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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스 극장의 연인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
자닌 테송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반전이 들어간 책은(영화도 마찬가지로) 뒷 내용을 알고 읽으면 묘미가 반감될 수 있다. 그러나 한번만 읽거나 본다면 그 의미를 전부 알기 힘들다. 그래서 두 번 보거나 읽어야 앞부분에 깔아놓은 복선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이 책이 반전의 이야기라는 사실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반전의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는 항상 긴장하며 읽는다. 이번엔 속지 않고 제대로 복선을 파악하며 읽을 것이라고... 그러나 내 머리의 한계인지 난 매번 속고 다시 읽거나 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에 ‘식스 센스’라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해서(물론 그 영화 이 후에는 뛰어난 반전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단한 반전 영화가 아니었을까?) 내 딴에는 잔뜩 긴장하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반전이 드러날지 보았지만 결코 허를 찌를 수밖에 없었던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속임수에 난 다시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두 번 보았다. 그때서야 곳곳에 숨겨 있는 복선들을 음미하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일본 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고 한참을 멍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반전은 너무나 의외여서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책 읽는 유쾌함에 빠져들었다. 이 책 『뤽스 극장의 연인』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를 해 주고 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뒷부분의 옮긴이의 글을 읽기 전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소설은 상처받은 젊은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뤽스 극장은 누가 봐도 한물간 영화관으로 평소에는 ‘저급 영화’라고 무시하는 상업 영화들을 상영하지만 매주 수요일만은 ‘진정한 영화’의 영광을 기리는데 하루를 바치는 극장이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여섯시와 아홉시면 추억을 만나러 온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낡아빠진 벨벳 의자에 기댄 채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절반쯤 채워진다.
스물 세 살의 피아니스트 마티외라는 남자와 열 아홉 살의 영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마린이 매주 수요일 이 영화관을 찾는다. 마린은 편안하고 다정한 목소리 마티외에게, 마티외는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마린에게 호감을 갖는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점차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한다. 서로의 깊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안다면 언젠가는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못하면서도, 늘 안타까움으로 서로를 그리워 하고 있다.
두 연인의 밀고 당기는 속마음은 독자를 점점 더 안타깝고도 애절하게 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그 상처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도대체 어떤 상처가 있길래 저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복선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들의 상처가 무엇인지에만 골몰한 채 읽어나가다가 뒷부분에 가서 아!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가슴이 아퍼왔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따뜻한 작가의 시선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옮긴이의 글을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곳곳에 깔려 있는 복선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는 첫 번째 그들의 상처에 골몰하면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한다.
「연인들」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날, 그들은 영화의 내레이션에 대해서 말한다.
-그녀는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마린은 생각한다. ‘그래 다른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나를 짓누르는 이 무게를 견디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이 남자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그의 손을 내 목에 갖다 댄다면...’
-사랑은 단 한번의 눈길로도 생겨날 수 있다 -
마티외는 ‘사랑이 생겨나는 데는 눈길조차도 필요 없어. 시인 아주머니 뭘 모르는군요...’라고 중얼거리는 한편 마린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거야 쉽지, 하지만 사랑 받을 수 없을 땐...’ 하며 목이 메인다.(p53)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었을 때의 놀람,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더듬으며 서로를 알아갈 때의 따뜻함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동병상련을 이들만큼 잘 알 수 있을까? 106쪽 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따뜻함의 분량은 그 어떤 두꺼운 책보다 결코 덜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