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잘 쓴 이야기가 주는 쾌감,은 같은 책 번역 후기의 제목으로 번역자가 붙인 것인데, 이는 작가의 독백 또는 일기장을 보는 듯한 4장에 등장하는 ‘나’(이자 동시에 작가인 온다 리쿠)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읽으면서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다.
8월에 여름 휴가를 맞아 평소 내가 아끼는 동생 B가 부산에서 왔을 때『삼월은 붉은 구렁을』얘기가 다시 나왔다. 그 전에 전화로 이미 슬쩍 주제에 한 번 올랐던 것이 이번엔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본격적으로 얘기가 나온 것이다.
“보통은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친한 사람한테 막 얘기해주고 싶은데 이 책을 읽었을 땐 나 혼자만 알고 아무한테도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는 B의 얘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독서(혹은 드라마, 영화, 음악 뭐든) 취향이 비슷한 동료가 있다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행운이다. 그리고 말하자면 B는 나와 독서 취향이 제법 잘 맞는 친구다. 그리하여 연휴가 끝나고 B가 집으로 내려간 다음 날 바로 몇 권의 책과 함께 온다 리쿠의『삼월은…』과『굽이치는 강가에서』를 주문했다. * 이 리뷰의 최초 작성일은 2006.9월이다

온다 리쿠는 64년생의 일본인 여류작가다. 이 얘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온/오프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곧잘 오르는 ‘50년대 이후에 출생한 일본 작가’의 책이 내겐 매력이 없는 혹은 잘 읽히지 않는 책으로 분류되는데 온다 리쿠는 이런 내 분류를 깬 작가이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취향이 잡다한 반면 좋고 호오가 꽤 분명한 편이라, 지금은 국내에서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하루키를 예를 들면,『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된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95년 이래로 지금까지도 그의 장편은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그의 단편은 내용도 문장도 담백하고 심플해서 상당히 좋아한다.

각설하고, 다시『삼월은…』으로 되돌아가서, 이 소설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기다리는 사람들
2장, 이즈모 야상곡
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4장, 회전목마 

각 장은 모두 특색이 있는데 온다 리쿠의 소설이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만큼 형식은 추리장르의 틀 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의미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한편 같은 이유로 나는 순문학과 장르 소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의 깊이에 푹 빠져 버렸다. 각 장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1장
수수께끼의 책이자 이 소설과 동명인 ‘삼월은…’을 찾는 과정이 나오는데 상황이나 대화가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
2장
수수께끼의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아가는 여정이 등장. 네 개의 장 중, 추리소설의 틀에 가장 근접한 장이다.『삼월은…』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화자들의 입을 통해서 ‘수수께끼의 책’의 일부분을 자투리처럼 얻어 듣다 보면 어느새 ‘아, 나도 그 스토리의 완성본인 수수께끼의 책을 읽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3장
유일하게 ‘수수께끼의 소설’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소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는 성장 소설의 형식을 띤 소설이 많은데 이 3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 온다 리쿠가 로맨스를 쓰면 굉장할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던 장이기도 했다.
4장
이 장은 ‘나’와 ‘그녀’라는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면서 작가의 육성과 작가의 소설을 동시에 읽는, 좀 불편한 체험을 하게 한다. 실제로 넘어 가는 것이 가장 더딘 장이었는데 3인칭 화자의 소설에 빠져들라 치면 갑자기 1인칭의 작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몰입을 방해하는 식이다. 작가의 고의성일까, 나중에는 의심이 들 정도. 4장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다시 장편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하니, 어쩌면 실제로 작가의 의도된 구성일지도 모르겠다. 

1,2,3장과 달리 4장은 읽는 동안 일본적인 색채가 많이 느껴지는데 1인칭의 독백과 엇갈려서 등장하는 3인칭의 스토리가 영화 ‘배틀 로얄’식의 학원 잔혹극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4장을 읽기 시작한 직후에 나를 웃게한 부분이다.

소설의 제목에는 쓸 만한 것과 쓸 만하지 않은 것이 있다. 단편에는 쓸 수 있어도, 장편에는 이제 더는 쓸 수 없는 것도 있다. 더는 쓸 수 없는 제목이라고 할 때, 언제나 맨 먼저 생각나는 제목은 여행의 끝이다. 번역된 영화제목이나 유럽이나 미국의 단편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참으로 진부하면서도 그렇다고 마땅히 대신할 만한 것도 생각나지 않는, 하여튼 빈틈없는 제목이다. - p.309, 4장 

여행의 끝? 에게- 겨우 이런 제목이 그렇게 흔하단 말이야? 조금 놀라는 심정으로 생각하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 책장에도 이와 같은 제목의 책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존 바드(John Barth)의 소설로 우리말 제목은『여로의 끝』(The end of the road) 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좋은 글, 잘 쓴 글이란 과연 어떤 글일까.
요즘 상상력은 온데 간데 없고 그럴싸한 문장, 언뜻 있어 보이는 것 같은 언어의 말장난으로 현혹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상상의 힘만으로 자신의 소설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읽는 이를 압도하게 하는 소설을 만나 읽는 동안 참 많이 즐거웠다. 게다가,

야마다 에이미는 소설을 쓸 때 한 마디도 고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도 안 돼!’하고 부르짖는다. - p.316 

라니. 아아, 정말 귀엽다!
잘 쓰인 글과 별개로 작가에겐 호감을 못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온다 리쿠는 글도 작가도 모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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