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하철은 나른한 오후의 아랫배를 머리로 들이받으며 내천(川)자가 들어간 도시의 이름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p.118 

국어 문법에서 '은유법' 은 독소항목인가 의심케만드는 다섯번째 단편「영원한 화자」는 이런 지독한 은유외에도 의미가 분절되어 도무지 앞 문장이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그래서 금방 읽고도 뭘 읽었는지 도통 의미 파악이 안 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다른 단편「종이물고기」에 등장하는 '실패한 농담들의 쓰레기장' 포스트잇을 위 단편에 붙여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총 아홉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달려라, 아비』에는「종이물고기」,「노크하지 않는 집」과 같은 괜찮은 단편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괜찮은'과 '안 괜찮은'의 간극이 너무 크다.
한 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반면 그럴 듯한 겉모습에 끌려서 집어 먹었다가 괜히 배만 채우게 되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뷔페와 단편소설집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김애란의 소설집를 읽고 난 소감은 뭐라고 한 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다. 그녀가 너무 앞서갔거나 내가 너무 뒤처졌거나, 범인(凡人)인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문단의 음모이거나, 문학의 위기라고 부르짖는 평단의 위기이거나... 뭐, 아무려면 어떠한가.
그럼에도 기어이 하고 싶은 말은 여덟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한 직후,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등장하는 그 놈의 '아버지' 타령에 "아, 이젠 정말 지겹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것.
국내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이제 겨우 3년 남짓. 읽으면 읽을 수록 난감하다.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몇 몇 작가들 덕분에 간신히 버티고 있다. 재능의 가치란 그것의 희소성에 있다는 점에서 세상은 공평하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