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 팔기 대장, 지우 돌개바람 12
백승연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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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니의 고민은 막내아들의 심각한 한 눈 팔기에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은 언니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큰아들도, 둘째 딸도 언니가 원하는 대로 자라 주지 않으니, 셋째인 막내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데 이젠 그 희망마저 놓아야 한다고 하면서, 뭔 낙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만일 이 책을 읽고 나서 언니 이야기를 들었다면 난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다 큰다고 얘기해 주었을까? 아마 또 다른 지우가 내 조카일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카도 이 책에 나오는 지우처럼, 아침마다 신신당부를 하며 학교에 곧바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늘 지각하기 일쑤이다.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 가야하기 때문에 곧장 오라고 하지만 직접 학교에 가서 데려 오지 않으면 제 시간에 맞추어서 온 적이 거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수영 개인레슨은 차가 집 앞에서 30분 넘게 기다리다 그냥 가야 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그렇게 꾸중을 하고, 잔소리를 해도 여전히 지각하고 늦게 오니 어쩌면 좋겠냐고 언니는 한탄한다.

그러고 보니 잘 아는 선배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 선배의 아들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단 하루도 지각하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지각 대장이었다. 너무 지각을 하여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전에 보냈지만 지각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했다. 1시간 전에 보냈어도 지각을 하여서 어느 날은 몰래 미행을 했더니, 슈퍼에 들려서 장사하는 것도 구경하고, 문방구에 가서 게임도 하고, 길바닥에 기어가는 개미나 벌레도 구경하고... 결국에는 매일 아침 함께 손 붙잡고 학교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지우나 조카나 선배의 아들이나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 눈 팔지 않고, 말썽피우는 일도 없이 어른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면 어른이 보기에는 얌전한 모범생일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는 상상력이나, 호기심이 결여된 아이일 수도 있겠다. 어쩜, 그런 아이는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세상에 즐거움이나 변혁을 주는 일에는 소극적이지 않을까? (지금 난 내 조카와 지우를 한없이 변호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이 동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기존의 형식과는 다르게 희곡으로 된 동화이다. 그러나 지문은 생략되어 있어, 아이들과 역할극을 하면서 스스로 지문을 만들어 갈 수 있게끔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다. 무대에 올려질 희곡이지만 일반 무대보다는 마당극 쪽에 훨씬 가깝다. 직접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빗자루 도깨비, 관객석에 내려가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빗자루 도깨비: 얘, 너도 도깨비 맞지? 괜찮아. 나만 알고 있을게. 도깨비 맞지? 아니라고? 이상한데...

빗자루 도깨비가 자리를 옮겨가며 다른 관객들에게도 계속 묻는다. (p37)



큰 도깨비는 중얼거리며 관객석에가 다가간다. 한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큰 도깨비: 넌 누구니? 혹시 다듬잇돌 방망이? 대걸레 자루? 몽당연필? 부러진 지우개? 휴지통? 다 아니면 그냥 도깨비?

큰 도깨비는 또 다른 아이에게 다가가서 묻는다.
 
큰 도깨비:  너는 무슨 도깨비니? 혹시 학교 가기 싫은 도깨비? 놀기만 하는 도깨비? 춤만 추는 도깨비? 그냥 고개만 설레설레 젓는 이런 도깨비?....(p127)

어린 독자들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당극을 하는 한 복판에서 주인공 지우나 빗자루 도깨비, 큰 도깨비와 함께 흥에 겨워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흥겨운 마당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사에는 리듬감이 있어서 저절로 어깨를 으쓱하며 주인공들과 함께 노래를 하며 신나는 판타지 세계로 빠져 들 수 있다.

판타지의 모티브는 학교 옆에 있는 낡은 빈집이다. 판타지의 모티브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의 괘종시계나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옷장, 또는 거울, 액자 등 여러 소재들이 있다. 어떠한 소재이든 그것들은 모두 어린이를 또 다른 세계로 이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지우는 한 눈 팔지 말고 바로 학교에 가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낡은 빈집을 보자 엄마의 당부는 어느새 까맣게 잊고 홀린 듯 빈집으로 향한다. 백 년도 더 되었을 것 같은 집. 지붕은 부서지고 거미줄까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지만 지우의 호기심은 그 곳으로 향한다.

빈집에서 지우는 도깨비와 할아버지의 실랑이를 보다가 그만 빗자루 도깨비와 몸이 바뀌게 된다. 빗자루 도깨비가 된 지우는 이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우리네 도깨비를 만나고, 달나라로 가서 토끼와 함께 계수나무 아래서 절구를 찧기도 한다. 얌전하고 착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지만 지우가 된 빗자루 도깨비는 장난꾸러기고,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다시 달나라에서 낡은 빈집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92세 된 할아버지를 통해서 빗자루 도깨비가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우리 안에 있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우는 늘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똑똑하고, 얌전하고, 착한 아이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우의 모습은 어린이다운 천성 그대로 놀고 싶어하고, 장난치고, 수다 떨고 ‘몰라 몰라’ 라고 외치는 모습이다. 92세의 할아버지는 지우에게 말한다.

 “그렇단다. 내가 말이다. 한 백년쯤 살아보니 그런 일이 있더라.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남인 줄 알고 사는 일, 남이 남인 줄 모르고 난 줄 알고 사는 일,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은 그런 일 말이다.”(p123)

 이 책의 주제 문장이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신나고 즐겁게 지우와 함께 판타지 여행을 하다가 뒷부분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나도 지우 같아. 얌전하고 똑똑하고, 착한 아이이고 싶지만 장난꾸러기고, 놀고 싶어하는 아이거든. 그런데 남처럼 살지 않고 나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지?”라고...

당장 막내 조카에게 이 책을 선물해 줘야겠다. 아마 조카도 지우와 같은, 동일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도깨비를 만나 달나라 토끼까지 만나고 왔지만, 얌전하고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엄마 때문에 마음 속에만 꾹꾹 담아 놓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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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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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열 여섯의 아이들은, 17세기 조선시대 춘향이와 이몽룡이처럼 달밤에 취해 사랑을 나누며 황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 아니다. 굴러가는 가랑잎에도 허리를 꺾으며 웃을 수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구도자일 수도 있는,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극점에 있는 나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칙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을 만큼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제어할 수 없는 뜨거운 피를 오직 미래를 담보로 제물로 삼고 있다. 공부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그들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기성품처럼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대량 생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모범생이 될 수 없는 아이들은 일탈을 꿈꾸며 규범 밖에서 맴돌고 있다. 누군가 봐주기를 기다리듯이...  아니, 우리도 살아있는 생물체라고 절규하고 있다. 그 절규는 노래로, 춤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 침묵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사생아로 태어나 외증조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연호, 가수가 꿈이지만 한사코 집에서 반대하는 민기와 현중, 얼굴에 커다란 반점이 있어 점박이, 혹은 달마시안이라고 부르는 공개 입양아 준희. 이들은 환경과 처지는 다르지만 모두 16살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탄하거나 찬란하지 않다. 한없이 비루하고 위태롭다.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단 한번의 실수로도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할 것 같은 아찔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환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꿈을 찾아 고뇌하는 아이들의 일상은 오히려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삶의 위대함이란 이런 비루함 속에서 오히려 보석처럼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사생아로 태어난 연호는 자기보호 본능이 누구보다 강하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미리 방어막을 싸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 타인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다. 그런 연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차라리 애처롭다. 그러나 연호가 마음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으로 나올 때, 세상은 그리 삭막한 곳은 아니었다. 친구가 있었고, 연호의 꿈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은 꿈꾸는 자에겐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각자 환경과 처지가 다른 아이들이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주머니 안에 있는 고래 때문일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그 고래가 너무 작아 살아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고,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래는 크든 작든, 어떤 모습이든 간에 꿈틀꿈틀 아이들의 주머니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삶이 너무 버거워 호흡조차 힘든 우리들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주머니 속을 만져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만져지는지... 무엇이 만져지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 주머니를 뒤집어서 현미경이라도 꺼내 자세히 관찰해 보라.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작은 고래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을 다 살아보기 전까진 우린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것, 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속단하지 말라는 것... 작가는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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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1
제리 스피넬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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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라는 이름은 마치 중세시대의 ‘주홍글씨’ 같아서 한번 새겨지면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천형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문제아라는 이름 때문에 정말 문제아가 되었을까? 그래서 결국 문제아는 실패자가 되었고, 그 실패자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 동화작가 박기범의 「문제아」를 읽고서 난 어른으로서 갖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문제아」의 주제처럼, 문제아로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아를 만든다.

박기범의 「문제아」와 동일 제목의 이 책 「문제아」도 제목만큼 주제가 같다. 다만 박기범의 「문제아」가 좀더 배경이나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무거울 뿐이다. 이 책의 문제아, 징코프는 언제나 유쾌하고 즐거우며,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다. 학교가 너무 너무 좋아서 새벽부터 학교에 가는 아이. 그렇게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학교가 좋고, 선생님이 좋고, 친구들이 좋지만 문제는 학교와 친구들은 징코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징코프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사랑해 주는 얄로비치 선생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징코프를 모자라는 아이, 또는 문제아로 취급하며 지나간다.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에 교실을 두리번거리다가 헥터를 일단 친한 친구로 정하고, 그 다음부터 헥터와 가장 친한 친구와 되기 위해 애쓰는 징코프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랑스럽다. 한번 웃음이 터지면 그칠 줄 모르는 아이, 소화기가 약한 탓으로 먹은 것을 자주 토해내는 아이. 운동회 때 자기 때문에 우승을 놓쳐 다음 번에는 아예 껴주지 않자, 학교에 가지 않고 동네 할머니를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징코프를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 목이 메이기도 했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사실 그런 아이들 모습은 우리나라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징코프는 비록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에 있어서 서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다. 그러기에 그토록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옆집 꼬마 클로디아가 눈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몇 시간이나 클로디아를 찾는다. 사실 클로디아는 금방 찾아서 집안에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 징코프는 거리 곳곳을 찾아 헤매다 거리에 쓰러진다. 뒤늦게 징코프를  찾아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 아이들은 그런 징코프를 역시 문제아(모자란 아이)라고 취급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클로디아의 부모님은 알고 있다. 징코프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아이인지를.

아무리 힘들어도 ‘식은 죽 먹기지’ 라고 하며 힘을 주는 우체부 아빠, 아무리 경기에서 져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는 엄마. 그래서 ‘천 번이나 축하해’ 라고 해주는 엄마가 있기에 징코프는 외롭지 않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징코프의 영혼은 누구보다도 맑고 깨끗한지 모르겠다. 징코프는 문제아가 아니라 좀 특별한 아이다. 너무나 사랑스런 특별한 아이. 세상의 아이들이 징코프를 닮는다면 오히려 문제아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 세상의 어른들이 징코프를 닮아야겠다. 그래야 '주홍글씨' 같은 문제아의 편견을 벗어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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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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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사 선생님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책의사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테니. 그럼, 를리외르라는 말은 들어보았을까? 이것 역시 우리에게 낯선 단어일 것이다. 를리외르란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제본가’이다. 하루에도 수십 (혹은) 수백 종의 새로운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책이 좀 뜯어졌거나 낡았다고 일부러 제본가를 찾아가서 자기 책을 고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제본가의 장인정신과 정말 소중한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한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정말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책이라면 그 책이 아무리 낡았어도 버리지 못하고 오래 오래 소중히 간직하며 보관할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소녀가 바로 그렇다. 자신이 아끼고 있는 식물도감이 어느 날 아침 보니 뜯어지고 망가져 있었다. 그만큼 책을 읽고 또 읽었다는 얘기이다. 책방에는 새로 나온 도감책이 많이 있지만 소녀는 자기 책을 고치고 싶어 파리시내를 헤매다 를리외르 아저씨를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망가진 책이 새책으로 재탄생 되는지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를리외르 아저씨는 가업을 이어서 그 일을 하고 계셨다. 소녀는 아저씨를 통해 를리외르 직업의 자부심과 함께 그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배운다.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이 들어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란다.”(p45)
라고 말하는 아저씨는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60가지의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책이 새롭게 완성되지만 그 공정을 거치는 동안 손은 나무옹이처럼 굳어져 간다. 그 모든 과정을 오직 손으로만 하는 것이고 그만큼 섬세함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오랜 세월 를리외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손은 마법의 손이 되어간다. 그리고 죽어 가는 책에 새생명을 부여한다. 소피의 책도 아저씨가 만들어준 후 두 번 다시 망가지지 않았다. 그 식물도감은 결국 소녀를 식물학자가 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어린이용으로 (또는 유아용)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소피라는 소녀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를리외르 아저씨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를리외르 직업은 400년 가까이 이어온,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출판업과 제본업을 겸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직업이라고 한다. 글쎄, 우리나라에도 를리외르라는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라면 책의 소중함과 함께 가업으로 이어져 오는 수공업의 를리외르 직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수채화 그림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유아라고 해도 그냥 그림만 보고 책에 푹 빠져 들 것 같다. 그 그림 속에서 책을 사랑하는 여자 아이와, 책을 정성껏 새롭게 만들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글씨체도 예쁘다. 참 사랑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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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감이 가는 책이네요~ '를르외르' 처음 듣는 용어네요.
기회되면 보고 싶군요!

카라 2007-09-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순오기 님.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를리외르라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이 책의 매력은 그림일 거예요. 물론 내용도 괜찮지만... 책의사라는 말은 이 글의 주인공 소녀인 소피가 "를리외르가 뭐지? 책 의사 선생님 같은 사람인가?"하며 를리외르를 찾는 장면을 보고 제목을 책의사 선생님이라고 지었어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를리외르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건방진 도도군 - 2007년 제13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48
강정연 지음, 소윤경 그림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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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는 도도하고 건방진 개다. 자신의 이름에 굉장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개 도도가 어느 날 버림받는다. 대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애완견으로 살았던 도도가 주인 마나님 ‘야’에게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것이다. 주인집 마나님의 운전 기사 어머니 집으로 보내진 도도는 주인인 ‘야’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사의 ‘어머니’ 집에서 만난 ‘미미’를 통해 자신의 이름의 뜻이 도도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계의 첫 번째 음인 도를 반복해서 불렀다는 것을 미미를 통해 알게 되고는 한없이 위축된다. 도도 뿐만 아니라 미미, 라라, 파파도 있었던 것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야’의 집에서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즉 꿈속의 연인으로 여기고 있었던 미미의 현실은 너무나 초라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집에서 미미와 ‘어머니’의 관계를 보고 도도는 처음으로 동반자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난 한 번도 주인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의 주인이었던 적도 없다. 그냥 난 나다.'라고 당당히 이야기 하지만, 사실 주인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던 자기의 처지를 깨닫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생명이 없는 딱딱하고 차가운 액세서리였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싫증나면 언제든지 버림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도도는 그렇게 기다렸던 주인 ‘야’에게 되돌아갔을 때 스스로 그곳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액세서리가 아니라 자기를 꼭 필요로 하는 동반자를 스스로 선택하겠다고 결심한다.

 “장난감이나 액세서리를 고르듯 개들을 고르는 그런 사람말고, 정말로 내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말이야."

편안히 주인이 주는 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수동적인 도도는 이제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간다. 그러나 삶이 원래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움직여 주었던가? 진정한 동반자 ‘상자 할머니’를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게 사고로 동물 보호소에 오게 된다. 상자할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도는 예전에 버려진 개들 중에 하나인 뭉치를 동물 보호소에서 만난다. 뭉치를 통해 '넌 우리의 희망이야'라는 말을 듣고 다시 힘을 내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자 진실로 도도가 원했던 가족을 만나게 된다. 액세서리가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수진이네 가족에 편입된 것이다. 보청견으로서 수진이네 집에 온 것이다.
 
도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면, 버리고 버림받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겠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진이 가족에 편입 된 후 “수진이와 엄마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 존재야. 그러니 내가 그들을 버릴 수는 있어도 그들은 날 절대로 버리지 못해”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도도는 아직도 철부지라고 말한다. ‘가족’은 ‘필요’ 때문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 때문에 서로를 놓지 못한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제목이 ‘건방진 도도군’인지 명확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건방진 도도는 멋지다. 도도라면 수진이네 가족과 오래 살다 보면 드디어 가족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해와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목만큼이나 이 동화의 문체는 통통 튀면서 유쾌하다. 플롯도 탄탄하여서 건방진 도도의 캐릭터를 끝까지 흐트러짐없이 탄력적으로 이끌고 간다. 그래서 이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이라면 도도의 캐릭터에 쉽게 동화되면서 진정한 자신의 동반자를 찾아 나서는 도도의 건방진 모험에 기꺼이, 유쾌하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풍자적인 시선은 책을 끝까지 붙들 수 있는 힘과 흥미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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