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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
윌리엄 골딩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 번역된 윌리엄 골딩 소설이 『파리 대왕』과 이 책, 『첨탑』 뿐이라고 하니 이미 난 두 권을 다 읽은 셈이 된다. 『파리 대왕』은 책을 읽은 후에 영화로도 보았기 때문에 이 책 역시 그런 친근한 맘으로 펼쳤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첫 장부터 만만치 않았다. 강력한 스토리의 흡인력을 보여주었던 『파리 대왕』과 달리 이 책은 주인공 조슬린의 의식의 흐름과 내면 세계에 깔려 있는 욕망을 따라가며 읽다 보니 가독성에 한계를 느꼈다.
스토리만 따지자면 이 작품은 아주 간략하다. 영국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직자가 대성당에 첨탑을 건설하는 과정을 서술해 가는 이야기이다. 그 첨탑을 건설하는 것은 그의 생애를 걸만큼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거기엔 주인공 조슬린의 내적 욕망과 연관되어 있어서, 수시로 그의 의식 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았다.
조슬린은 허술한 기초와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사백 피트라는 거대한 높이의 첨탑을 건설하지만 그 첨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희생의 대가인지, 주인공 조슬린의 욕망과는 상관없이 진정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과는 다르게 그 첨탑은 위태롭긴 하여도 건재한다. 바벨탑 역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불경스러운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거기엔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바벨탑은 무너졌다. 신이 될 수 없는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나 첨탑은 허술한 기초 위에서도 기적처럼 서 있다. 독자는 첨탑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슬린은 계시(혹은 환상)를 받고 첨탑을 건설하지만 결국 그 계시라는 것은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대체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알게 된다. 발단 부분에 보면 조슬린의 등에 통증이 온다. 그것은 첨탑을 지으라는 신의 계시로써 등에 천사가 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 가서는 등과 척추에 결핵이 있다는 질병으로 드러난다. 그의 욕망은 질병조차 신의 계시로 둔갑한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때로 무지한 믿음은 착시현상이나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조슬린이 결국 할 수 있는 말이란 “죄를 짓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이다. 죄를 지으면서까지 그의 욕망은 실현시켜야 한다.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이름으로...
조슬린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성직자의 기품을 지닌 인물은 아니다. 인간적인 자신의 모든 욕망을 절제하고 오직 신의 대리인으로써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신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인물로 비쳐진다. 조슬린에게 첨탑이란 욕망의 대체물이다. 그 욕망은 첨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사랑을 기만하고, 인간관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신이 되고 싶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나, 신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첨탑의 조슬린이나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욕망의 포로임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첨탑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인간의 헛되고 무모한 욕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일까?
쉽지 않은 독서였다. 영미 비평가들은 재독 삼독을 해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것이라고 하였다지만, 역시 어려운 독서일 것 같다. 나중에 시간 여유가 있다면 깊이 음미하며 다시 읽고 싶다. 그 때는 조슬린에 대해 다른 해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