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
김태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품절


이 고질적인 심리적 상처에서 생겨난 지울 수 없는 우울감을 떠안고도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험난한 길을 헤쳐온 두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자신의 심리적 병에 맞서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온 두 사람의 강인한 의지는 모든 이를 숙연케 한다.-17쪽

역시 큰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든 '행복한 유년기'만은 보장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이 땅의 부모들이여. 제발 어린 시절만큼은 자녀들이 또래들과 어울려 마음껏 뛰놀게 하자. 괜한 출세욕으로 아이를 주눅 들기 좋은 환경으로 밀어 넣지 말자. 심리학적 견지에서,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이란 아무래도 '아이의 행복한 유년기를 사수하라'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49쪽

도덕성이란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일 부모가 입으로는 도덕을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부도덕하게 행동한다면, 아이들은 부모를 경멸하거나 부모와 똑같은 위선자가 되고 말 것이다.-53쪽

개인의 심리적 숙제의 핵을 이루는 '무의식적 소망'은 필연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립하게 되는 '의식적 목표'와 결합되거나 뒤엉키거나 부딪친다. 만일 무의식적 소망이 건강하게 승화되어 의식적 목표에 통합되면 개인의 심리적 에너지는 크게 증폭되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에 무의식적 소망이 의식적 목표와 뒤엉켜버리거나 정면으로 충돌하면 개인의 심리적 에너지는 이러저리 요동치면서 마음을 힘들게 만든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무의식적 소망을 뚜렷하게 의식화함으로써 그것을 사회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스스로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힘차게 개혁해나갈 수 있다.-96쪽

자기의 내면과도 화해하지 못하면서 세상과 화해할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자기의 내면세계도 변혁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변혁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내면을 통합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두 가지를 통찰해야 한다. 그 하나는 무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다. 무의식과 사회에는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혀온 심리적 병의 원인이 숨어 있다. 마음의 병은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 있고 사회모순에서 오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하고 사회모순을 의식화해야 한다. 만일 두 가지 중 하나를 회피한다면 우리 마음의 반 이상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112쪽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에 있으랴! 지구 어디를 가든 별반 다를게 없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순간이든 거기에는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그에게 모든 상처 입은 인류를 포용하고 온 세상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118쪽

부모와 제대로 화해하려면 반드시 부모를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부모를, 과거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병리적인 태도는 부당한 권위에 맞설 줄 모르는 비겁한 인물을 만든다. 반대로 부모를, 과거를 조건반사적으로 거부하는 분노에 가득 찬 태도는 세상의 밝은 면과도 화해할 수 없게 함으로써 기성질서를 파괴하려고만 하는 난폭한 인물을 만든다. 오로지 진실에 기초해 부모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자식만이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기에, 세상과 화해할 수 있고 세상을 변혁할 수 있다.-124쪽

"우리의 전통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을 모아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나가되, 과거의 어두운 측면을 규명하고 넘어가야 한다" (오바마)-125쪽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솔직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했다가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솔직하게 말했다가 논박을 당하면 어쩌나?' 같은 생각은 변화를 거부하는 허약한 자아의 반영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변화해야 하는데 두려움 때문에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은 항상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134쪽

과거 청산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 순응이 아니라 변혁을 선택하는 사람을 만들려면 어린 시절의 정서를 안정시켜야 하고 특히 처벌을 남용하거나 혼을 많이 내면 안 된다. 매를 많이 맞고 자란 아이는 맷집은 좋을지 몰라도 내면에는 두려움이 많다.-139쪽

노무현과 오바마가 역지사지를 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은 어린 시절에 건강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다. 애정결핍은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성을 낳는 핵심 원인이다.-143쪽

반성능력이 있다는 것은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곧 건강하고 힘이 있는 유연하고 열린 자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비판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자아가 허약한 사람이다.-143쪽

고질적인 심리적 병이 한순간에 나을 수는 없으므로 오바마의 병은 위기상황이 되면 다시 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을 평정한 승리의 경험이 있으니, 정신만 바짝 차리면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148쪽

성격보다는 심리적 건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겠다. 16가지 성격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들면 그 어떤 성격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노무현과 오바마가 훌륭한 것은 그들이 특정 성격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175쪽

싸움터에 나간 사람이 항상 이기고 집에 들어올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패하기도 하고 때로는 피투성이의 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당당한 자부심으로 가슴을 쫙 펴고서 형형한 눈빛으로 가족들을 쳐다본다면 아이들은 절대로 사회불안 따위에는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이들은 불의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태산같은 아버지를 우러러보며 사회생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226쪽

아버지의 길을 가면서도 어머니를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었다. 성공 사례는 아버지의 좌절을 보상해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끈질긴 패배주의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점점 더 심하게 성공 사례에 집착하게 되었다.-229쪽

오바마의 삶은 심리학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교훈적이다. 그의 인생은 어린 시절의 중요성, 부모의 건강한 양육이 자식의 인생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는 것의 중요성,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사회생활을 용감하게 하는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진리 등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249쪽

이 세상에는 끝끝내 변질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는 환경이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일관성'이 있는 것이다. (중략) 대부분의 선량한 국민은 후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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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vs 백악관
박찬수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우선, 매우 재미있다. 지은이가 기자라서 그런지 청와대와 백악관의 현실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잘 보여준다. 이론적인 설명이나 분석이라기보다는 취재의 느낌이 강하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관저와 경호, 전용기 등의 하드웨어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인사검증, 대언론관계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 소재별로 꼭지를 구성해놓았다. 그리고 전직 청와대 근무자의 증언까지 인용하여 마치 비화나 일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힌다.


지은이는 청와대와 백악관이 다른 점도 많지만 비슷한 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에는 과연 그럴까 의아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과연 그런 것 같다. 물론, 그 규모면에서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있겠지만 대통령제라는 특징과 정치나 권력의 속성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보니 오히려 제도 면에서는 미국보다 앞서서 시도한 것도 있었다. 청와대 상황실의 첨단화는 우리가 미국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폐지될 뻔 한 사연도 소개하고 있다. - 국토가 작고, 전산 집중화가 더 용이한 측면도 있었을 테고 집적되는 정보의 수준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백악관보다 앞선 것이 신선했다. 이처럼 제도는 백악관과 유사한 것 같은데 왜 정치와 민주주의의 질은 다를까? 문제는 제도적인 측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제도 속에 녹아 있는 문화다. 지은이가 원고를 마무리 지을 때 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 정치보복에 대한 꼭지를 뒤늦게 추가했다고 한다. 가장 늦게 쓰였지만, 이 책의 핵심은 그 꼭지에 있다. 지은이는 미국의 정치 보복(?)은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것임에 주목한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전임 정권 인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아닌, 정책으로 분위기 반전이나 자신들의 차별성 과시를 꾀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정견으로 싸우되 상대의 신변까지는 위협하지 않는, ‘마지노선’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이런 상생의 정치 문화가 우리와 미국이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도 다른 정치가 나오고 있는 원인같다.


물론, 미국도 단 한 번에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남북전쟁이 있었고, 대통령 암살시도가 레이건 때까지 있었다. 책에서는 정권 인수인계 제도도 소개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정권 교체 후에는 편지 한통을 제외한 전임 정권의 모든 물건이 백악관에서 깨끗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을 더 남겨줬는지, 덜 남겨줬는지에 대한 다툼이 없다. 이것을 마치 자신에게 남겨질 유산도, 부채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자기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을 배운 아들에 비유한다면 지나칠까. 긴 역사에 걸친 갈등 속에서도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이 부럽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체득한, 그 안에서 공통분모로 자리 잡은 문화와 그 문화의 다른 표현인 제도를 통해서 미국과 우리의 차이는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기야 우리라고 사연이 없겠는가.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변질되어 여러 차례 환국을 거치면서, 정치가 자신과 가문의 생존을 위한 전투가 되었던 경험들. 조선 중기 이후 국가의 근본 사상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의 정명론. 정도와 사도, 정통과 이단을 명확히 가르는 그 사상이 사회문화의 근저에 흐르는 까닭이다. -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주장하는 일부 개신교가 급속히 교세를 확장하는 한국적 현상도 ‘정명론’이 한국인들 사고의 근저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 그 뿐인가? 일제와 싸웠던 40여년, 독재와 싸웠던 20여년, 누군가 싸워야만 옳은 길이었고, 실제로 상대가 거대한 악이어서 도무지 예쁘게 봐주려야 봐줄 수 없었던 역사가 있다. 우리의 정치보복 문화는 이런 슬픈 역사와 배경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조급해야 할 이유도 없고, 우리만 왜 이러냐며 분노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안 된다며 비관할 일도 없다. 이것은 역사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갈등 없는 국가는 없고, 앞서 말한 미국의 정치문화가 나오기까지는 미국도 많은 갈등과 반목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가치관이 달라도 한 공동체에 소속된 시민이라는 인식의 변화와 권력을 서로 나누는 연습이 필요하다.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가치충돌에 있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제도 변화에는 신뢰와 같은 사회자본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서로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되는데 그게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에는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놓아라.’ 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누구보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신뢰의 싹을 뿌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현 대통령과 깊은 우애와 신앙적 교감을 가지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예를 본다면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원하긴 하다. 화해와 신뢰와 공생은 옳은 길이지만 현실이 너무 어두워서 암담하게 느껴진다. - 최근에 있었던 황석영 씨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화해와 용서, 상생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옳지만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 정치적인 패자가 승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때론 굴종으로 비칠 여지가 많다. 그래서 승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여유가 필요한데 정말 우리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못한다면 우리가 하면 된다. 현 정부의 잘못에 분노하되 그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무조건 비토해서도 안 된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만들어서 우리가 논쟁을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시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했을 때는 화해, 용서해야 한다. 공생해야 한다. 그런 문화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얼마 전 읽은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이런 비슷한 말이 나온 것을 기억한다. ‘성공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두지 않는다면 성공을 해도 불행하다.’ 는 말. 바꿔 말하면 정권을 바꾸는 것은 쉽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두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현실을 바꾸려면, 우리 국민이 현재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또는 문화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준에서 준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청와대나 백악관 또는 미국과 한국의 단순 비교를 넘어서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인 것 같다.


책에서 받은 느낌을 쓰다 보니 정작 책 내용과는 딴 방향으로 간 것 같다. 사실 책에 이런 내용은 씌어있지 않다. 물론, 우리 정치문화나 청와대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만 책에서 구체화는 안 된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현실적인 청와대와 백악관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래서인지 꼭지별 구성이 다소 산만한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책이 끝난 느낌도 받았다. 마지막 꼭지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나가는 말’ 같은 게 있어서 책을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어쨌든 책이 재미있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했던 식의 한국 정치에 대한 몽상(?)을 하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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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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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모두 강남에 아파트 2채씩은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행복한 거예요." 한 개그맨이 이렇게 말하자 관객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도 TV를 보며 낄낄대며 웃는다. 한참 웃고 나니 돈이 행복을 결정짓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 왠지 서늘해진다. 꼭 강남에 아파트 두 채를 - 한 채도 어려운데 - 가져야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모두 행복을 갈구한다. 나또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 고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심리학, 정신분석학에 관련된 책, 수상록, 심리상담책을 자꾸만 들여다본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불만족스럽고, 내 인생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러셀의 대답이다.

  나는 이 책을 최근 출간된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한비야 씨가 추천한 이십 여권의 책들 중 하나였다. 한비야 씨의 추천이라면 믿을만해서, 그리고 제목도 맘에 들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철학의 철자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이 그 유명한『서양철학사』를 지은 저명한 철학자인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은 책을 읽으면서 싹 사라졌다. 전혀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을뿐더러 철학자답게 매우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씌어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과 믿음이 가는 동시에, 이 이후로 나온 모든 행복론들은 이 책의 변주로 느껴졌다. 1930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여성이나 하인에 대한 예시를 제외하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시공을 초월한 행복론의 정석같았다. 정말이지 책 통째로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였다.

  러셀은 불행한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기 내부에 갇힌 사람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뿐더러, 내부로 파고들수록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불행의 가능성만 높이기 때문이다. 불행의 유형은 세 가지로 대별되는데,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주입된 신념과 애정의 폭압에 갇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자존감이 결여되어 방어기제로 허영심만 가득 찬 자기도취형 인간, 권력에 대한 열망과 현실감각 결여가 더해져 파멸로 나아가는 과대망상형 인간이 그것이다. 나또한 이 세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곡을 찔린듯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자기 내부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러셀의 지적에는 조금 의아했다. 대부분의 종교나 책에서는 자기 성찰과 깊은 참회를 평화를 얻는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러셀이라는 돌팔이 의사를 만난건지, 이제야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난건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러셀은 불행의 원인으로 사회적 요인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러셀 자신의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도 맞닿아있다. 특히, 성공을 위한 경쟁,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는 미국식 성공지상주의를 의지와 경쟁만 중시하고 지성과 감성이 결여된 '현대판 공룡'으로 표현하면서, 이런 성공에의 집착이 행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공룡이 멸종되었듯이 현대판 공룡들도 지성과 감성을 갖춘 쾌활한 사람들에 의해 머지않아 대체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또한, 걱정, 권태,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 등 불행을 부르는 개인적 측면의 요인들도 제시하는데 그 전개나 논거가 퍽 믿음직스럽다. 불행의 요인들인 걱정이나 죄의식 등이 내면에의 집착 때문이라는 러셀의 주장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러셀이 제시하는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기 내부에 대한 몰두에서 벗어나 그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168쪽)’ 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관심의 영역은 폭넓어야 하고 그 깊이는 깊어야 한다. 자기 외부의 주제에 대한 열정적인 몰입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결책은 러셀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러셀은 무려 다섯 살 때 인생의 지루함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사춘기 시절에는 자살충동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가 자살 충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수학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러셀은 남은 생을 철학, 수학, 과학, 윤리학, 사회학, 교육, 역사, 정치,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에 바쳤다. 그리고 한 세기 가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외부에 대한 관심이 행복한 삶을 만든 극적인 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러셀은 외적인 관심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해결책이라고 자신있게 설파한다.

   
  열정과 관심을 자기 내부가 아니라 바깥 세계에 쏟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 260쪽
 
   

  하지만 우리는 러셀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내부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슬픈 감정들, 무의식의 훼방때문에 도저히 외부로 관심을 기울일 처지가 되지 않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라는 한탄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 사람에게 러셀의 해결책은 한가로운 소리로 들릴 뿐이다. 마치 재벌 2세 부잣집 도련님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법을 제시하는 것 같다고 할까. 이런 회의에 대해서 러셀이 제시하는 대안은 바로 이성의 힘이다. 러셀은 무의식의 간섭이 지배할 때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그것을 무의식에 각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외부에 대한 열정의 원천은 자신감과 사랑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올바른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때 생긴다. (192쪽)’ 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러셀의 대답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러셀은 행복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도 뻔하고 단순한 대답에 어이가 없을 법도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러셀은 이미 ‘행복의 필수조건은 단순하다.(101쪽)’ 고 알리바이를 성립해놓았기 때문이다.

  러셀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복이라는 단어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수많은 전투, 그리고 피와 땀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단순한 결론에 실망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이 해답은 러셀이 자신의 인생 방정식을 통해 충분히 검증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이 결론이 옳다고 인정 할지라도, 나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안다. 그리고 그 실천이 매우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뎌질 것 또한. 그래서 이 책의 소장가치는 분명히 있다. 삶의 추가 행복에서 불행으로 다시 기울어질 때마다 자주 들춰보면서 다시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강남에 아파트를 두 채 사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투자임이 확실해보이니까 말이다.

   
  모든 불행은 의식이 분열되거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서 생긴다.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아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객관적인 관심과 사랑의 힘에 의해 자아와 사회가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자아와 사회는 통합될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자아의 내적인 통합이나 자아와 사회가 이루는 통합의 실패로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이다. -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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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1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야언니가 추천한 24권 중의 하나군요. 읽기를 겁냈는데 어렵지 않은가봐요.
우리집 마을도서관에 걸맞게 갖춰야 할 책이에요.
이번엔 마이리뷰로 적극 밀어봅니다.^^

송도둘리 2009-08-10 18:52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었어요. ^^ 역시 비야누님이 추천하신 책다웠습니다.

순오기 2009-08-15 04:10   좋아요 0 | URL
이주의 마이리뷰로 밀었는데 블로거특종이군요.^^

송도둘리 2009-08-16 16:53   좋아요 0 | URL
예언이 매번 조금씩은 틀리시네요^^ 감사합니다.ㅋ

담쟁이 2009-08-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러셀 팬이라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두번 째 읽고 있습니다. 다음 책으로 '행복의 정복'을 읽으려고 찜해놓던 차라 반가워 읽고 갑니다^^

송도둘리 2009-08-10 20:49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이 러셀 책은 처음인데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두번이나 읽으셨다니 담에 그 책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
 

  시험 준비한답시고 책도 몇 권 보지 못했고, 영화도 못봤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읽고, 보았던 책과 영화들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엄선했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제 3 부 - 기억에 남는 책과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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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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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중국소설. 깔깔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쓸쓸함의 깊이도 깊다.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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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인물 한비야의 에세이. 그의 글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성공과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비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할 때, 그리고 한비야가 이야기하는 성공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 사회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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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도 존재하지만, 단 2시간 짜리 영화로 이 대작을 담으려고 했다는 것은 정말 무모한 시도였다.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그리고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게 부풀려놓은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마무리 짓는 재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면 잠시 현실에서 발을 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진정한 이야기꾼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 좋은 관계를 만드는 비밀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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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명한 정신분석 전문가가 쓴 책. 자기 자신과의,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소개한다. 해법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뻔하지만 쉽지 않은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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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1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은 '그건, 사랑이었네' 하나뿐~ 아직 리뷰는 안 올렸지만요.^^
 
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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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들 중 일부가 부족한 상태가 행복의 필수조건-32쪽

인간의 감정이 비극과 참된 행복이 전개될 수 있을 만큼의 진지함과 깊이를 지니려면, 공동체의 삶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48쪽

나는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 나머지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라고 생각한다.-56쪽

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69쪽

육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극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71쪽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75쪽

현명한 사람은 고민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때에만 고민하고, 고민을 해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며,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79쪽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그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욱 심해진다.-86쪽

자신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아무런 결점도 없는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당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124쪽

굶어죽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여론을 존중하면 된다.-147쪽

진취성을 잃을 정도로 지나친 겸손은 피하되, 지나치게 자만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158쪽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168쪽

열정과 관심을 자기 내부가 아니라 바깥 세계에 쏟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260쪽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262쪽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 고통스러운 진실을 스스로 인정하라.-263쪽

모든 불행은 의식이 분열되거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서 생긴다.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아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객관적인 관심과 사랑의 힘에 의해 자아와 사회가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자아와 사회는 통합될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자아의 내적인 통합이나 자아와 사회가 이루는 통합의 실패로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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