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합실의 사람들이 통제되어 자신의 권리조차 찾지 못하고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하여 자신들의 삶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신문지를 깔고 누운 노인, 아이를 달래는 젊은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 젊은 군인들과 매춘부의 흥정하는 소리 등이 뒤섞인 한 밤의 대합실의 정경에 애써 눈을 돌리던 나에게 들려온 피아노 소리. 그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기차역 끝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그리고 우연히 그 노인과 기차에서 동행하게 된다. 노인이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기찻길과 같이 굽이 굽어 한 곡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듯하다.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들 중 글로 읽는 것뿐이라도 전해지는 전쟁의 참혹함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감시되던 암울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처절했다. 죽은 이들 사이를 다니면 새로운 신분을 찾기 위해 죽은 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눈앞에서 목격한 죽음을 바라보며, 직접 총을 들고 살아있는 타인을 향해 총을 쏘는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이름도 잃어버린 이를 살아가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다음 순간 음악이 터져 나왔다.
그 기세에 이제까지의 의심과 부조리와
소음이 송두리째 실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