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명절에는 경주에서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코로나 이전에도 몇 년을 명절에 모이지 못해 엄마가 계신 곳을 들렀다 가까운 곳에서 1박을 하기로 하여 경주 보문 단지 안에 펜션을 잡았다. 기차로 내려가며 읽으려 몇 권의 책을 가져갔다. 책 소개를 읽으니 기차역과 기차에 대한 이야기라 가방에 넣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책을 펼쳤다.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의 밤 풍경은 생경했다. 어린 시절부터 기차를 꽤 많이 탔지만 긴 연착을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문명의 세계로부터 아득히 떨어진

이 작은 마을들에서 삶이란 기다림과 포기, 신발 깊숙한 곳의

축축한 온기일 따름이니까. 눈보라에 휩싸인

이 기차역은 그저 이 나라 역사의 축소판이며,

뿌리 깊은 그 본성의 축소판이다.

어느 삶의 음악 P16-17


나는 대합실의 사람들이 통제되어 자신의 권리조차 찾지 못하고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하여 자신들의 삶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신문지를 깔고 누운 노인, 아이를 달래는 젊은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 젊은 군인들과 매춘부의 흥정하는 소리 등이 뒤섞인 한 밤의 대합실의 정경에 애써 눈을 돌리던 나에게 들려온 피아노 소리. 그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기차역 끝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그리고 우연히 그 노인과 기차에서 동행하게 된다. 노인이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기찻길과 같이 굽이 굽어 한 곡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듯하다.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들 중 글로 읽는 것뿐이라도 전해지는 전쟁의 참혹함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감시되던 암울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처절했다. 죽은 이들 사이를 다니면 새로운 신분을 찾기 위해 죽은 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눈앞에서 목격한 죽음을 바라보며, 직접 총을 들고 살아있는 타인을 향해 총을 쏘는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이름도 잃어버린 이를 살아가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다음 순간 음악이 터져 나왔다.

그 기세에 이제까지의 의심과 부조리와

소음이 송두리째 실려 갔다.

어느 삶의 음악 P118-119


기대했던 사랑이 산산 조각나고 남은 것이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었을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알렉세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의 가짜 신분이 들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주를 한 것일까? 그 모든 두려움과 공포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피아노가 가진 의미가 대단한 것일까? 어떤 음악은 한 개인에게 삶이 이 되기도 한다. 알렉세이는 자신의 꿈이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피아노 연주회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러시아에서 태어났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안드레이 마킨은 자신의 작품 모두를 프랑스어로 쓴다. 그의 「프랑스 유언」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다. 화자의 삶을 이중 분열적 대상인 동시에 배척의 대상인 프랑스라는 유산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자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프랑스 유언」은 역사상 최초로 콩쿠르상, 콩쿠르데 리센상, 메디치상을 모두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는다. 2001년 발표한 「어느 삶의 음악」은 RTL-Lire 상을 수상하였다.


삶이 고단하여 공감과 위로가 받고 싶다면 기찻길위에서 열리는 연주회로의 초대에 응해 음악을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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