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 한 신앙이 돈독한 영주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파수병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홍수가 났다고 보고했다. 그 영주는 얼른 성당으로 가서 신에게 구원을 빌었다. 곧 물은 성당계단까지 밀려 왔다.
그때였다. 한 농노가 조그만 나뭇배를 저어오며 영주에게 타라고 재촉했다. 영주는 말했다. "고맙지만 괜찮네. 나는 신을 믿고 또한 정의를 믿네. 신이 나를 구원해 줄걸세." 그러는 사이 물은 점점 차올라 왔고 영주는 설교단 위로 몸을 옮겼다.
이때 갑자기 모터 보트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영주님, 어서 뛰어 오르세요." 그러나 고결한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말게. 난 신을 믿네. 내게 시끄러운 기계 따윈 필요치 않아." 마침내 물은 성당 전체를 삼켜버렸다.
영주가 가까스로 성당 꼭대기의 첨탑 하나를 거머쥐었을 때 세찬 바람에 물살이 갈라지더니 머리 위로 헬리콥터 한 대가 나타났다. 조종사가 외쳤다. "영주님, 제발 이 줄사다리를 잡고 올라오십시오." 영주는 외쳤다. "걱정말게. 난 아직도 신을 믿네. 그분이 나를 구해 주실 거야." 얼마 후 물은 불어나 영주는 익사했다.
영주는 천국에서 신을 만났다(그는 착한 영주였던 모양이다.) 영주는 항의했다. "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일생 동안 숭배했습니다. 성직자들의 말씀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신을 의심하여 기계에 의지할 때에도 저는 끝까지 당신의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익사시키셨나이까?" 신이 되받았다. "이 멍청아! 너에게 나뭇배, 모터 보트, 헬리콥터를 보내 준 사람이 대체 누구라고 넌 생각하느냐?" - p.172,「격분한 현자 카를 마르크스」
사실, 나는 인용한 문장, '신앙심 깊은 영주' 에피소드를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도, 다른 목적으로 끌어다 인용하곤 한다.
지금도 심심하면 가끔 아무 챕터나 펼쳐서 읽는 토드 부크홀츠의『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학부생 때 리포트를 쓸 때 참고하려고 읽었던 책으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비유와 만담등을 섞어가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경제(사)학 분야의 교양 입문서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이 부문에 신간이 나오면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게 있는데, 읽어야 할 책 목록의 상위에 늘 올라가 있는 마르크스의『자본론』은 그의 유물론의 핵심 내용인 '잉여 가치'를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안 읽는다기보다는 못 읽고 있는 고전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K.마르크스 역시 생전 그의 개인적인 행적을 보면 "아니, 이런 인물이 경제사적, 철학사적 분야에 그토록 크고 방대한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놀라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역사는 인간을 심판하지 않고 그 인간의 업적을 심판하는 너그러운 잣대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건, 4대 성인에서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재능인데 마르크스 역시 그 재능이 있었으니 타고난 달변, 문장력, 그것을 이용한 대중적 설득력이 바로 그 것이다.
히틀러 얘기가 나온 김에, 언젠가 M군과 "지구에 멸망이 온다면 어떤 형태로 올까?" 라는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종교 분쟁이 원인이 되지 않을까" 라고 했고, M군은 "어설픈 영웅 한 사람 때문일 것 같다" 고 했다. 생각해보면 꽤 타당성이 있는 숫자다. '1'이라는 숫자 말이다.
*『자본론』을 읽기 전, 가볍게 읽기 좋은 몇 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