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
김주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구판절판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17쪽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서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54쪽

이상묵 교수는 사고 이후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아, 이제부턴 나도 남을 도우며 살아야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 "진짜 현명한 사람은 불행을 당하기 전에 남을 돕는 사람이겠지요."-88쪽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각각 해당 분야와 관련되는 지능과 함께 모두 자기이해지능이 높다. -103쪽

충동통제력이 건강한 것이 되려면 그것은 반드시 긍정성이나 자율성과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의미있는 일이니까 다른 충동을 통제해가면서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은 건강한 충동통제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성이나 자율성이 동반되지 않는 충동통제력은 단순한 인내심의 발휘이며 이는 점차 우리를 약하게 할 수 있다. -123쪽

어떤 불행한 사건이나 역경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하고 어떠한 의미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불행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분노는 사람을 약하게 한다. 화를 내는 것은 나약함의 표현이다. 분노와 짜증은 회복탄력성의 가장 큰 적이다. 강한 사람은 화내지 않는다. 화내는 사람은 스스로의 좌절감, 무기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분노가 우리의 인생에 닥친 여러 가지 역경을 해결해주는 경우는 없다.-141쪽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말의 내용이나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대방과의 인간관계에서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163쪽

예컨대 전철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어디까지 가시죠?"라고 묻거나 갑자기 "당신은 내 이상형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공적인 소통이 되기 힘들다. ‘공유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보다는 전철이 한강다리 위를 지나갈 때, 같이 서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한강을 보니 서울도 참 아름다운 도시죠?"라며 지금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을 건네는 편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방법이다.-165쪽

자기과시와 겸양의 효과는 인간관계의 종류와 소통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자신의 유능함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호감과 존중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친한 친구 사이 일수록 잘난 척은 금물이다. 친할수록 겸손함이 사랑과 존중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171쪽

감정이나 내 생각의 흐름을 스스로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공감능력과 역지사지의 능력을 발휘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자기이해지능과 대인관계지능은 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85쪽

일상생활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원한다면 우선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에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191쪽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고 자라야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어려서 엄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는 뇌의 부위가 제대로 발달한다. 인간관계 속에서만 뇌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200쪽

친구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2년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2개월 동안 더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213쪽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은 1만 원권 지폐 이야기를 생각해야 한다. 지폐의 가치는 밟아도, 구겨져도, 심지어 찢어져도 그대로다. 변하지 않는다. 즉,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해도 나는 그저 나일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타인이 나를 비난하고 흉본다고 해서 나의 가치나 존재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주관이 뚜렷한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233쪽

장자는 내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인(眞人)은 속세에 즐겨 종사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마음은 저 멀리 드넓은 우주공간에서 노닌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살면서도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곧 초월성의 덕성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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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무관을 고용하는 일은 실로 조선의 흥망이 걸린 것이다. 나의 생사는 논할 가치가 없지만, 조선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소생할 수 없다. 내 몸이 죽어서 이 일을 방지할 수 있다면 지금 죽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다.” - 본문 130쪽

  비분강개하는 열사의 풍모가 느껴지는 이 말을 이완용이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결코 믿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완용은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의 부와 영달을 위해서는 나라와 민족 정도는 손쉽게 팔아넘기는 천하의 비겁하고 추잡한 사람이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 문장은 이완용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는 ‘말이면 무슨 말이든 못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완용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했던 ‘사람’임을 비로소 가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매국노’라는 이완용에게 붙여진 딱지를 벗기고, ‘인간’ 이완용을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세는 평전작가가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소양이라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완용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위치를 고려한다면, 지은이의 노력은 평가할 만 하다고 생각된다.

  우선 이완용의 출신배경을 살펴보면 입이 딱 벌어지게 된다. 노론명문가 출신임은 물론이고, 형은 대원군의 사위요,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후일 정계를 주름잡게 되는 민씨 척족세력과 한 핏줄이었던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유명 정치가를 배출한 가문의 자손에다가 현재 집권당 대표의 사위를 형으로 두고, 유력 대권주자와 어머니가 같은 가문인, 실로 어마어마한 배경을 갖춘 셈이다. 가정환경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감이 있지만 이완용이 당시 체제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서양 문물과 사상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남부럽지 않았던 가정환경이 그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완용이 서얼출신이었던 윤치호나 천민출신 송병준과 같은 이들과 불화했던 이유도 출신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위화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요컨대 이완용은 개화주의자로 분류되었지만 근대서구문명의 ‘만민평등’이나 ‘천부인권’과 같은 기본가치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현실유지 개화파(?)’였던 것이다.

  급격한 사회변동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완용은 실로 깨인 기득권층이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완용의 부정부패에 대한 처신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완용은 어떤 당사자와도 갈등을 빚지 않으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부정부패를 그대로 눈감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통의 집권층과 분명 달랐다. 하지만 발본색원하여 문제를 처리하기보다는 조용하고 부드럽게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처리했던 점에서 이완용만의 개성을 보인다. 그의 이런 처신은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사기도 했다. 국외에서도 인정받는 명필에다가 검소하고 기품 있는 성품도 그러한 평가에 일조했다. 이완용은 이처럼 나름의 능력과 감각을 갖춘 성실한 관료에 인기 있는 명망가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고상하고 능력 있었던 인물이 매국노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크게 심성이 고약하다거나 지나친 물욕을 가진 악당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타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완용은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와 관행이라는 거대한 힘에 맞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할 만큼 분노와 투지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방 향리 및 양반 토호와 한패가 돼서 진흙탕 속에 자신을 내던질 만큼 탐욕스러운 인물도 아니었다.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되새기면서 자신만이라도 오롯이 지켜내려 노력하는 완고한 원칙주의자도 아니었고,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관행을 잘라내는 과격한 행동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피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서 가능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하는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 실용주의자였다. - 158쪽
 
   

  이완용의 삶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비극성은 그 타락의 씨앗이 한 독특한 인물의 악한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평범함에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이완용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대해 단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는 현실을 일단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 하에서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익을 얻고자 했다. 말하자면 ‘이 현실이 바뀔 가능성은 없는가?’, ‘이 현실은 과연 정당한가?’와 같은 질문은 던지지 않은 것이다. 현실은 바뀔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지극히 기술적이고 수단적인 합리성만 발휘한 것이다.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했기에 그의 선택들은 무력감과 열등감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을사조약을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형식적인 자구 수정을 요구해서 받아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완용의 경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 탓에 그 열등감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자기를 제외한 조선민족에게 향했다. 때문에 실력양성과 계몽만이 민족의 열등함을 구원할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그에게 열등한 민족에게 병합이라는 현실은 어쩌면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을 것이다.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모나지 않게 누구로부터 미움도 받지 않으면서 그저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던 것의 결과가 ‘매국노’라면 우리는 과연 그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새삼 두려움과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차별, 불평등, 억압에 분노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태도 가운데서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 299쪽
 
   

  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탐구는 영웅을 인간으로 만들고, 악당 또한 인간으로 만드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웅이 그저 영웅으로 존재한다면 그 누구도 그곳에 닿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학과 숭배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악당이 그저 악당으로 남는다면 그 누구도 그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혐오와 자기기만이 남을 뿐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무엇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지 애초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정해질 리야 없지 않은가. 왜 누구는 영웅이 되고 누구는 악당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각자에게 던져주는 것이 평전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그런 역할에 충실한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물화가 아니라 풍경화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전체적인 배경에 대한 묘사가 지나쳐서 이완용 개인의 행적에 대한 서술은 압도되어 버린 느낌이다. 물론 이완용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의 내밀한 생각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담은 1차 자료를 얻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끝으로,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이 이완용을 너무 미화했다는 평가가 다수인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고자 한다. 일본의 강제합병에 일조한 것은 분명 이완용의 잘못이지만 이 책이 지적하듯 이완용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우리가 진정 식민지의 역사를 청산하고 다시는 그러한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권상실의 원인을 이완용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보다는 그 당시 조선의 현실과 사회지도층과 민중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이 책은 이완용에 대한 인민재판 식의 돌팔매 처형에서 벗어나 역사의 법정에서 이성적인 재판을 통한 엄중한 형벌 부과로 가는 길을 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에게 이완용의 모습의 있지 않은지, 현재에 또 다른 이완용이 활보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볼 여운을 남겨주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가진 의의라고 본다. 이제, 이완용 따위의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쓰는 데 장안의 지가를 올려야 겠냐는 비판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배제된 타자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특히 매국노의 모습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가치의 부름에 호응해왔던 사람들이 있어왔고, 또 그들에 의해 변화가 주도되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와 민족의 가치보다는 인권·공공·자유의 가치가 호명되고 있고, 여전히 부름에 호응하는 또는 호응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이완용은 ‘매국노’로서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줄 모르는’ 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호명하는 가치에 호응할 줄 모르는’ 인물로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다. -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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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구판절판


이완용은 서양인의 시선에 비친 조선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시선을 잘못된 것으로 보고 부정하고 싶은 생각에 인디언 부락을 비롯하여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거기서 얻은 결론은 쿠즈 요시히사의 말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은 아닐지라도 분명 부정적인 것, 열등한 것, 악한 것이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조선이었다.-50쪽

일반적으로 을미사변 전후에 반일적 입장을 표명한 데 반해 아관파천 이후 반러로 입장을 바꾸었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그가 변신의 귀재이고, 그래서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 친일파로 변신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간주해왔다. 그러나 고종의 통치권을 회복하여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이완용에게 그것은 변신이 아니었다. 더구나 고종의 신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 속에서 이완용은 일관되게 군주를 보필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갔다.-144쪽

이완용은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와 관행이라는 거대한 힘에 맞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할 만큼 분노와 투지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방 향리 및 양반 토호와 한패가 돼서 진흙탕 속에 자신을 내던질 만큼 탐욕스러운 인물도 아니었다.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되새기면서 자신만이라도 오롯이 지켜내려 노력하는 완고한 원칙주의자도 아니었고,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관행을 잘라내는 과격한 행동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피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서 가능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하는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 실용주의자였다.-158쪽

대한제국 정계에서는 고종의 총애를 다투는 정치 세력 간의 암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원인은 왕권 강화를 위해 외세와 정치 세력을 상호 견제시키는 고종의 국정 운영 방식 때문이었다.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오로지 고종의 총애를 얻는 것만이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측근 세력들은 고종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었다. 고종 역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 말이 많은 양반 대신들과 달리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면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생사를 거는 그들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가고 있었다. -164쪽

100년 전이 아닌 오늘날에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도구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그래서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형인 이완용은 왕의 통치 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망명 정치인이 될 수 없었다. -172쪽

1897년 대한제국 선포와 1899년 대한제국 국제의 선포 이래로 대한제국은 조선의 통치 체제를 그대로 계승한 전제 왕국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입헌군주제 수립을 위해 개화파 등이 정치체제 개혁을 추진하려 했지만, 고종은 이를 철저하게 탄압해왔다. 고종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인민의 뜻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인민의 의견이 수렴될 제도적 장치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순간 고종과 권중현 등의 대신들은 단지 황제의 자문 기구에 지나지 않았던 중추원을 마치 의회인 것처럼 말하면서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 지금처럼 국가의 중대한 외교 사안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받는 절차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국가의 결정 과정을 존중해야 할 외교 상대국 일본이 고종이 주장했던 절차 중 ‘인민의 의향을 묻는 과정’은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토와 하야시는 대한제국 정치체제를 분명하게 지적하여 고종과 대신들의 말이 어불성설임을 비난했다. -191쪽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황제를 부정할 수 없었던 대한제국의 지배엘리트들에게 을사조약 체결은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이들은 조선 왕조의 국체를 유지하는 가운데 서양 문명의 수용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기존 체제를 버리지 않더라도 서양의 근대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한 독립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갑신․갑오 세력이 시도했던 체제 개혁보다는 기존 체제 안에서 ‘실력 양성’과 ‘자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대한제국민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을사조약 체결로 지배 엘리트들이 지향해왔던 독립국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다시 대한제국민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했다.-202쪽

이들이 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대한제국민 대부분이 왕 없는 나라를 상상하기 힘들어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지배 엘리트가 아닌 대다수 백성들의 힘도 믿을 수 없었다. 왕이 없다면 과연 누가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임오군란과 갑오농민전쟁에서 보여준 백성들의 힘과 분노를 두려워했던 이들은 백성들에게 나라의 주권을 일부 넘겨주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왕과 인민 사이에서 양자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지배 엘리트 중심의 정당을 구상했다. 입헌군주제와 지배 엘리트가 장악한 정당의 수립이 그들이 생각하는 정체였다. 이러한 구상은 기존 체제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가운데 왕권을 조금 제한하고, 백성들의 요구를 조금 수용하는 절충적인 형태였다. -203쪽

따라서 이들은 왕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없었고, 또한 부정해서도 안 되었다. 균형자로서 이들의 입지는 왕과 백성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500년간 유지되어온 조선 왕조의 국체와 유교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배 엘리트들이 내놓은 독립국에 대한 비전을 파열시킨 을사조약은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에서 쓴 바대로 황제를 협박하고 속였던 이토와 조약에 서명한 을사5적이 전적으로 짊어져야 할 죄였다.-203쪽

이완용은 현실 상황에 맞춰 자신의 입지를 정하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매우 실용적인 인물이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울분과 분노에 치를 떨기보다는, 또 현실을 바꾸려고 몸부림치기보다는 상황에 자신을 맞출 수 있는 합리성과 실용성을 갖춘 관료였던 것이다.-207쪽

이것들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개혁만으로 독립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혁은 식민 지배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무장 투쟁의 필요성을 암시했던 『대한매일신보』는 "실력이 있음은 환영하지만, 실력이 독립보다 먼저임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실력 양성을 우선시하는 주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221쪽

고종의 폐위와 정미7조약 조인에 대한 이완용의 주장 속에는 오랫동안 형성된 그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기득권 정치인의 신중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 조응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하려는 관료적 태도였다. -225쪽

다른 한편 이완용이 매국 행위의 정점에 자리하게 된 배후에는 철저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적인 인생철학이 있었다. 그는 유교 교육을 통해 의리와 명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과 개인의 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처음 관료가 되어 고종과의 경연에서 조괄을 등용한 조나라 왕의 선택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피력했던 점, 그리고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 체결 때 대세를 어찌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던 점 등을 미루어볼 때 그는 역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 현실 가운데서 모든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최대한 또는 최소한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갖고 있었다. -258쪽

차별, 불평등, 억압에 분노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태도 가운데서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299쪽

배제된 타자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특히 매국노의 모습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가치의 부름에 호응해왔던 사람들이 있어왔고, 또 그들에 의해 변화가 주도되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와 민족의 가치보다는 인권·공공·자유의 가치가 호명되고 있고, 여전히 부름에 호응하는 또는 호응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이완용은 ‘매국노’로서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줄 모르는’ 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호명하는 가치에 호응할 줄 모르는’ 인물로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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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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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은 미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을 사는 수많은 이완용을 발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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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 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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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캐릭터와 화려한 영상은 여전하지만, 재미와 짜임새는 반감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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