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살개 아버지 하지홍
허은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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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여러 동물들 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친근하고 교감을 많이 나누는 동물이다. 설화나 전설뿐만 아니라  동물을 소재로 하는 동화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 <안내견 탄실이>나 <돌아온 진돗개 백구>뿐만 아니라 서양 동화인 <까보 까보슈>등 개를 소재로 한 동화는 참 많다. 동화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각 가정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동물들 중에서도 개는 단연 으뜸일 것이다. 나도 지금은 개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 개에 대한 추억은 아직까지 가슴을 훈훈하게 해 준다.

 

이 책은 삽사리를 사랑한 한 아저씨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농장에서 삽사리와 함께 뛰놀았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 유전공학박사가 되어 광합성세균에 대한 연구를 할 목적으로 고국에 돌아왔지만, 농장에서 방치되어 있는 삽사리를 보고 마음을 바꾼다. 물론 처음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으로 시작하였지만 삽사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그의 욕망은 순수한 열정으로 바뀐다. 오해도 받고, 누명도 쓰고, 물려받은 땅도 개 사료로 날리기도 하였지만 그의 순수한 열정은 결국 삽사리를 천연기념물368호로 지정되게 만들었고, 황삽사리 한 쌍은 청와대 앞마당에서 뛰놀게 만들기까지 한 것이다.

 

언젠가(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에 삽사리 한 쌍이 뛰놀고 있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본 적이 있다.(그 후인지, 그 전인지 진돗개 한 쌍도 뛰놀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 때는 다만 참 예쁘다, 나도 저런 삽살개 한 마리쯤 키웠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삽살개가 감히(!) 청와대 앞마당에서 뛰어 놀게 되기까지는 한 사람의 숭고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고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진돗개와 더불어 삽살개는 우리 토종개이고 둘 다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물론 진돗개가 더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둘 다 주인에 관한 충성심과 개의 본연에 대한 역할은 잡종 개와는 확연히 다르다. 삽살개라는 이름에는 ‘귀신을 쫓는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삽살개는 풍기는 외모에서 감히 귀신조차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보이고 있다. (사실,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이라는 표현보다는 꼭 안아주고 싶다는 표현이 더 적격일 수도 있다^^) 이제는 삽살개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지홍씨는 삽살개가 치료견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 무척이나 뿌듯하다고 한다. 자폐증 환자 아이가 삽살개와 함께 지내면서 먼저 개에게 마음을 열고, 서서히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면서 조금씩 치료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삽살개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내용뿐만 아니라 그림에 있다. 마치 실제 사진을 특수 처리한 것 같은 정밀하고 정감 가는 그림은 한참 그림에 시선을 빼앗게 만든다. 작가가 직접 그림까지 그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작은 삽살개 한 마리, 혹은 두 마리가 각 쳅터마다 한 번씩 단락 위에 앉아 있거나 걸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예뻐서 책을 읽을 생각은 안하고 그림만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동물들 중에서도 특히 개를 좋아한다. 생일 선물이나, 어린이날 선물로 개를 선물로 받고 싶어할 정도이다. 개를 소재로 한 책이라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할 것 같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꿈을 이룰 수 있고, 그 꿈을 이루기까지는 모진 고난이나 위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삽살개와 하지홍 아저씨에 대해서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장 조카에게 이 책부터 선물해 주어야겠다.(개를 사 줄 수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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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공주
카렌 두베 지음, 안성찬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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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한 옛날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어요. 가난하고도 추운 북쪽 나라의 공주라 지참금은 별로 없지만, 공주는 대신 ‘고운 금빛 머리에, 백합처럼 희고 빛나는 피부, 제비꽃 같이 파랗고 갸름한 눈, 비단처럼 부드러운 눈썹...’등 셀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요. .....

 

동화처럼 이렇게 시작되니, 당연히 늠름한 왕자도 나와야 될 것이고, 아름다운 공주를 사이에 두고 연적도 있어야 삼박자가 맞는다. 물론 그렇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형적인 동화가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쓴 판타지 소설이니 도식적인 동화의 구조에서는 벗어나 있다.

 

 우선 공주나 왕자는 동화 속에 나오는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성적인 캐릭터를 지녔다. 다만 신분이 공주와 왕자일 뿐이다. 그리고 왕자의 연적 또한 악인이 아닌 공주를 사랑하는 그저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흔히 동화에 용이나 마법사가 등장하면 무시무시한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용은 덩치만 컸지 공주를 사랑하는(인간을 따르는) 애완용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마법사 역시 특별한 마법도 부릴 줄 모른다. 오히려 때론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무력한 인물이고, 결국 자기가 애지중지 키워왔던 용의 실수로 죽음을 맞이한다.

 

독자는 아름답긴 하지만 오만과 고집과 명예만을 중요시하는 공주에게 때론 답답함을 느낀다. 반면 왕자는 납치한 공주를 지칠 줄 모르고 헌신적으로 사랑하지만 늘 냉랭한 공주의 반응에 처량하기까지 하다. 빼어난 외모와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과 부유한 나라의 왕자라는 조건도 공주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으니 여리고 착한 왕자는 마음에 상처만 입을 뿐이다. 납치된 공주를 찾아 떠나는 기사 브레두르의 모습은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 사랑은 그렇게 무모하고 맹목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공주를 향한 왕자와 기사의 사랑은 그토록 맹목적이고 처절하기까지 하니...

 

그러나 이 책은 사랑 때문에 가슴이 저리고 아파 오는 것은 아니다. 470쪽에 이르는 다소 두꺼운 분량의 책이긴 했어도 읽는 내내 유쾌했다. 그것은 감각적인 문체와, 세련된 문장, 흥미로운 소재 때문일 수도 있다. 바다에 출몰하는 끔찍한 괴물, 사랑스런 용, 술탄의 딸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금남의 섬 등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느새 책 한 권을 다 읽게 만든다.

 

때로는 해피엔딩의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살이가 퍽퍽하고, 사회의 어두운 소식을 접할 때면 더욱 그렇다. 삶의 도피처 마냥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를 읽거나 듣고, 잠시 세상살이에서 받는 피로감을 씻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소설이다. 책을 덮고 나선 나도 잠시 유쾌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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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설탕 두 조각 소년한길 동화 2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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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마법처럼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든, 어른을 대상을 하는 소설이든 그가 말하는 판타지에는 마법 이야기가 없더라도 마법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 세계는 심오한 진리의 세계일 수도 있고,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 있는 모험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웃음은 TV프로의 개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웃고 나서도 마음 속에는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 책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수준의 책이긴 하지만,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특히 교사나 부모들도 관심을 갖고 읽어보아야 될 책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이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편의와 고정관념 같은 것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들은 렝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도 렝켄처럼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럼에도 왠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어린이들은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거나 아님, 지나친 도덕심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감히 어떻게 부모님이 자기 말을 안 들어 줬다고 마법에 걸리게 해서 키를 줄일 수 있어!!라는 효심(!)^^

 

요정이 살고 있는 빗물 거리나 바람의 거리, 혹은 요정의 12개의 손가락이나 12시만을 가리키고 있는 벽시계는 뭔가 음산한 듯 하지만, 그 요정은 얼마나 어린아이들에게 친근한가? 렝켄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요정. 그래서 렝켄을 마법처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아이들이 어른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나이가 많다거나 삶을 많이 살아 지혜롭다던가 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어른을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큰 키나, 자기보다 힘이 센 것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기준에서 어른과 아이를 가장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부모를 혼내게(?)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도 오직 부모의 키를 줄어들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것은 작가 미하엘 엔데가 누구보다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렝켄은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의 키가 줄어들 때마다 통쾌했다.


렝켄은 꾹 참고 있던 웃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소파 위를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렝켄은 너무 웃겨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p24, 25)


키가 줄어든 어른은 더 이상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렝켄은 계속 부모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었고, 그와 비례해서 부모의 키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렝켄은 어린 아이일 수밖에 없다. 부모의 키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더 이상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데도 기뻐할 수 없다. 비로소 세상은 자기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되지만 렝켄은 그 모험을 감행한다. 너무 교훈적이라고 보는가? ‘어린이는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 라는... 그렇지 않다. 작가는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 후 렝켄은 부모님 말씀을, 부모님은 렝켄의 말을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그렇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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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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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으셨나요?


그럼, 이제 그 후편인 「찰리와 거대한 유리엘리베이터」를 읽어보실 차례예요. 후편이 있는 줄 이제야 알고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답니다. 여기서도 로알드 달의 상상을 초월한 그 상상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어요. 그러나 원래 속편이 전편보다 못하다는 속설처럼 전편에 비해선 조금 점수를 낮게 주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게 아닌가 봐요. 전편보다 후편이 더 재미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지요. 아마도 그건 분명 어른인 제 시각과 아이들과의 시각 차이겠지요. 그리고 이미 전 로알드 달의 기발한 상상력에 면역이 되어서 전편에 비해 그리 놀라지 않는 담력까지 생겼는지도 모르고요^^

 

조카에게 물었어요. 왜 후편이 더 재미있어? 어떤 점이 더 재미있는데? 그러자 극악무도 혹성의 왕꿈틀이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특이한 생김새나 마음대로 몸을 조절하여 글자도 만들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찰리의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꽁꽁 묶어 둘 수 있는 힘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 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간 여행이 더 재미있었어요. 무사히 지구에 귀환하여 윙카의 공장에 도착한 찰리의 할머니들이나 할아버지가 젊어지는 약을 너무 먹어서 갓난 아기가 되잖아요. 아마 저도 조금 더 젊어지고 싶었나봐요.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답니다. 만일 정말로 젊어지는 약이 있어서 원하는 대로 좀더 젊은 어떤 시기로 갈 수 있다면 몇 살로 갈까? 하고요. 그런데, 결론은 지금의 이 나이가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알았어요. 찰리 엄마가 찰리의 외할머니의 원래의 모습(즉, 78살)으로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했듯이 말이죠. 현재의 제 나이란 그동안 충실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지금의 나를 있게끔 해주는 시간의 누적물일 테니까요.

 

이 책은 전편에 비해 더 기발하고, 더 풍자적이에요. 전편의 끝 장면에선 거대한 유리엘리베이터를 타고 찰리의 가족이 윙카의 공장으로 돌아가게 되죠. 그런데 이 책의 시작은 그 엘리베이터가 윙카의 공장으로 가려던 중, 그만 실수로 지구의 궤도를 이탈하여 우주에 떠 있게 됩니다. 거기서 미국의 우주선과 맞붙게 되고, 지구인의 오해를 받아 잠시 외계인이 되기도 하지요.

 

윙카씨의 입담과 재치는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미국 대통령을 향한 풍자예요. 세계를 좌우하는 미국의 대통령을 우스개로 만드는데, 읽는 저로서도 얼마나 재미있고 통쾌한지, 그 대통령의 이름을 부시라고 지으면 더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뭐 사실, 부시야말로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아니던가요?)

 

이 책에 나오는 대통령은 명색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데 아직도 유모에 의해서 그의 정책이 왔다갔다하니 얼마나 우습겠어요. 아이들도 이런 부분이 재미있었나 봐요. 하긴 이젠 대통령이 권위를 내세울 시대는 아니지요. 더군다나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대통령이 더 개그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길게 쓰지는 않을게요. 직접 읽어보세요. 한참 웃다가 보면 어느새 다 읽게 되는 것을 발견하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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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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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사는 게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일 게다. 그럼 인간다운 삶은 어떤 삶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소시민들의 간절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곧, 작가 공선옥이 추구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난과 빈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가난은 그래도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도대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가난은 가난해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로 보는 것이다. 가난은 사라지고 빈곤만 남은 시대. 예전의 가난은 모두가 가난해서 서로 정을 나누며 함께 살았지만, 지금의 빈곤은 뿔뿔이 흩어져 홀로 가난한 삶, 그래서 언뜻 보면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부자의 행복은 보호받지만 가난한 자의 행복은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세상. 우리는 지금 이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시선이 낮은 곳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 그 세계가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지만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작가는 이토록 냉혹한 현실을 이야기 하지만, 그 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알고 있다. 순천 KBS에서 주최한 청소년 백일장 심사를 할 때다. 작가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세상은 사막 같지만 아직 아이들에겐 순수함과 특유의 맑은 마음이 있다는 것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거리의 아이가 되어버린 글 속의 아이는 어느 날 PC방에서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낸다.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을 받은 아이는 비록 현재는 거리의 아이로 지내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함부로 거리에 내놓지 않을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글이다. 아직은 우리 세상에도 그런 스승이 있다는 것에 글을 읽는 나로서도 가슴이 짠해져 왔다.

 

이 시대의 부조리와 폭력에 의한 무심함과 비정을 외면하지 못하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다시 제대로 살아보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하지만 작가의 바람인 모두가(그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조차)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작가 공선옥은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우리 사회의 치부들을 낱낱이 들이대며 찔러댄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일이 아닌데도 너무 아프다. 아니다. 직접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어떤 것은 이 사회의 부조리에 공헌한 것도 있을 것이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무심함은 그 어떤 폭력보다도 잔인한 것이지 않던가? 이기주의 모습은 또 어떤가? 가끔은 외면해 버리고 싶은, 비루하고 남루한 모습들...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 일을 공선옥은 하고 있다. 왜? 그것은 곧 자신의 일이니까.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또한 살고 있으니까.

 

여담이지만 공선옥의 책은 될 수 있는 대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보다는 한 권이라도 더 팔아주어야 될 것 같다. 그래야 혼자서 세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계속 이어져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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