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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이야기 ㅣ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난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인데도 심호흡을 하며 힘들게 읽어야 했다. 어린 소녀 유디트의 고통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유디트의 억눌린 비명이 자꾸 내 고막을 때렸고, 분노로 인해서 난 숨이 막혀 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이 아이일 수도 있고, 남자가 여자를,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약자로서는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강자의 횡포이다.
단지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또는 어두운 자신의 과거가 기억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그것도 친엄마가 딸을... 어쩌면 유디트의 엄마 코니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설령, 그렇다 해도 용납할 수 없다)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당한 멸시와 학대는 결국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딸에게 행사하고 있으니... 그래서 유디트를 실컷 학대하고 나서는 울면서 용서를 구한다.
“너를 때리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게 나보다 강해. 나 자신을 멈출 수가 없어."
그리고는 그 죄책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그 다음 날은 특별히 직장에 휴가를 내서 맛있는 음식을 해 준다거나, 딸의 가방이나 빨간 티셔츠를 사오기도 한다. (이것조차 언제나 그러는 것은 아니다.)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다. 나이만 먹어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코니는 오히려 자신의 딸 유디트보다도 더 유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컷 두들겨 패고는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 자신도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하는 엄마를 어린 유디트는 이해하기 힘들다.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에 따라 딸을 대하는 엄마를 보며 유디트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늘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고 있는 듯한 유디트의 삶은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매맞은 것을 숨기기 위하여 늘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유디트의 하루 하루 삶이란 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이런 유디트의 위태로운 삶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학교 선생님이나 동생 데니스의 유치원 보모인 소피나 마음을 나누는 친구 미하일에게도... 그러나 엄마와 함께 있는 집안에서의 삶이 사막 같다면, 미하엘과 미하엘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은 오아시스와 같은 충만한 시간이다. 점심 때마다 미하엘 집에서 먹는 점심은 건조한 유디트의 삶에 윤기를 주고 온기를 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나 짧고, 그것조차 언제 엄마에게 들킬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미하엘은 유디트에게서 오래 전에 자신의 내부에 있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처음엔 자신이 힘들어 할 때, 진정으로 자기를 이해해 준 여자친구 스테피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에 유디트에게 다가가지만 곧 유디트에겐 자신의 존재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미하엘 역시, 이모집에서 살기 전엔 늘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빠의 그늘에서 숨조차 쉬기 버거울 정도로 숨막힌 생활을 하였다. 미하엘의 난독증을 게으르고 머리 나쁜 것으로만 여기며 무시하던 아빠. 그로 인해 미하엘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며 위축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 아빠에 대한 공포는 가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모집에 와서 살게 되면서 비로소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그 가족의 일원으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디트에게 미하엘은 숨구멍이다. 비록 엄마에게 구타를 당하는 사실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하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엄마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주는 탈출구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헤이그로 가는 열차표를 사는 유디트를 향해 난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고통없는 새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까운 것은, 이웃집 할아버지의 태도이다. 분명히 할아버지는 유디트의 비명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남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하면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방관하고 있다. 그런 태도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벼랑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가? 또한 리아 이모도 조금만이라도 유디트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좀더 일찍 엄마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우리 사회는(외국도 마찬가지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일에, 특히 그것이 가족과의 일이라면 더욱더 간섭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가족과의 일이라도 약자가 강자의 폭력으로 영혼과 육신이 피폐해져 가고 있다면 이웃이, 또는 국가가 나서서 막아야 된다.
이 책은 소설이다. 즉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리얼하고 냉혹할 때가 있다. 가끔 TV에서나 거리에서 아동학대의 현주소를 보면서 몸서리치곤 했다. 단지 약자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일들이 이젠 일어나지 않기를(아니, 줄어들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이런 소설이 그냥 소설로써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