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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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의 영화《졸업》을 봤을 때, 나는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와 버스에 올라탄 연인의 뒷얘기가 몹시 궁금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불꽃》의 마지막 장면, 두 남녀가 각자 자동차를 몰고 와서 해후한 뒤의 얘기 역시 진심으로 궁금했다. 순전히, '그들은 과연 그 후 행복했을까? 아마 아닐 것 같은데...', 라는 이유에서 그들의 후일담이 궁금했던 것이다.
갑자기 웬 영화 타령인고 하니, 이 소설『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이 007과 본드걸의 후일담'격' 소설인 까닭이다.

일단 먼저, 본드걸의 이름은 '미미'다. (성은 끝내 안 나온다. 혹시 양?)
그럼 007의 이름은? 당근 제임스 본드다.
007의 무수한 본드걸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미미양. 미미는 테스트를 통과하고 신입연수도 무사히 마친 뒤 013을 부여받는다. 왠지 재수 없을 것 같은 번호 '13'은 다들 거부해서 남아 있던 번호.
그럼 미미양이 사랑해마지 않는 007은 어떤 남자인가.
우선 007은 만둣국, 청국장, 라면, 감자탕을 먹는다. 그리고 TV로 축구와 코메디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고, 섹스할 때 애무하는 걸 귀찮아 한다. 잘 때는 코도 골고 입가에 침도 묻힌다.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만 한국적 남성형인 찌질한 007이다. 

주인공들의 면면에서도 보여지듯『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은 본격소설도 장르소설도 아닌 굳이 장르속으로 밀어넣자면 로맨스판타지액션어드벤처쯤 되겠다. 임무를 마친 007의 품에 안겨 오렌지색 열기구를 타는(p.8) 시작이 그러하고 내부 스파이를 잡기 위해 성냥팔이 처녀로 위장하고 성냥갑 모서리에 성냥을 그으면서 주문을 외는(p.205) 소설의 말미가 그러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암호같은 구절을 종종 발견한다. 이를 테면, 미미양이 스파이 테스트를 받기 위해 찾아간 술집의 주인 이름은 강내휘인데 미미양이 술집에서 공짜로 계속 주워먹었던 것이 강냉이다. 또 미미양은 1.5리터 사이다를 한 번에 마시는데 미미양이 첫번째 임무에서 부여받은 가명은 '오란실'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오란C를 연상했는데 오버인가? 어쨌든 이런 식의 언어 유희가 소설 여기저기에 심심찮게 포석처럼 깔려있다. 미미양이 스파이가 되려고 열심히 탐독하는 저서들의 제목들도 마찬가지.『스파이는 페루에 가서 죽다』『너희가 스파이를 믿느냐』『암호 읽어주는 여자』『간첩이 있던 자리』『스파이와의 인터뷰』『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전』... 참고로 나는 이러한 제목들을 작가의 농담으로 그냥 유쾌하게 읽었다. 사실 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로 작가가 소설을 가볍게 썼으리라 짐작되는 혐의가 있긴 하다.

나는 작가 후기나 소설의 말미에 있는(이를 테면 비평에 해당하는) 해설 읽기를 좋아하는데 말하자면 본 메뉴를 잘 먹고 나서 후식을 먹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재미있게 읽고 난 이 소설의 해설은 좀...
해설의 제목은 '남근이여 안녕'인데 최근 몇 년간 출판되는 본격문학의 경향을 '남근(남성성)의 붕괴' '아버지의 부재' '가부장주의 해체'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유행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재미있는 소설'로 읽으면 그만이지 않나 싶다.

다음은 영어 55단어로 쓰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중 하나다.

<침실에서>

"조심해. 그 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다시 들어서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이 총으로 부인을?"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청부업자를 고용해야지."
"나는 어때요?"
그는 씩 웃었다. "순진하긴. 어떤 바보가 여자를 고용하겠나?"
그녀는 총구를 겨누며 입술을 적셨다.
"당신 부인."
  

이 짧은 소설을 읽고 현대 가족사회의 붕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부부의 소통의 단절, 총기소유 허가가 낳은 비극, 남근의 아이러니... 등등을 떠올려야 한다면 즐거워야 할 독서가 얼마나 피곤해지겠는가. 이렇듯 원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과잉해석은 늘 넘쳐난다.

결론은『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은 재미있고 가벼운 소설이다. 재미있는 소설은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나는 이 소설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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