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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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 p.254 

작년 여름호부터였던가,『엄마를 부탁해』가 창비 계간지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연재이긴 하나 그것이 우리 집에 처음 등장한 신경숙의 글이었다. 첫 회 앞 부분을 읽다가 곧 흥미를 잃은 것은 아마 인칭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취향이 아니야'라고 내던졌던 소설을 (이번엔 완성된 한 권의 책이지만) 주문한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까. 이쯤되면 인연이 없는 게 아니라 인연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신경숙은, 나하곤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작가였다. 어디까지나 내 의지적인 문제인데 내가 없는 동안 내 책장을 차지한 그녀의 책들은 아직도 읽지 않은 채 그대로 꽂혀 있고, 지금까지 출간된 그녀의 소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했을『엄마를 부탁해』도 딱히 읽어야지 라거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신작 베스트셀러를 주문한 것은 몇 가지 우연적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인데 과정이야 어떻든 소설을 읽고 난 감상은, 소설가 김연수의 말을 빌려, "당장 서점에 가서 이 소설을 사서 읽으세요" 

이 땅의 모든 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이 땅의 남편들, 아들들에게 무조건 읽히고 싶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인칭은 '너' '당신' '그' '나' 로 이동하고 그래서 읽는 동안 나는 '너'가 되었다가 '당신'이 되었다가 때로는 관찰하고 때로는 화자가 되어 실종된 엄마의 족적을 따라 간다.
누구의 말처럼 소설을 읽다가 '펑펑' 우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내가 아직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해서가 아닌가 짐작한다. '펑펑'은 아니지만 내가 결국 울음을 터뜨린 것은 3장을 읽던 중 엄마의 상처와 마주쳤을 때였다. 우리는 '엄마'의 역할을 벗어난 '엄마'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누군가의 딸로 태어난 엄마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아버지는 약주 한 잔 하시면 남매 중 그나마 싹싹하고 만만한 나를 붙들고 곧잘 옛날 얘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나 어렸을 적에' 류의 얘기를 좋아하는 나는 하도 들어서 대개가 거기서 거기인, 벌써 몇 번째 듣는 아버지의 그 얘기들이 늘 들어도 늘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아버지가 들려준 얘기는 다른 날 들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아버지가 자란 곳은 그 시절엔 흔했던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모두가 잠드는 밤이 되면 달과 별이 세상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 되는, 한밤중에 잠에서 깬 아이들이 어두운 마당을 가로질러 외따로 있는 짚으로 엮은 캄캄한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서워 배를 움켜 쥐고 끙끙 참는 그런 시골이었다.
그날은 해가 빨리 져서 저녁도 함께 짧아지는 어느 겨울밤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유독 아버지만 잠을 못자고 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고 한다. 겨울 초입이라 바람이 많이 불 때였는데 마당에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꼭 산에서 내려온 여우나 멧돼지 같은 야생 짐승이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더라는 것이다. 참다 참다 결국 무서웠던 아버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깨웠다. 왜 그러느냐는 할머니에게 아버지가 마당에 뭔가가 있다고 하자 할머니가 낙엽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는 소리라고 안심시켜 주셨다고 한다.
"그때 아빠는 몇 살이었는데요?" 내가 물으니 아버지는 "다섯 살인가 여섯 살쯤 됐을 거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때 아버지한테도 다섯 살, 여섯 살이 있었구나 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인식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늘 아버지였고 엄마는 늘 엄마였다. 우리 아버지도 나처럼 아이였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 낙엽 구르는 소리가 무서워서 할머니를 깨우기도 하셨다는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던 것이다. 그 때는.

책을 읽은 다음 날, 마침 귀국 사흘 만에 딸을 내팽개치고 휘리릭 남쪽으로 떠났던 엄마가 이모와 함께 올라오셨다. 나는 엄마를 붙들고 종일 책 얘기를 했다. 엄마, 내가 어제 책을 한 권 읽었는데요, 엄마에 관한 내용인데…… (쫑알쫑알)

내가 응석부리고, 나의 응석을 받아 줄 엄마가 내 옆에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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