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 창비아동문고 233
김소연 지음, 장호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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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여자 나이 열 네 살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청소년기가 없는 조선 시대의 여자에게 열 네 살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집가는 일밖에 없다. 물론 가난한 집안의 여식이라면 그 전에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팔리 듯이 시집을 가기도 했을 것이다. 개화기가 되면서 신문물을 접한 집안이라면 그래도 여성들 중에는 신학문을 배우기도 하지만 1910년대에서는 결코 흔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쌍둥이 남동생의 정기를 다 빼앗아 혼자 살아남기라도 하듯 열 네 살의 명혜는 시집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다. 다만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정확히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은 없었지만 구시대의 인습에 갇혀서 살아가기는 싫었다.

아버지 송참판은 대표적인 구시대를 답습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래서 여자가 공부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여자로 태어나 시집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딨냔 말이야, 글쎄?”(p 143)
하며 명혜의 서울 유학을 끝내 막았으며, 엄마 역시 여자로 태어난 것을 늘 한탄하면서도 구시대의 인습을 타파하기보다는 그대로 순응하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본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있는 오빠 명규의 설득으로 드디어 명혜와 여동생 명선은 서울에서 여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입학도 하기 전에, 을사년 이후 서울은 일본인들의 세상이 되어 있어서 명혜조차도 멀쩡하게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명혜는 서서히 민족의식에 대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소심한 것 같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명혜는 여성으로서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처음엔 여성 전문 병원에서 학교 다니면서 일을 도와주게 되었지만 그 일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소명의식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오빠 명규의 독립운동을 지켜보게 되고 자신도 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오빠 명규는 동생이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명혜는 나랏일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냐며 여자이기 전에 조선사람이고 집안이 있기 전에 먼저 나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혜는 단순히 자기 만족을 위해 신학문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명혜는 여성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나라 잃은 백성의 서글픔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3.1운동의 주동자로서 독립운동을 하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된 명규를 보고 명혜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의사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가라고 했던 오빠 명규가 죽게 되자 할 수없이 집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던 명혜에게 이번엔 오히려 엄마가 적극적으로 미국 유학을 돕는다. 명혜의 미국 유학은 결국 엄마의 희망이었고, 그 시대의 여성에게 희망의 증표인 것이다.

이 책 ‘명혜’는 개화기 시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동화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독립 운동만을 강조한 동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성문제를 구심점으로 하여 점차 민족문제로 확산시켜 나가는 꽤 괜찮은 역사동화이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라면 개화기 시대의 상황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명혜의 삶에 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까?' 한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도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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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스 극장의 연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
자닌 테송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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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들어간 책은(영화도 마찬가지로) 뒷 내용을 알고 읽으면 묘미가 반감될 수 있다. 그러나 한번만 읽거나 본다면 그 의미를 전부 알기 힘들다. 그래서 두 번 보거나 읽어야 앞부분에 깔아놓은 복선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이 책이 반전의 이야기라는 사실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반전의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는 항상 긴장하며 읽는다. 이번엔 속지 않고 제대로 복선을 파악하며 읽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 머리의 한계인지 난 매번 속고 다시 읽거나 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에 ‘식스 센스’라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해서(물론 그 영화 이 후에는 뛰어난 반전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단한 반전 영화가 아니었을까?) 내 딴에는 잔뜩 긴장하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반전이 드러날지 보았지만 결코 허를 찌를 수밖에 없었던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속임수에 난 다시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두 번 보았다. 그때서야 곳곳에 숨겨 있는 복선들을 음미하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일본 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고 한참을 멍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반전은 너무나 의외여서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책 읽는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이 책 『뤽스 극장의 연인』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를 해 주고 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뒷부분의 옮긴이의 글을 읽기 전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소설은 상처받은 젊은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뤽스 극장은 누가 봐도 한물간 영화관으로 평소에는 ‘저급 영화’라고 무시하는 상업 영화들을 상영하지만 매주 수요일만은 ‘진정한 영화’의 영광을 기리는데 하루를 바치는 극장이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여섯시와 아홉시면 추억을 만나러 온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낡아빠진 벨벳 의자에 기댄 채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절반쯤 채워진다.

스물 세 살의 피아니스트 마티외라는 남자와 열 아홉 살의 영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마린이 매주 수요일 이 영화관을 찾는다. 마린은 편안하고 다정한 목소리 마티외에게, 마티외는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마린에게 호감을 갖는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점차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한다. 서로의 깊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안다면 언젠가는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못하면서도, 늘 안타까움으로 서로를 그리워 하고 있다.

두 연인의 밀고 당기는 속마음은 독자를 점점 더 안타깝고도 애절하게 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그 상처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도대체 어떤 상처가 있길래 저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복선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들의 상처가 무엇인지에만 골몰한 채 읽어나가다가 뒷부분에 가서 아!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가슴이 아퍼왔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따뜻한 작가의 시선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옮긴이의 글을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곳곳에 깔려 있는 복선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는 첫 번째 그들의 상처에 골몰하면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한다.

「연인들」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날, 그들은 영화의 내레이션에 대해서 말한다.
-그녀는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마린은 생각한다. ‘그래 다른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나를 짓누르는 이 무게를 견디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이 남자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그의 손을 내 목에 갖다 댄다면...’

-사랑은 단 한번의 눈길로도 생겨날 수 있다 -
 마티외는 ‘사랑이 생겨나는 데는 눈길조차도 필요 없어. 시인 아주머니 뭘 모르는군요...’라고 중얼거리는 한편 마린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거야 쉽지, 하지만 사랑 받을 수 없을 땐...’ 하며 목이 메인다.(p53)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었을 때의 놀람,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더듬으며 서로를 알아갈 때의 따뜻함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동병상련을 이들만큼 잘 알 수 있을까? 106쪽 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따뜻함의 분량은 그 어떤 두꺼운 책보다 결코 덜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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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3월... 이제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나면 1년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한 해가 되겠죠. 그러나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책들을 읽다 보면 우리 어린이들도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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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두꺼비
러셀 에릭슨 지음, 김종도 그림 / 사계절 / 1997년 12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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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조지의 생일인 화요일이 되면, 워튼 두꺼비는 조지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불장군이었던 조지는 워튼과 함께 지내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날 워튼을 잡아먹는 대신에 워튼이 좋아하는 노간주나무 열매 차를 준비하지만 조지의 마음을 모르는 워튼은 탈출을 시도하는데... 2,3학년 정도의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으로 서로 맞지 않는 친구와 어떻게 친구가 되어 가는지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참 따뜻한 동화이다.
짜장 짬뽕 탕수육
김영주 지음, 고경숙 그림 / 재미마주 / 1999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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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장미반점>아들인 종민이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오지만 도시의 학교는 낯설기만 하다. 아이들은 왕, 거지, 신하라는 놀이로 서열을 만들어 종민이를 괴롭힌다. 그러나 종민이는 왕 거지 신하 대신,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이름 붙여 왕따의 위기를 면하고, 아이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종민이의 재치와 기지는 그동안의 서열도 사라지게 한다. 친구나 선생님의 도움 없이 능동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종민이의 모습은 기특하고 예쁘다.
샬롯의 거미줄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06년 03월 01일에 저장
구판절판
윌버라는 돼지와 샬롯이라는 거미의 아름다운 우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돼지 윌버가 농장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샬롯은 온갖 정성을 기울여 윌버를 가장 빛나는 돼지로 만들어 준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샬롯의 헌신적인 우정은 감탄과 찬사를 내뱉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에 대한 답례로 윌버는 샬롯이 죽은 뒤에 남긴 자손을 돌보게 된다. 생각이 깊은 샬롯과 귀여운 윌버의 아름다운 우정이 오래 오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준다.
깡딱지
강무홍 지음, 이광익 그림 / 사계절 / 2001년 9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06년 03월 01일에 저장
절판

처지가 다르고 환경도 다른 인우, 한수, 대희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되는 이야기이다. 학년초에 아이들이 느끼는 미세한 감정인 설레임 긴장감이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졌다.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으로, 아이들 나름대로 친구와의 관계를 맺어 가는 과정이 정교하게 드러나 있다. 수채화 물감과 파스텔을 사용하여 그려진 그림은 아이들의 내면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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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도토리 쪽빛그림책 1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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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인류보다 더 오랜 세월 지구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며 살았다. 수 천년 간 자연과 인간은 하나였고, 공생하였으나 불과 백 여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인간은 개척이나 정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난개발을 시작했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친구가 아니라 도구였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무정함과 비정함을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초의 인간처럼 인간과 자연과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서로의 필요를 알고, 서로 사랑하는 도토리 토리와 어린 소년 토우와의 우정을 정감 있게 그린 그림책이다.  

생일날 케이크 속에  콕 박혀 있던 도토리 토리는 코우와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비오는 날에도 함께 나가 놀고, 수영장에도 가고, 함께 달리기 시합도 하면서 둘은 서로의 의미가 되어간다. 그러나 어느 날 코우의 가방에서 떨어져 낙엽 속에 묻히게 된 토리는 코우와 헤어진다. 토리는 코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코우는 엉엉 울며 며칠동안을 찾아 헤맸지만 만나지 못한다.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도 오직 엉덩이에 ‘토리’라고 씌어진 도토리만을 찾는 코우의 모습은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그의 꽃이 된 것’이나,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장미꽃을 연상하게 한다.

 토리 역시 나뭇잎 속에서도 코우를 보고 있지만 코우가 보지 못하자 안타까이 소리지른다. 그렇게 헤어진 채 하루, 한 달, 수년이 흐르게 된다. 물론 이 책은 그림책이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을 글로써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생이던 어린 코우가 초등 학생이 되고, 다시 중고생쯤 되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모습, 그리고 성년이 되어 참나무(토리의 나무) 밑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만 읽으면 안 된다.

 이별에 대한 코우의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토리의 마음도 잘 표현되어 있다. 기다리다 지쳐 결국 긴 잠 속에 빠져 버린 토리. 오랜 시간의 침식을 견뎌 낸 토리는 울창한 참나무가 되었지만 여전히 코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코우를 알아본다. 성년이 된 코우나, 도토리에서 참나무가 된 토리 역시 오랜 시간과 관계없이 서로를 알아보며 웃는다. 그렇게 서로 간절히 원할 때, 잊지 않을 때 시간의 흐름이란, 세월의 변화란 그들에겐 의미가 없다. 코우의 동네에 건물들이 우뚝 우뚝 솟아나고, 자동차가 쌩쌩 달리며 코우 역시 성인이 되었어도 토리에게 코우는 친구이다. 이제 도토리가 아니라 우람한 참나무가 되었어도 코우에게 토리는 여전히 자신의 소중한 친구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의 변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보고,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인간과 자연의 우정이나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것이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란 유아나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림책은 우선 글자가 적고 그림이 우선이긴 하지만 때론 글자보다도 더 많은 말을 그림이 전해주고 있다. 아직 글을 깨치지 않은 아이는 그림 속에서, 혹은 그려지지 않은 여백에서 화가와 작가가 말하지 못한 것조차 읽을 수 있다. 어른이라면 압축된 글과 색의 언어로 표현된 그림 속에서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이 책은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고, 아이는 그림으로 읽어나가야 한다. 부모의 따뜻한 목소리는 아이의 감성을 키워준다. 그리고 아이는 그림을 보며 색이나 형태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케이크 속에 콕 박혀 있는 토리를 찾고, 수많은 도토리 속에서도 오직 ‘토리’만을 발견하며 코우와 토리가 함께 달리기하고 수영하며 우정을 쌓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신의 친구(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와의 즐거운 놀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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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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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소설상이 어느새 12회 째를 맞이하여 모두 여덟 작품이 나왔다. 여덟 작품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은 것 중에서 제 1회 『새의 선물』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다.(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지만) 제 10회의 『고래』작품도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데는 인정하겠지만 치밀한 플롯이 아쉬웠고, 11회의『수상한 식모들』에서는 발상은 신선하고 유쾌했지만 너무 가볍고,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2회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심사위원들의 평을 듣고 몹시 기대했다. ‘이제까지의 소설세계를 폭파시킬 매머드급 이야기’라던가, ‘『캐비닛』과 더불어 한국문학은 이제 또 한 명의 괴물 같은 작가를 갖게 되었다’라는 평은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드디어 책이 왔다. 표지보고, 뒷표지의 심사평을 읽고, 소제목을 훑어보고, 수상소감까지 읽었어도 쉽게 책을 펼칠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나 최근에 산 책이 쌓여 있어서 만은 아니다. 내 취향이 그렇다. 남들이 너무 좋다고 하면 기대감과 함께 그렇지 못할 경우의 실망감이 두려워 쉽게 펴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너무 맛있는 것은 나중에 아껴 먹는 어린 아이의 심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음미해 보고 싶은 마음...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했다.

표지 뒷면의 ‘화려한 이야기들의 신천지’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에 읽은 장편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능가하는 판타지급 이야기는 한번 책을 붙들면 결국 다른 것은 하나도 할 수 없을 만큼 뒷장까지 오고야 만다. 소설의 기능 중에 하나인 재미, 즐거움을 이야기한다면 이 소설은 거기에는 충분히 합격점이다. 고양이가 간절히 되고 싶은 130킬로그램의 거구의 사나이나,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고, 한 몸에 두 성이 존재하여 자가수정을 하는 사람, 입속에 도마뱀을 키우다 결국 실어증이 되어 사는 여자나, 심토머, 토포러, 도플갱어, 샴쌍둥이 등 상상하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앞으로 소설은 어디까지 새로워질 수 있을까? 375개의 파일 중에서 이 곳에 다 소개하지 못한 이야기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이야기는 개연성 있는 허구가 아닌 환상에 닿아 있지만, 내용은 삶의 진실에 발 딛고 있다. 그래서 비현실적이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많은 변종인간들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나도 심토머이지 않는가 자문해 본다.(‘저도 심토머인가요?’ p293) 너무나 낯설고도 이질적인 군상들의 삶의 뿌리는 결국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계속 <믿거나 말거나>, <쇼킹 아시아>, <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며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런 프로에서나 나올 것이라고 한다. 변종인간들의 삶을 TV프로그램에 빗대어, 세상이란 이토록 다양한 군상들이 어울려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는 듯 싶다.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P351)

라고 하며 형식의 미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 소설은 그 형식에 아주 충실하다. 350여쪽이나 되는 장편소설이지만 대서사로 짜여진 이야기가 아니라 옴니버스 이야기처럼 몇 개의 에피소드를 병렬식으로 연결하면서 13호 캐비닛 내에 있는 이야기와 화자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아포리즘은 작가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암시한다. 수미일관의 형식, 즉 발단 부분에서 루저 실바리스의 이야기나 결말의 주인공 공대리가 아무도 모르는 땅콩 모양의 섬에서 안전가옥에 갇힌 채 이야기를 써 나가는(혹은 보관하는) 모습도 일치한다. 서두와 결말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읽다 보면 계속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좀 식상한 감이 있고, 모기업에서 요구하는 키메라파일에 대해 좀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손가락 발가락까지 짤리는 판국인데...

작가는 “인생이란 그저 시간을 잠시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P353)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란 종은 심심해서 못 견디는 존재이다. 그래서 주인공 공대리는 (너무 심심해서) 13호의 캐비닛 비밀번호를 칠천팔백육십세번을 돌려 결국 알아맞춘다. 그럼, 작가가 하는 것은, 또는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 같다. 작가는 이 심심한 세상에 캐비닛 속에 있는 비밀을 알려 주는 것!!! 그래서 심심해서 못 견디는 사람들,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와 재미를 던져주는 것이리라. 앞으로 이 작가의 캐비닛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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