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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보다도 너무 수다스럽다. 책을 읽다 보면 "아, 게보린" 소리가 절로 난다.
소설의 전반부 1/3은 삼미슈퍼스타즈의 3년 동안 기록의 대행진 보고서다. 20년이나 지난 옛 신문의 스포츠난을 읽는 듯한 이 기분을 어찌할꼬. 남자들이 군대 간 얘기를 하는 것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남자들이 스포츠 얘기를 하는 거 아닐까 한다.
아이에서 중년의 남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화자 '나'가 서술하는 이 소설은 '나'가 청소년기 학생일 땐 교조적인 냄새가 제법 풍기고, 본격적으로 생존 경쟁에 뛰어드는 청년기로 오면 갑자기 사회소설이 되고, 한바탕 내외풍을 맞아 시련을 겪고 난 중년기에 접어들면 마치 인생에 달관한 듯 처세소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소설에서 작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말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럴까? 바쁜 걸음을 늦추고, 지금 절대적인 가치를 주고 있는 것들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의문을 가지라는 충고는 일견 매우 바람직하게 들리지만 사실 여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작가의 '이상주의'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주장하듯 '잡기 힘들면 안 잡고, 치기 힘들면 안 치는' 것은 '야구'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야구가 뭔가. 우리가 아는 야구란 달리고 쫓아가고 때론 펜스를 기어오르고 때론 잔디 위를 구르고, 가끔 양팀 감독들이 나와서 부푼 배도 부딪쳐주고, 운 좋으면 방망이와 글러브가 아니라 주먹과 발로 대결하는 타자와 투수의 K1 라이브도 볼 수 있는... 승부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그 유명한 수식을 달고 다니는 스포츠 아닌가.
그러니,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경기를 해? 전력질주 하지 마, 승부에 연연해하지마, 승부보다 중요한 건 즐거움이야,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전력질주도 하고 때로는 주저앉아 쉬기도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달려보지 않은 자는 전력질주한 직후에 마시는 한 모금의 물맛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전반부는 삼미슈퍼스타즈의 원년 기록을 줄줄 읊어대는 그래서 마치 스포츠 중계를 듣는 것 같은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저변에는 IMF를 힘들게 통과한 중년의 향수와 응원이 컸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로,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 조성훈과 모두가 포기한 경기를 혼자 끝까지 승부하던 감사용(영화《슈퍼스타 감사용》) 중 한 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감사용을 지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