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 창비아동문고 233
김소연 지음, 장호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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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여자 나이 열 네 살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청소년기가 없는 조선 시대의 여자에게 열 네 살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집가는 일밖에 없다. 물론 가난한 집안의 여식이라면 그 전에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팔리 듯이 시집을 가기도 했을 것이다. 개화기가 되면서 신문물을 접한 집안이라면 그래도 여성들 중에는 신학문을 배우기도 하지만 1910년대에서는 결코 흔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쌍둥이 남동생의 정기를 다 빼앗아 혼자 살아남기라도 하듯 열 네 살의 명혜는 시집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다. 다만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정확히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은 없었지만 구시대의 인습에 갇혀서 살아가기는 싫었다.

아버지 송참판은 대표적인 구시대를 답습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래서 여자가 공부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여자로 태어나 시집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딨냔 말이야, 글쎄?”(p 143)
하며 명혜의 서울 유학을 끝내 막았으며, 엄마 역시 여자로 태어난 것을 늘 한탄하면서도 구시대의 인습을 타파하기보다는 그대로 순응하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본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있는 오빠 명규의 설득으로 드디어 명혜와 여동생 명선은 서울에서 여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입학도 하기 전에, 을사년 이후 서울은 일본인들의 세상이 되어 있어서 명혜조차도 멀쩡하게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명혜는 서서히 민족의식에 대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소심한 것 같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명혜는 여성으로서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처음엔 여성 전문 병원에서 학교 다니면서 일을 도와주게 되었지만 그 일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소명의식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오빠 명규의 독립운동을 지켜보게 되고 자신도 이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오빠 명규는 동생이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명혜는 나랏일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냐며 여자이기 전에 조선사람이고 집안이 있기 전에 먼저 나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혜는 단순히 자기 만족을 위해 신학문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명혜는 여성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나라 잃은 백성의 서글픔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3.1운동의 주동자로서 독립운동을 하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된 명규를 보고 명혜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의사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가라고 했던 오빠 명규가 죽게 되자 할 수없이 집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던 명혜에게 이번엔 오히려 엄마가 적극적으로 미국 유학을 돕는다. 명혜의 미국 유학은 결국 엄마의 희망이었고, 그 시대의 여성에게 희망의 증표인 것이다.

이 책 ‘명혜’는 개화기 시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동화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독립 운동만을 강조한 동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성문제를 구심점으로 하여 점차 민족문제로 확산시켜 나가는 꽤 괜찮은 역사동화이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라면 개화기 시대의 상황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명혜의 삶에 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까?' 한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도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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