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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있습니다
한때 내겐,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인 친구, 말하자면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다.
언어가 통하는 것과 정서의 뿌리가 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탓에 그 친구와 나는 매우 친한 것 같기도 하고, 좀 친한 것 같기도 한 그런 애매모호한 사이였는데 녀석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어느 날 저녁, 진지한 얼굴로 나한테 말했다. 자기와 Best friend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 funny 하거나 smart 하거나, 중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야 하는데 내가 그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거다. 즉 내가 녀석의 Best friend인데 이유는 내가 매우 'funny'해서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smart로 해주지-)
사실 '영리하거나 재미있거나'는 친구보다는 책을 고르는데 더 유용한 사항이다.
그리고『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이 두 조건의 중간쯤에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 소설의 제목이 왜『시간 여행자의 아내』인가 알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은 헨리와 클레어 두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 클레어가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보여진다. 다음은 책을 읽다가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기어이 눈물이 나와 버린 장면이다.
아이가 선생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 바람에 나도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내 딸의 얼굴을 보고 있다. 바로 옆 전시관에 서 있던 나는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고, 아이도 나를 보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작은 접이식 의자를 쓰러뜨리며 일어나 나에게 달려온다. 영문도 알아차리기 전에 나는 무릎을 꿇고 앨바를 내 품에 꼭 안고 있고 아이는 몇 번이고 나에게 '아빠'라고 속삭인다.
- p.144, 같은 제목 2권
이후 눈물은 시시때때로 나왔는데 즐겁고 재미있었던 1권에 비해 작가의 묘사와 서술이 두드러지는 2권은 클레어에게 감정이 제대로 몰입이 되게 한다. 아이는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다. 새롭게 생성된 삶과 그 속에 깃든 새로운 미래의 희망만으로도 아이란 그 자체로 축복이 가득한 존재다. 그러니 평생을 서로 사랑하고, 기적에 다름아닌 아름다운 아이를 가진 헨리와 클레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삶의 시계가 43년이면 긴 걸까, 짧은 걸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와 헨리의 하루는 같지 않다. 그러나 ('시간일탈장애'로 불리는)시간여행을 해야 하는 헨리에게 43년은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던 그의 말처럼 짧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 잠깐 등장하는 '원숭이 손' 일화가 주는 교훈처럼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뭔가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헨리와 클레어가 행복한 연인이었으며 그들 앞에 어김없이 찾아온 이별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를 향한 조그만 투정은 있다. 헨리는 왜 미래의 클레어 앞에 좀 더 자주 나타나 주지 않았을까. 클레어라면 행복한 기억을 좀 더 많이 가질 자격이 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운명이 왜 헨리를 클레어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인지 수긍하게 된다. 클레어야말로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는 용감하고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