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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철학적인 하루
피에르 이브 부르딜 지음, 강주헌 옮김 / 소학사(사피엔티아)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논술이 뜬다고 한다. 논술학원과 논술과 관련한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논술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논술과 관련되어서 늘 함께 거론되는 것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술 시험과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프랑스에선 바칼로레아(우리의 논술 시험과 비슷)철학 시험이 있는 날은 전 국민의 축제가 된다고 하니 먼저 국민의 의식부터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2주 이상 계속되는 시험은 항상 철학으로 시작되고 시험이 끝나는 날, 프랑스의 전 지상파 방송에서는 바칼로레아 시험의 주제에 대해서 각계 인사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고, 국민들은 가정에서든, 까페이든 하물며 술집에서조차 그 주제에 대해 공개토론을 한다고 하니, 프랑스 국민들은 그야말로 토론에 굶주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의 교육 인프라가 그만큼 탄탄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프랑스는 불어 수업의 경우 교과서가 아닌 문학책들을 돌아가며 읽고 요약, 비판하는 것이 주가 된다고 한다. 문학과 철학의 경계가 없이 공부를 하기 때문에 문학 실력이 좋은 학생은 당연히 철학 시험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 그것은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처럼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문학을 겸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은 그의 철학책 <시지프스 신화>를 쉽게 해석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수업을 보면 인문계의 경우, 철학 수업이 일주일에 9시간이나 된다고 한다. 프랑스 인들이 왜 그토록 바칼로레아에 흥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인들은 배우자들의 조건 중에 영리함과 교양이 필수 조건으로 꼽는다고 하니,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경제력, 외모, 학벌 혹은 착한 남자(착한 여자) 등으로 꼽고 있지 않는가?
내가 구구절절이 프랑스의 철학교육과 바칼로레아에 대해서 쓴 것은 바로 이 책 <아주 철학적인 하루>라는 소설이 이러한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교사가 쓴 소설이다. 필이라는 아이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모든 것이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왜 다른 것일까? 무엇이 다른 것일까?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부터 거리의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 느낌과 생각을 따라 행동한 것이 바로 하루가 걸렸다. 말하자면 270쪽에 달하는 이 소설은 필의 하루를 기록한 책이다.
우리도 어느 날 문득, 삶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사춘기 시절의 어느 날, 생은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너무나 낯설게 다가온다. 문제는 그 다름을 어떻게 소화해 내고, 내 것으로 만드느냐일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그 낯섦과 다름을 시간에 쫓겨 제대로 생각하지도 못한 채,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하는 일상에 매몰되어 그 소중한 감정을 놓쳐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필은 그 낯섦을 하루 종일 생각하고 고민하며 방황을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철학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드디어 필이 철학하기에 들어선 것을 기뻐하며 함께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하면서 그 소중한 생각을 자기 것이 되도록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것은 이 글을 쓴 작가가 한 때 프랑스 철학 교사였고, 실제로 프랑스 교육에선 이러한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도 일주일에 4시간 이상이 철학 수업을 하고 있으니 프랑스 인들의 논리적인 사고와 철학적인 삶은 우리 삶과 많이 대조됨을 볼 수 있다.
주입식 교육만을 강조하고, 오직 중고등학교 때 공부의 목적은 좋은 대학 입학에만 국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이 언제 책을 읽고, 언제 토론을 하며,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대입 논술고사는 석박사 학위 출신이 쓸 수 있는 수준의 문제를 내고 있으니 대입 논술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은 당황하고, 때문에 논술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갓 태어나서 모유나 먹을 아이에게 스테이크를 먹으라는 것과 그리 다를 것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근본적으로는 교육부터 바뀌어야 하고, 또 학생들은 좀더 철학하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철학하기는 생각하기부터이다. 생각하기는 연습이고, 누적된 연습은 습관이 되어서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하고, 삶을 좀 더 풍부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프랑스의 교육이 부러웠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