

 

B:『태양은 가득히』사라
N: 그거 번역한 출판사가 두 군데다. 살만한 건 한 군데인데 책 표지가 넘 촌시러... 알랭들롱을 꼭 썼어야 했나
B: 동서문화사꺼 말하나, 동서 표지가 좀 그렇지
N: 동서는 표지에 신경을 너무 안 쓴다
B: 그래도 사라. 어렸을 때 읽어서 마지막 장면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난다.문학동네던가 민음사던가 '리플리' 전집이 아마 나왔을텐데. 그런데 전집에 '태양은 가득히'가 빠졌다, 그게 제일 유명한데
N: 판권 때문인가? 책은 안 읽었지만 영화는 봤다. 프랑스, 미국 버전 둘 다. 어쨌든 리플리는 안 들키고 살아 남았지 않나. 책도 마찬가지 아니냐, 후편이 계속 나온 걸 보면
B: 맞다. 그런데 미국버전은 책보다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강조됐다. 톰이 디키를 사랑하는 걸로 표현됐다. 프랑스 버전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 강조됐다
N: 주드 로가 뇌쇄적이긴 했지. (존 말코비치 주연의)<리플리's 게임>의 리플리가 그 리플리인지 정말 몰랐다
B: 그 영화 봐야 되는데 
 

 

 

 

 

 

N: 그나저나 '파이 이야기' 영화는 언제 나오나
B: '파이 이야기'를 읽을 때 판타지라고 생각 안 했는데 '원숭이 섬' 장면 때문에 소설이 판타지라는 느낌이 남았다, '원숭이 섬'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N: 나도 파이가 '원숭이 섬'에 들어갈 때랑 나올 때의 장면이 흐릿하다. 의도적인 건가?
B: 글쎄. 그런 탓인지 호랑이나 다른 등장동물은 다 이해했는데 원숭이 섬만 이해를 못 했다
N: 난 호랑이를 잘 모르겠던데. 뭍에 도착한 뒤에 호랑이가 환영처럼 묘사되지 않나
B: 나는 호랑이를 분열된 자아라고 이해했다. 하여튼 '파이이야기'의 마지막은 굉장한 반전이었다
N: 맞다. 파이가 '그럼 니네가 원하는 얘길 해줄게' 라고 말할 때 낚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낚였다. 어, 이거 뭐지? 했다. 역시 샤말란이 적임자다
B: 샤말란이 적임자지. <식스 센스> 보러 가기 직전에 스포에 당했던 게 생각난다. 나는 평생 '죽은 사람이 보여요'의 충격을 모르고 살 거 아닌가
N: 에구, 불쌍한 것. 나는 스포를 즐겨서 다행이다. 그러고보니 xx일보에 '나는 스포다'를 흘리고 다니는 미친기자놈이 하나 있었지
B: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N: 내가 꼽는 반전 영화는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노웨이아웃>이다, <노웨이아웃>봤나
B: 본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지?
N: 케빈 코스트너, 진 해크먼이 나온다. 케빈 코스트너는 해군 장교, 진 해크먼은 케빈의 상사인가 그럴 거다
B: 기억이 잘 안 난다, 무슨 내용이지?
N: 어쩌고 저쩌고...



 

 

 

N: 연말엔 버나드 쇼나 읽어야겠다. 어릴 때 읽고 안 읽었는데 요즘 다시 읽고 싶어졌다. 요즘 희곡이 부쩍 재미있다
B: 버나드 쇼랑 쇼펜하우어랑 늘 헷갈린다. 집에 쇼펜하우어 있나
N: 나는 버나드 쇼랑 오스카 와일드랑 헷갈리던데. 쇼펜하우어 있지만 책이 너무 낡아서 새 책 사려고 어디 구석에 처박아뒀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로 청년들을 낚은 희대의 낚시꾼이라 생각함
B: 나도 동의함 

 


 

 

 

 

B: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모르는 걸 보고 아, 요즘 애들은 무식한 게 아니라 그냥 책을 안 읽는구나 싶었다
N: (깜놀) 이승기가 도끼를 모른다고?
B: 그렇다니까
N: 요즘 20대가 옛날 20대보다 독서량이 더 많지 않나. 논술세대 아닌가
B: 그렇게들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N: 하긴 M군은 톨스토이를 모르더라. M군한테 톨스토이도 모르나 했다가 임어당 공격을 받았다
B: 임어당이 톨스토이보다 유명하지 않나. 교과서에『생활의 발견』이 나오잖아
N: 톨스토이의『바보 이반』도 나온다
B: 내가 배운 국어엔 안 나왔다

(이후 국어는 국정인가 아닌가 잠깐 토론이 벌어짐)

 

 

 

 

 

 

 
B: 서유기가 장편인 거 아나
N: 뭬야? 단권 아니었나? 나는 단권으로 읽었다. 근데 중국 3대 기서가 수호전, 서유기 또 뭐지?
B: (…)
N: (…) 

(폭풍검색 중, 어느 네티즌의 '중국 3대 기서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에 웃다가 뒤로 넘어감)


 

 

B: 근데 금병매 내용이 야한막장드라마다. 내용이 어쩌고저쩌고...
N:『겐지이야기』랑 비슷하네. 겐지 내용이 어쩌고저쩌고... 문학적인 유명세 때문에 한때 살까말까 엄청 고민했다. 일본에서 가져온 원서 (만화책) 겐지 이야기『淺き夢見し(あさき ゆめみし)』는 있으니 나중에 한번 봐라
B: 결국 그거지 않나. 당시 생활이나 문화의 기록이라는 보존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는 거. 브론테 자매나 제인 오스틴을 봐라. 내용은 그냥 로맨스소설인데 100년이 지나니 고전이 됐다
N: 맞다 맞다.


 

 

B: 그런데 영화 <동사서독>이 '영웅문' 시리즈에 나오는 내용인가?
N: 그런 내용 안 나온다. 영화는 인물의 이름만 가지고 온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다. 동방불패도『소오강호』한 페이지에 잠깐 나오는 인물이다. 영웅문 시리즈 안 읽었나
B: 영화, 드라마로 <의천도룡기>만 봤다 (B는 '의천도룡기'의 양조위 열혈팬)
N: 읽어 봐라 재미있다. 예전에 베프랑 '동사서독' 놀이를 한 기억이 난다
B: 동사서독이 사람인가
N: 동사, 서독, 남제, 북개라고 장년초딩 4인방이다. 거지왕 홍칠공이 바로 북개다
B: 책이 너무 길다
N: 시리즈 하나를 읽는데 보통 이틀 걸렸다. 길이는 문제가 안 된다. 잡으면 밤새워 금방 읽는다
B: 등장인물이 짜증난다. 장무기는 주인공인 주제에 너무 우유부단해서 엄청 짜증났던 인물이다
N: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가 있는데 김용도 그런 부류다. 극중 등장인물의 정체성이 웬만해선 안 바뀐다. 처음 캐릭터가 끝까지 간다. 대표적인 인물이『녹정기』의 위소보다. <동사서독>은 텍스트로 이해하면 더 재미있는 영화다. 집에 감독판 <동서서독>이 있으니 봐라.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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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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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에 있던 소설인데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 분위기만 보자 하던 것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개인 생각이지만 국내 장르소설 작가 중 가장 잘 쓰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어디서 '잘 쓴 번역소설'이라는 평을 언뜻 읽었는데 그야말로 적확한 평이다.
듀나의『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읽고 잔뜩 실망한 직후라 더 감동적이었을 수도 있다.
굉장히 포스트모던한데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 드는 상상력이 보르헤스를 연상시킨다.
언뜻 가벼운 듯 싶지만 이야기가 굉장히 치밀하고 성실하다. 작가에게 이야기꾼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
모두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되었는데(책을 읽기 시작할 때도 장편인 줄 알았다)  수록된 단편들 모두 다 재미있다. 책을 읽는 도중에 이 작가의 책이라면 기꺼이 주머니를 열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단적인 예로『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찾아 읽게 만드는 작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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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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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 섹션에 실린 서평에 의하면 듀나는 우리나라 장르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한다. 듀나의 단편소설집『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제 국내작가의 SF소설은 다 읽었군, 이었다.
한마디로 책 본문의 문장을 빌려(p.341,「디북」), '듀나의 상상력엔 내가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세계관 따위는 없어' 라고나 할까.
배경이 미래이고, 첨단 과학에, 사이버, 돌연변이, 유전공학 등등 관련 용어만 늘어놓으면 SF인가?
관련 장르가 활성화되고 이미 오래전에 정점에 오른 서양 SF로부터 빌려온 듀나의 SF 상상력은 새로운 세계로 확장은커녕 작가의 독자적인 세계관 구축에 실패하여 매트릭스 키드에 머물고 만다. 당연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열세 개의 단편은 읽는 내내 남의 꿈 얘기를 듣는 것마냥 지루하고 따분하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회의와 씨름하게 한다. 하긴 책 말미에 '꿈보다 해석'인 모평론가의 작품해설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읽으면 이 책에 저런 해설이 가능한지, 작품해설이야말로 이 단편집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SF였다.
사족 하나 더. SF인데 굳이 등장인물이 서양인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외계인 우주선은 미국 상공에만 나타난다더니 SF문학 너마저도!
나아가 브루스 윌리스 주연 영화 <써로게이트>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하는「디북」은 등장인물들이 온통 서양인인 건 물론이고 에너지 혹은 신경망(계)인 화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인간적(humanity)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단편 전반이 다 그렇다. 기껏 진화와 변이를 통해 출몰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종족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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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3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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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희곡,  시집 한 권을 남긴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은 어렵기로 유명한데 이유는 '열린 텍스트 구조가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기 때문'(진선주.『더블린 사람들』문학동네)이라고 한다.

원제가 'Dubliners'인『더블린 사람들』은『젊은 예술가의 초상』『율리시스』와 함께 '더블린 3부작'으로 불리우는 단편소설집.
열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많은 화자들과 그 주변인들은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로 읽는 내내 인물들의 일관된 정서가 느껴진다. 그런데 단편집이라 가볍게 선택한 이 소설은 독서 시작 직후, 그러니까 열다섯 편의 단편 중 첫번째 단편「자매」를 읽은 직후부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간단하게 말해 왜 이 단편의 제목이 '자매'인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편에서 제목이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자매'는 본문 내용과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 뿐더러 이게 제목이어야 할 의미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의문은 책 말미 해설을 통해서 풀렸는데, 순서상 마지막 단편인「죽은 이들」과 첫번째인「자매」의 제목을 맞바꾸어도 무리가 없는 열린 구조 즉, 각각의 이야기가 순환되면서 하나의 연작으로 읽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마지막 단편「죽은 이들」은 '자매'가 제목으로 딱 제격이다.

『더블린 사람들』은 시기적으로 조이스의 첫번째 소설이어서인지 이후의 장편소설에 비하면 소설 자체는 그닥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한 예로, 몸 전체가 갈색인 저도 있는 걸요, 라고 대꾸하는 '브라운 씨'(아마도 Mr. Browne일)의 농담은 '영어몰입교육'을 정책으로 미는 것이 전혀 안 이상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조이스式 언어 유희인 것. -「죽은 이들」중

문제는 이러한 언어의 내밀한 차이를 비영어권 독자들이 어디까지 수용 가능한가 하는 것인데, 조이스 스스로 '굉장히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추어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붙인, 20세기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율리시스(Ulysses)』나『피네간의 경야(혹은 밤샘)』 에 이르면 거의 난공불락의 성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경상도 사투리에 '가가 가가 가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이해 못하는 타지 사람들에겐 부연 명이 필요하다. 이렇게...
"경상도에서는요,그 아이'를 줄여서 '가-'라고 해요. 그리고 의문형 어미로 '가'를 써요. 그러니까 '가가 가가 가가'는 '그 애가 가(씨 성을 가진) 가(집안)의 그 애냐?'라는 뜻인 거죠."
이걸 같은 나라 타지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 발 더 나아가 이걸 문학에 집어 넣는다고 상상해 보자. 이쯤 되면 '그냥 널리고 널린 다른 수많은 고전이나 읽을래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듯 조이스 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그의 언어 사용에 있는데 획일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열린 텍스트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영어권 독자들에겐 그의 독창적인 언어 유희로 가득한 문학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우리나라가 비영어권 국가 중 조이스의 장편을 번역한 네번째 국가라고 하니 더 말해 뭘할까.

움베르토 에코 정도면 가능하겠군, 싶었는데 책 말미 해설에 짤막하게 에코가 조이스 학회장이라는 얘기가 있어 웃었다. (국내에 에코는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듯 하지만 실제로 그는 매우 저명한 기호학자다.)

단편 중「가슴 아픈 사고」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강박적이다 싶게 인물의 성격에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조이스의 문체 특징이 잘 나타난 이 단편은 한때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던 여인과의 만남 전후를 시니컬하고 냉정하게 응시하는 남자의 내면이 돋보인다.

조이스 문학의 또다른 특징은 '의식의 흐름'이다. 나는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면 과장해서 경기 비슷한 걸 느끼는데 그러니까 마르셀 프루스트나 울프 여사의 책은 펼치기만 하면 5분내 수면 상태가 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최근 읽으려고 펼친 책들이 죄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문학 속 '의식의 흐름' 기법은 아무래도 넘을 수 밖에 없는 산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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