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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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 '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이다. 자신을 알자면, 자신에게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모색의 경험을 회피하느냐 온몸으로 맞서느냐 하는 데서 역사의 주연과 조연의 자리가 갈린다.-24쪽

영웅에게는 상승과 하강의 주기가 있다. 욱일승천하던 영웅도 때가 되면 쓰러진다. 외부의 적에 의해 쓰러지기도 하고 내부에서 싹트는 ‘휘브리스’, 즉 ‘오만’에 휘둘리다 쓰러지기도 한다. 오만이 부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56쪽

이 이야기는 노(魯) 나라의 현명한 재상 공손의(公孫儀)의 고사(古事)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생선을 매우 좋아했음에도 아랫사람들이 생선을 바치면 늘 거절했다. 하루는 그의 아우가, 좋아하면서 어째서 거절하느냐고 물었다. 공손의는 선물이 곧 뇌물이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 "뇌물 먹다가 잘리지 않고 내가 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야 생선 또한 오래 즐길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138쪽

그는 검소한 사람이라 신들의 제단에 제물을 바칠 때도 남들 눈에 하찮게 보이는 제물밖에는 바치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하찮은 것을 제물로 바치느냐는 질문을 받자 뤼쿠르고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 "그래야 자주 바칠 수 있지."-147쪽

"왕이여, 신들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적당하게 베푸셨을지언정 차고 넘치게 베푼 것이 아니올시다. 그래서 우리 지혜는 밝고 소박할지언정 고상하고 장엄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무상한 것을 아는 우리는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남의 행운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얼마나 기이한 것들을 숨기고 있는지요? 이것이 우리가 잘 살다가 안락하게 죽은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는 소이연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아직 신들의 뜻과 운명의 장난을 다 모면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경주를 끝내지도 못한 선수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솔론이 거부 크로이소스왕에게 한 말 중에서)-175쪽

중국의 공명했던 사람 중에 조무도(趙武道)라는 사람이 있다. // 진(晉) 나라 중공(中公)이 이 사람에게, 중모라는 땅 현령으로 누구를 앉히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 "형백(邢伯)의 아들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 중공이 놀라 반문했다. // "형백은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 "그것은 사사로운 일입니다. 저는 지금 공무 중입니다." // "그러면 중부(中府)의 부사에는 누가 좋을까?" // "제 아들이 적당할 것입니다." // 조무도는 공명한 사람이어서 원수도 피하지 않고 육친도 피하지 않았다. -190쪽

자만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다른 사람의 덕성에 대한 칭송이 고깝게 들리는 법이다. -192쪽

라틴어에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라는 말이 있다면, 그리스어에는 ‘양보가 양쪽을 승리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199쪽

"지금까지 칼리아스는 몇 차례 나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면서 그것을 받아 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나는 사촌의 재물을 자랑하기보다는 내 가난을 자랑하는 것이 낫다. 많은 재물을 잘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가난을 고상한 정신으로 지탱하고 사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면하고 싶은데도 면할 수 없는 사람에게만 부끄러운 것일 뿐이다." (아리스테이데스의 말 중에서)-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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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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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극한의 고통을 이겨낸 삶만이 줄 수 있는 강렬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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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구판절판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10쪽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76쪽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78쪽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96쪽

이것이 ‘테헤란에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한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말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을 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106쪽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서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120쪽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122쪽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130쪽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133쪽

F. 우리 구역의 고참 관리인인 그는 그 전에는 꽤 유명한 작곡가이자 작사가였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했다. // "의사 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러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지,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 "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 // 내가 물었다. // "1945년 2월에요." // 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 "그래, 꿈 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 // 그가 내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 "3월 30일이래요." // F는 희망에 차 있었고 꿈 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135쪽

//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 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 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 31일에 그는 죽었다. -135쪽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137쪽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138쪽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145쪽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에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 친구나 아내,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 혹은 하느님 - 각각 다른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147쪽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집단에 들어가 있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지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의 감시병 중에도 가끔씩은 좋은 사람이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152쪽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神)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161쪽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175쪽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176쪽

인간의 실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서 부가되어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181쪽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184쪽

이것은 고든 W. 알포트가 쓴 《개인과 종교The Individual and Religion》라는 책에 나온 말과도 일치한다. "신경질환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줄 알게 되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 아니 어쩌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203쪽

자기 연민이든 멸시든 간에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에 있다.-209쪽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215쪽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221쪽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시련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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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 Leaf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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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다채로움 속에 빛나는 위대한 모성의 힘.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다소 벅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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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드레서 - The Hairdre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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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다양함’에 대한 찬가(讚歌)다. 이 찬가는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우선 1악장은 뚱뚱함에 대한 예찬이다. 주인공 카티(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마이더)는 엄청난 비만이다. 세상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아름답지 않은 ‘뚱땡이’에 불과하지만 카티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나서서 시청자들의 살을 빼는데 혈안이지만 카티에게는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카티의 지론은 말하자면 이렇다. 날씬한 사람이 있으면 뚱뚱한 사람도 있는 법이고,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이라고 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다양성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하나하나씩 구별 짓기 시작하면 다양성은 소멸하고 만다. 한편,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학과 차별이 발붙일 데가 없다. “내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데 남들의 시선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카티는 뚱뚱함마저도 다양성의 하나로 파악하고 자신이 가진 그대로 만족하고 긍정한다.

  2악장은 다문화에 대한 예찬이다. 영화는 카티가 베트남 출신 불법 체류자들의 입국을 도와주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설정하여 다문화사회에 대한 예찬을 노래한다. 최근에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참극과는 달리 카티와 그녀의 딸 율리아(나타샤 라비주스)는 베트남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섞이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인다. 영화는 카티와 베트남출신 청년 티엔(김일영)의 러브스토리에 이르러 절정을 맡는다. 독일인 여자와 베트남 남자, 뚱뚱한 여자와 홀쭉이 남자, 그리고 아줌마와 젊은 남자 사이의 이 극적인 결합은 감독이 지향하는 사회를 완벽히 형상화한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에는 부합할지는 몰라도 드라마의 흐름에는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뜬금없는 베트남인들과의 좌충우돌은 영화중간에 어중간한 분량으로 삽입되어 영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이야기의 집중도 상당히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3악장은 카티의 머리 색깔로 표현된다. 카티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손님들에게 강권하는 헤어스타일은 빨주노초파남보의 브릿지가 들어간 짧은 머리다. 이 헤어스타일은 그 자체로 다양함에 대한 예찬의 시각적 상징으로 보인다. 사람 취향의 차이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관점으로는 그런 헤어스타일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의 다양성에 대한 예찬의 상징으로서는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헤어드레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우울하고 구질구질하게 살 것만 같은, 하지만 실제로는 박력 넘치고 긍정적인 여성 카티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함, 무지갯빛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다만 아까 말한 것처럼 영화의 중후반부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쳐 약간의 지루함과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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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8-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함에 대한 찬가로 보신 점 동감이에요.
그 베트남 남자는 실제로 우리나라 배우라고 하더군요.
여자가 느끼는 행복(순간이라 해도)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 장면.^^
후반(결말) 부분이 좀 바쁘게 맺는다싶었지만 경쾌하게 끝나서 다행이었어요.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 헤어드레서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카티.^^
근데 그말이 뭐가 다를까요?

송도둘리 2011-08-01 18:34   좋아요 0 | URL
글쎄요...저도 궁금했어요. 그게 무슨 차이일지...
어감에서 풍기는 손님과 미용사의 접촉의 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카티의 유쾌한 미소와 씩씩한 걸음걸이가 다시 생각이 나네요.^^
프레이야님의 감상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