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문을 읽지 못하는 영알못에게는 출판사의 번역에 의존한다. 책의 말미에 있는 <빗속의 고양이>의 기존 작품 번역과 비교 번역문을 보며 수많은 명작이 쓰인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오지만 게으름의 끝판왕이 해낼 수 있을지... 인친님 중 한 분이 올해는 원서 읽기에 도전한다는데 동참해 볼까 고민을 해 봐야겠다.
노인과 바다로 너무나 유명한 헤밍웨이의 단편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단편들은 문체가 짧고 간결해서 읽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의 글은 <빙산 이론>으로 함축되어 있는 작품들이라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작품을 읽고 나서 '뭐지?'하고 갸웃한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은 <나는 늘 빙산의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밑으로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욱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 헤밍웨이의 말/ 마음산책>에서 나왔다. 그는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단편들을 읽고 나니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다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식당을 찾아왔다 그냥 간 킬러 이야기, 여름 날 기차역에 앉아 흰 코끼리를 닮은 산등성이를 보면 술을 마시는 두 남녀, 시골 대장간의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이탈리아에 피난 온 헝가리의 어린 혁명가, 창밖의 빗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여자와 남편 등의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단편들은 쉽게 읽혀지만 헤밍웨이가 빙산 아래 숨겨둔 생각을 읽어내기에는 어려웠다.
그래. 이제 그는 죽음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한 가지 그가 항상 두려워했던 것은 고통이었다. -중략 - 지금은 지독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꼈을 즈음, 그 고통은 멈추었다.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