슌타로의 시집 『이십 억 광년의 고독』은 인터뷰 한 편과 산문도 세 편 실었다. 이 시집은 통쇄 10쇄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나는 시인과 시인의 시집과 이제 처음 안면을 텄다는 사실이다.
시를 번역하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詩』다. 시를 번역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다. 같은 단어지만, 품은 뜻은 미묘하게 다른 『시』와 <시> 사이에서, 모국어에서 떨어져 자립하려는 시 작품은 괴로워하고 있다.
p.5
'詩'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새삼 '시'에 대해 생각한다.
한 걸음 멈추고, 다시 한 걸음 멈추고, 시인의 언어와 교감한다.
나는 활자와 언어에 민감한 작가를 좋아한다. 그런 작가는 글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다. 글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읊어주는 미묘하고 섬세한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돌 하나를 놓는 마음, 마음이 떠난 자리에 사무치는 슬픔. 그 슬픔이 자박자박 마음을 밟으며 걸어들어오는 순간 시인의 슬픔은 독자의 슬픔이 된다.
공감하는 언어. 그것이 시인의 말글이다.
인간이 문자로 지어낼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순간은 '시詩'가 아닐까, 그런 생각.
보드라운 진흙이 먼저 내 입술에, 다음에는 점점 큰 흙덩이가 내 두 다리 사이에 내 배 위에. 둥지가 무너져버린 개미 한 마리 순간 묶여 있는 내 감은 눈 위를 기어간다.
p.68 '빌리 더 키드'
산문시 '빌리 더 키드'에 이르렀을 때 슌타로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기시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았다. 바로 앨런 긴즈버그다. 'Howl(울부짖음)'이 아니라 '한 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고 낭독하던 영화 『킬링 유어 달링』의 그 앨런 긴즈버그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시인이 부르는 '사랑'이다. 이 어르신은 특히 내로남불하는 불륜詩가 좋다. 불륜도 싫고 불륜 드라마도 불륜 소설도 싫은데 불륜 시는 좋으니 동그란네모인가 싶지만... 어쩌라고, 좋은데...
소설은 그렇지 않은데 마음에 드는 시집을 만나면 여러 권 사서 쟁이고 싶다. 침실에, 거실 소파에, 식탁에, 서재 책상 위에, 차 글로브박스에 한 권씩 던져 놓고 눈에 띌 때마다 읽는 거지.
사랑에 빠진 남자
연인이 얄궂게 웃는 얼굴의 뜻을 읽어낼 수 없어서
그는 연애론을 읽는다
펼쳐든 페이지 위의 사랑은
향내도 감촉도 없지만
의미들로 넘쳐난다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