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초 신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6년 3월
평점 :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만큼 삶의 웅덩이(혹은 수렁)에 빠질까? 어떤 사람은 수도 없이 빠졌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다섯 손가락도 다 꼽지 않을 만큼 평탄하고 순탄하게 살아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니 중요한 것은 수렁에 빠진 횟수가 아니라 어떻게 그 수렁을 헤쳐 나왔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홀로 버텨내면서 힘들게 헤쳐 나올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주위의 응원과 도움으로 좀더 쉽게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로쿠베처럼... 이 책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을 만한 그림책이지만 어른인 내가 읽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표지 그림엔 갈색 강아지가 눈물을 머금은 듯 위를 쳐다보고 있다. (언뜻 보면 강아지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위로는 찬란하게 빛이 비치고 있다. 첫장을 펴 보면 제목이 쓰여져 있는데 그 밑에는 갈색 항아리 같은 곳 안에 글자만이 있다. 멍멍, 왕왕, 멍멍, 왕왕... 로쿠베의 절망감이 첫장부터 배어져 나온다. 또 한 장을 넘기니 5명의 아이들이 구덩이 속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곤 한마디씩 중얼거린다. 개가 구덩이에 빠지다니 바보라고... 개는 구덩이에 빠지면 안 되나 보다.
그러나 바보라고 중얼거린 아이들은 모두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한 목소리로 “로쿠베 힘내, 로쿠베 힘내”하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힘내라고 외쳐서는 로쿠베를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엄마들을 불러오지만 엄마들도, 골프채를 흔들며 지나가던 아저씨도 모두 무관심하다. 아니, 오히려 사람이 빠진 것이 아니라며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땐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힘내라고 외치며 노래해 주고, 로쿠베가 좋아하는 비누방울 놀이를 해 주는 정도이다. 그러다 칸의 지혜로 로쿠베의 여자 친구를 바구니에 담아 웅덩이 속에 내려보내고 로쿠베와 여자친구 쿠키는 바구니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 책의 상황과 그림의 색상은 전체적으로 어둡지만 내용은 결코 어둡지 않다. 어린 아이 다섯 명이, 절망에 빠져있는 강아지 로쿠베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따뜻하고 훈훈하다. 또 글은 간결하고 운율이 있어 경쾌하다. 마치 시로 된 이야기를 읽는 듯하다.
“큰일났네, 큰일났어”
“와글와글, 시끌시끌”
“어떡해, 어떡해”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살살 살살, 살살 살살”
“아슬아슬, 아슬아슬”
그림도 마음에 든다. 선이 굵은 그림은 아이들의 표정이 잘 살아 있다. 겁먹은 듯한 로쿠베의 눈망울은 로쿠베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자기를 천사 같은 어린아이 다섯 명이 전심으로 구하려고 애쓰고 있으니 로쿠베는 행복하지 않을까?
사족- 쪽수가 나와 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골프채를 들고 있는 아저씨가 나오는 그림에
“한가하게 골프채를 흘들며”라고 쓰여 있다. 다음 인쇄할 때에는 ‘흘들며’가 아니라 ‘흔들며’로 제대로 인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