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vs 백악관
박찬수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우선, 매우 재미있다. 지은이가 기자라서 그런지 청와대와 백악관의 현실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잘 보여준다. 이론적인 설명이나 분석이라기보다는 취재의 느낌이 강하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관저와 경호, 전용기 등의 하드웨어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인사검증, 대언론관계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 소재별로 꼭지를 구성해놓았다. 그리고 전직 청와대 근무자의 증언까지 인용하여 마치 비화나 일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힌다.


지은이는 청와대와 백악관이 다른 점도 많지만 비슷한 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에는 과연 그럴까 의아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과연 그런 것 같다. 물론, 그 규모면에서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있겠지만 대통령제라는 특징과 정치나 권력의 속성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보니 오히려 제도 면에서는 미국보다 앞서서 시도한 것도 있었다. 청와대 상황실의 첨단화는 우리가 미국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폐지될 뻔 한 사연도 소개하고 있다. - 국토가 작고, 전산 집중화가 더 용이한 측면도 있었을 테고 집적되는 정보의 수준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백악관보다 앞선 것이 신선했다. 이처럼 제도는 백악관과 유사한 것 같은데 왜 정치와 민주주의의 질은 다를까? 문제는 제도적인 측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제도 속에 녹아 있는 문화다. 지은이가 원고를 마무리 지을 때 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 정치보복에 대한 꼭지를 뒤늦게 추가했다고 한다. 가장 늦게 쓰였지만, 이 책의 핵심은 그 꼭지에 있다. 지은이는 미국의 정치 보복(?)은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것임에 주목한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전임 정권 인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아닌, 정책으로 분위기 반전이나 자신들의 차별성 과시를 꾀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정견으로 싸우되 상대의 신변까지는 위협하지 않는, ‘마지노선’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이런 상생의 정치 문화가 우리와 미국이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도 다른 정치가 나오고 있는 원인같다.


물론, 미국도 단 한 번에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남북전쟁이 있었고, 대통령 암살시도가 레이건 때까지 있었다. 책에서는 정권 인수인계 제도도 소개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정권 교체 후에는 편지 한통을 제외한 전임 정권의 모든 물건이 백악관에서 깨끗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을 더 남겨줬는지, 덜 남겨줬는지에 대한 다툼이 없다. 이것을 마치 자신에게 남겨질 유산도, 부채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자기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을 배운 아들에 비유한다면 지나칠까. 긴 역사에 걸친 갈등 속에서도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이 부럽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체득한, 그 안에서 공통분모로 자리 잡은 문화와 그 문화의 다른 표현인 제도를 통해서 미국과 우리의 차이는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기야 우리라고 사연이 없겠는가.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변질되어 여러 차례 환국을 거치면서, 정치가 자신과 가문의 생존을 위한 전투가 되었던 경험들. 조선 중기 이후 국가의 근본 사상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의 정명론. 정도와 사도, 정통과 이단을 명확히 가르는 그 사상이 사회문화의 근저에 흐르는 까닭이다. -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주장하는 일부 개신교가 급속히 교세를 확장하는 한국적 현상도 ‘정명론’이 한국인들 사고의 근저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 그 뿐인가? 일제와 싸웠던 40여년, 독재와 싸웠던 20여년, 누군가 싸워야만 옳은 길이었고, 실제로 상대가 거대한 악이어서 도무지 예쁘게 봐주려야 봐줄 수 없었던 역사가 있다. 우리의 정치보복 문화는 이런 슬픈 역사와 배경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조급해야 할 이유도 없고, 우리만 왜 이러냐며 분노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안 된다며 비관할 일도 없다. 이것은 역사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갈등 없는 국가는 없고, 앞서 말한 미국의 정치문화가 나오기까지는 미국도 많은 갈등과 반목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가치관이 달라도 한 공동체에 소속된 시민이라는 인식의 변화와 권력을 서로 나누는 연습이 필요하다.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가치충돌에 있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제도 변화에는 신뢰와 같은 사회자본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서로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되는데 그게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에는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놓아라.’ 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누구보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신뢰의 싹을 뿌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현 대통령과 깊은 우애와 신앙적 교감을 가지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예를 본다면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원하긴 하다. 화해와 신뢰와 공생은 옳은 길이지만 현실이 너무 어두워서 암담하게 느껴진다. - 최근에 있었던 황석영 씨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화해와 용서, 상생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옳지만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 정치적인 패자가 승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때론 굴종으로 비칠 여지가 많다. 그래서 승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여유가 필요한데 정말 우리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못한다면 우리가 하면 된다. 현 정부의 잘못에 분노하되 그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무조건 비토해서도 안 된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만들어서 우리가 논쟁을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시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했을 때는 화해, 용서해야 한다. 공생해야 한다. 그런 문화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얼마 전 읽은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이런 비슷한 말이 나온 것을 기억한다. ‘성공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두지 않는다면 성공을 해도 불행하다.’ 는 말. 바꿔 말하면 정권을 바꾸는 것은 쉽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두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현실을 바꾸려면, 우리 국민이 현재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또는 문화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준에서 준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청와대나 백악관 또는 미국과 한국의 단순 비교를 넘어서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인 것 같다.


책에서 받은 느낌을 쓰다 보니 정작 책 내용과는 딴 방향으로 간 것 같다. 사실 책에 이런 내용은 씌어있지 않다. 물론, 우리 정치문화나 청와대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만 책에서 구체화는 안 된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현실적인 청와대와 백악관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래서인지 꼭지별 구성이 다소 산만한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책이 끝난 느낌도 받았다. 마지막 꼭지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나가는 말’ 같은 게 있어서 책을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어쨌든 책이 재미있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했던 식의 한국 정치에 대한 몽상(?)을 하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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