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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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모두 강남에 아파트 2채씩은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행복한 거예요." 한 개그맨이 이렇게 말하자 관객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도 TV를 보며 낄낄대며 웃는다. 한참 웃고 나니 돈이 행복을 결정짓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 왠지 서늘해진다. 꼭 강남에 아파트 두 채를 - 한 채도 어려운데 - 가져야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모두 행복을 갈구한다. 나또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 고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심리학, 정신분석학에 관련된 책, 수상록, 심리상담책을 자꾸만 들여다본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불만족스럽고, 내 인생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러셀의 대답이다.

  나는 이 책을 최근 출간된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한비야 씨가 추천한 이십 여권의 책들 중 하나였다. 한비야 씨의 추천이라면 믿을만해서, 그리고 제목도 맘에 들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철학의 철자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이 그 유명한『서양철학사』를 지은 저명한 철학자인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은 책을 읽으면서 싹 사라졌다. 전혀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을뿐더러 철학자답게 매우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씌어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과 믿음이 가는 동시에, 이 이후로 나온 모든 행복론들은 이 책의 변주로 느껴졌다. 1930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여성이나 하인에 대한 예시를 제외하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시공을 초월한 행복론의 정석같았다. 정말이지 책 통째로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였다.

  러셀은 불행한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기 내부에 갇힌 사람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뿐더러, 내부로 파고들수록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불행의 가능성만 높이기 때문이다. 불행의 유형은 세 가지로 대별되는데,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주입된 신념과 애정의 폭압에 갇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자존감이 결여되어 방어기제로 허영심만 가득 찬 자기도취형 인간, 권력에 대한 열망과 현실감각 결여가 더해져 파멸로 나아가는 과대망상형 인간이 그것이다. 나또한 이 세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곡을 찔린듯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자기 내부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러셀의 지적에는 조금 의아했다. 대부분의 종교나 책에서는 자기 성찰과 깊은 참회를 평화를 얻는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러셀이라는 돌팔이 의사를 만난건지, 이제야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난건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러셀은 불행의 원인으로 사회적 요인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러셀 자신의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도 맞닿아있다. 특히, 성공을 위한 경쟁,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는 미국식 성공지상주의를 의지와 경쟁만 중시하고 지성과 감성이 결여된 '현대판 공룡'으로 표현하면서, 이런 성공에의 집착이 행복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공룡이 멸종되었듯이 현대판 공룡들도 지성과 감성을 갖춘 쾌활한 사람들에 의해 머지않아 대체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또한, 걱정, 권태,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 등 불행을 부르는 개인적 측면의 요인들도 제시하는데 그 전개나 논거가 퍽 믿음직스럽다. 불행의 요인들인 걱정이나 죄의식 등이 내면에의 집착 때문이라는 러셀의 주장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러셀이 제시하는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기 내부에 대한 몰두에서 벗어나 그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168쪽)’ 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관심의 영역은 폭넓어야 하고 그 깊이는 깊어야 한다. 자기 외부의 주제에 대한 열정적인 몰입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결책은 러셀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러셀은 무려 다섯 살 때 인생의 지루함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사춘기 시절에는 자살충동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가 자살 충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수학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러셀은 남은 생을 철학, 수학, 과학, 윤리학, 사회학, 교육, 역사, 정치,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에 바쳤다. 그리고 한 세기 가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외부에 대한 관심이 행복한 삶을 만든 극적인 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러셀은 외적인 관심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해결책이라고 자신있게 설파한다.

   
  열정과 관심을 자기 내부가 아니라 바깥 세계에 쏟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 260쪽
 
   

  하지만 우리는 러셀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내부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슬픈 감정들, 무의식의 훼방때문에 도저히 외부로 관심을 기울일 처지가 되지 않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라는 한탄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 사람에게 러셀의 해결책은 한가로운 소리로 들릴 뿐이다. 마치 재벌 2세 부잣집 도련님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법을 제시하는 것 같다고 할까. 이런 회의에 대해서 러셀이 제시하는 대안은 바로 이성의 힘이다. 러셀은 무의식의 간섭이 지배할 때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그것을 무의식에 각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외부에 대한 열정의 원천은 자신감과 사랑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올바른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때 생긴다. (192쪽)’ 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러셀의 대답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러셀은 행복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도 뻔하고 단순한 대답에 어이가 없을 법도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러셀은 이미 ‘행복의 필수조건은 단순하다.(101쪽)’ 고 알리바이를 성립해놓았기 때문이다.

  러셀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복이라는 단어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수많은 전투, 그리고 피와 땀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단순한 결론에 실망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이 해답은 러셀이 자신의 인생 방정식을 통해 충분히 검증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이 결론이 옳다고 인정 할지라도, 나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안다. 그리고 그 실천이 매우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뎌질 것 또한. 그래서 이 책의 소장가치는 분명히 있다. 삶의 추가 행복에서 불행으로 다시 기울어질 때마다 자주 들춰보면서 다시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강남에 아파트를 두 채 사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투자임이 확실해보이니까 말이다.

   
  모든 불행은 의식이 분열되거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서 생긴다.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아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객관적인 관심과 사랑의 힘에 의해 자아와 사회가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자아와 사회는 통합될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자아의 내적인 통합이나 자아와 사회가 이루는 통합의 실패로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이다. -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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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1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야언니가 추천한 24권 중의 하나군요. 읽기를 겁냈는데 어렵지 않은가봐요.
우리집 마을도서관에 걸맞게 갖춰야 할 책이에요.
이번엔 마이리뷰로 적극 밀어봅니다.^^

송도둘리 2009-08-10 18:52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었어요. ^^ 역시 비야누님이 추천하신 책다웠습니다.

순오기 2009-08-15 04:10   좋아요 0 | URL
이주의 마이리뷰로 밀었는데 블로거특종이군요.^^

송도둘리 2009-08-16 16:53   좋아요 0 | URL
예언이 매번 조금씩은 틀리시네요^^ 감사합니다.ㅋ

느린산책 2009-08-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러셀 팬이라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두번 째 읽고 있습니다. 다음 책으로 '행복의 정복'을 읽으려고 찜해놓던 차라 반가워 읽고 갑니다^^

송도둘리 2009-08-10 20:49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이 러셀 책은 처음인데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두번이나 읽으셨다니 담에 그 책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