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다는 브라운과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존스의 문장의 대비가 인상 깊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은 같은데 왜 두 사람은 이리 다른 것일까? 오히려 브라운의 상황이 존스의 상황보다 더 나으며 스미스 부부를 비롯해 필리포 등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은 브라운이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당신은 믿음을 잃었군요.>라는 닥터 마지오의 말에 <믿음에도 한계가 있잖습니까?>로 답하는 브라운의 대답을 깊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믿음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누구의 문제일까? 상대는 진실을 말하는대 '나'는 의심을 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잃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설득하지 못한 이? 확신을 주지 못한 이? 그동안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보게 하였다.
<잃은 믿음에는 언제나 대안이 있다>는 말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폭력은 불완전한 자비이고, 무관심은 완벽한 이기심이니까요. P413>이라는 문장이 그레이엄 그린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아이티의 상황에 대한 기사를 몇 번 발행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책의 글 안에서도 미국의 원조를 바라는 파파 독과 득실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미국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레이엄 그린은 저널리스트로의 능력보다 소설가로 아이티의 독재와 불합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내었다.
<무관심>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투명이 된다. 불합리에 맞서기보다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 현재는 피해를 덜 보는 것 같겠지만 그 이기심의 대상이 어느 순간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