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의 장난인가 싶게 지속적인 우연과 마주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올 4월, 바틀비(Bartleby)가 그랬다.

지난 달(3월)에 창비세계문학전집에서 우연히 바틀비를 만난 이후,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바틀비가 어쩜 그렇게도 자주 내 앞에 나타나는지, 정말이지 H.멜빌의 바틀비는 너무 자주 그리고 아무 데서나 나타났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들뢰즈의『비평과 진단』은 물론, 부산 어느 서점에서 산『모든 기다림의 순간...』에서도, 절판으로 못 구했다가 뒤늦게 구매한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도 불쑥 나타나더니, 전혀 상관없는 검색어를 치고 찾아 들어간 어느 개인 홈에서마저 바틀비다. 그러니 이쯤 되면 웃을 수밖에.

예시나 조짐이었던 걸까.
4월은, 잔인한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것과 연속으로 마주쳐야 하는 낯설고 불편한 경험 때문에 정신적으로 긴장상태인 날이 많아서 힘들었던 달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구체적으로, 이제까지와 달리 "I would prefer not to-"를 마음대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고, 싫은 사람은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상황에 놓여본 적도 없으며, 불편한 일을 할 필요도 없으며, 불편한 사람과 마주 볼 일도 없이 살았으니 낯선 상황들이 당연히 힘들밖에.
그리고 새삼 생각한다. 바틀비. 좁은 공간에서 아무 것도 없는 회백색 벽만 바라보며 "I would prefer not to-"만 반복할 때 바틀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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