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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원작소설. 감성적이지만 감상적이지 않은 이런 연애소설은 오랜만이다. 단편소설의 끝을 완전히 비튼 영화 각색자는 마술을 부렸다. 영화와 책 둘 중 어느 하나모자란 것이 없는 뛰어난 작품들이다.
"아냐.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좀 나빠졌어."
츠네오는 웃으면서 조제에게 키스했다. 그런 조제의 모습을 보니, 외출하는 것보다 한 번 더 안고 싶은 욕구가 미칠 듯이 끓어올랐다. 가느다란 인형 같은 다리가 왜 그토록 에로틱한지. 두 다리 사이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바닥 모를 깊은 함정, 악어의 입 같은 올가미. 츠네오는 거기에 사로잡혀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그러나 그가 뒤축을 눌러 신은 스니커즈를 벗어던지고 젊은 남자의 땀 냄새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오면, 현관문을 닫고 고리를 걸고, 드디어 먹잇감을 찾았다고 외치며 마구 웃어젖히고 싶은 기분에 빠져든다.
-사랑의 관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불안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불안 따위는 사실 별거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이다. 급격한 감정 변화가 가장 두려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 후회할 걸 알고도 뛰어들고야 마는 그 착란의 순간. 이번만은 다르겠지, 라고 생각해서가 아냐. 이건 모두, 이번에야말로, 라는 믿음 때문이고, 혹은 희망을 이미 버렸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30년 가까이 살면서, 죽는 날까지 취한 모습 따위는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 몇명의 코가 비뚤어지도록 취한 모습을 최근 몇달 사이에 보게 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팔다리를 흔들거리며 걷는 술 취한 남자들이 싫은 것 보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 이제 정말 시작인가보다. 이 인생, 이제 진짜 시작하는 건가보다.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