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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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는 일찍 죽었다. 물론 그의 시는 훌륭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젊은 기형도에 대한 시기심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봄날이 가고 일상의 권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욱 그에게 몰두할 것이다. 남들은 젠더시스템+연령주의 사회에서 이미 아웃된 나의 남근 선망(penis envy) 혹은 히스테리라고 진단하겠지만, 이유야 어떻든 간에,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기형도 같은 '젊은' '남성'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다.

중산층(비장애인, 좋은 학벌 등등……) 남성에 한정되겠지만 남성이고 젊다는 것은 계급과 자원 그 이상의 것이다. 그들은 문화적, 심리적 차원에서 사람들이 욕망하는 그 무엇을 노력 없이 가진 자들이다. 그들의 자원이 자원일 수 있는 것은 성별 사회, 연령주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그들의 묘한 우월감, 거들먹거림, 나르시시즘, 삶에 시달리지 않은 근육, 고통이나 죽음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쿨'한 척에 나는 욕지기를 느꼈다.


pp.142-143,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쌤'에게 누군가는 질문을 해야 한다. "기형도를 아세요?"

그리고 '정희진쌤'은 이에 대답해야 한다.


알라딘서재에 간간히 등장하는 '정희진쌤'이 궁금했다. 그리하여 그의 책 중 진입장벽이 낮을 것 같아서 고른 『혼자서 본 영화』를 읽는 동안 '젠더가 생계수단'이라고 말하는 저자에게 먹고사니즘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쯤일까, 내내 궁금했다. 


나의 주장이 곧 정의라는 태도는 위험하다. 무덤 속에서 머리채 잡혀 끌려나온 시인 기형도에게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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