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도토리 쪽빛그림책 1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인류보다 더 오랜 세월 지구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며 살았다. 수 천년 간 자연과 인간은 하나였고, 공생하였으나 불과 백 여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인간은 개척이나 정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난개발을 시작했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친구가 아니라 도구였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무정함과 비정함을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초의 인간처럼 인간과 자연과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서로의 필요를 알고, 서로 사랑하는 도토리 토리와 어린 소년 토우와의 우정을 정감 있게 그린 그림책이다.  

생일날 케이크 속에  콕 박혀 있던 도토리 토리는 코우와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비오는 날에도 함께 나가 놀고, 수영장에도 가고, 함께 달리기 시합도 하면서 둘은 서로의 의미가 되어간다. 그러나 어느 날 코우의 가방에서 떨어져 낙엽 속에 묻히게 된 토리는 코우와 헤어진다. 토리는 코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코우는 엉엉 울며 며칠동안을 찾아 헤맸지만 만나지 못한다.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도 오직 엉덩이에 ‘토리’라고 씌어진 도토리만을 찾는 코우의 모습은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그의 꽃이 된 것’이나,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장미꽃을 연상하게 한다.

 토리 역시 나뭇잎 속에서도 코우를 보고 있지만 코우가 보지 못하자 안타까이 소리지른다. 그렇게 헤어진 채 하루, 한 달, 수년이 흐르게 된다. 물론 이 책은 그림책이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을 글로써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생이던 어린 코우가 초등 학생이 되고, 다시 중고생쯤 되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모습, 그리고 성년이 되어 참나무(토리의 나무) 밑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만 읽으면 안 된다.

 이별에 대한 코우의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토리의 마음도 잘 표현되어 있다. 기다리다 지쳐 결국 긴 잠 속에 빠져 버린 토리. 오랜 시간의 침식을 견뎌 낸 토리는 울창한 참나무가 되었지만 여전히 코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코우를 알아본다. 성년이 된 코우나, 도토리에서 참나무가 된 토리 역시 오랜 시간과 관계없이 서로를 알아보며 웃는다. 그렇게 서로 간절히 원할 때, 잊지 않을 때 시간의 흐름이란, 세월의 변화란 그들에겐 의미가 없다. 코우의 동네에 건물들이 우뚝 우뚝 솟아나고, 자동차가 쌩쌩 달리며 코우 역시 성인이 되었어도 토리에게 코우는 친구이다. 이제 도토리가 아니라 우람한 참나무가 되었어도 코우에게 토리는 여전히 자신의 소중한 친구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의 변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보고,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인간과 자연의 우정이나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것이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란 유아나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림책은 우선 글자가 적고 그림이 우선이긴 하지만 때론 글자보다도 더 많은 말을 그림이 전해주고 있다. 아직 글을 깨치지 않은 아이는 그림 속에서, 혹은 그려지지 않은 여백에서 화가와 작가가 말하지 못한 것조차 읽을 수 있다. 어른이라면 압축된 글과 색의 언어로 표현된 그림 속에서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이 책은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고, 아이는 그림으로 읽어나가야 한다. 부모의 따뜻한 목소리는 아이의 감성을 키워준다. 그리고 아이는 그림을 보며 색이나 형태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케이크 속에 콕 박혀 있는 토리를 찾고, 수많은 도토리 속에서도 오직 ‘토리’만을 발견하며 코우와 토리가 함께 달리기하고 수영하며 우정을 쌓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신의 친구(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와의 즐거운 놀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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